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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Jul 02. 2017

[서평] 수인囚人 - 황석영

* 황석영 작가의 자서전입니다. 예약 구매한 덕에 저자 친필 사인까지 받은 책으로 읽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좋아합니다만 그의 삶은 훨씬 더 감동적이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습니다. 명불허전, 그의 인생과 글, 모두 다 감동입니다. 파란만장한 한 문인의 삶을 통해 굴곡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이 자전을 읽다 보니 그의 작품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일환으로 장길산을 한 권씩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곧 그의 삶이자 생각이자 궁극적으로 그의 행동이었음을, 이 자전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존경할만한, 존경받을만한 작가입니다. 부디, 장수하소서.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작가님은 43년생입니다. 그 말인즉 해방 이후 한국 근현대사를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6/25를 겪고, 4/19를 겪고 12/12를 겪고, 5/18을 겪고, 하여간 겪을 수 있는 모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다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겪었다'라는 동사가 치열하게 다가옵니다. 그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간 일반 민중들의 삶도 의미가 큽니다만, 황 작가님처럼 저항의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신념을 지킨 이들의 '겪음'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조금 엉뚱하게도 이 분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6/25 때도 그렇고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그렇고, 5/18 시기에도 그렇고.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것도 간발의 차로. 그 간발의 차 덕분에 우리가 현재 생생한 그의 증언을 읽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5/18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로 황 작가님 및 그 시대의 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기록하여 남긴 책 제목입니다. 하지만 이 자서전을 읽다 보니 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제목이 황석영 선생의 삶에 대한 탁월한 요약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황 작가님의 삶은 죽음과 어둠의 한국 근현대사를 넘어 살아낸, 일종의 역사책입니다. 그런 역사를 다만 일부라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황 작가님은 후대를 위해 큰 일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렇습니다.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록을 아직까지 자세히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참 무섭고 겁나는 그런 시대가 불과 30여 년 전입니다. 그 시대 그 지역에 내가 살고 있었더라면, 나에게 일어날 수도, 내가 자행했을 수도 있었을 일입니다, 피해자로든 가해자로든.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역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목숨 걸고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객을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이 자서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책 중에 나와 있는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이담에 역사책에 나온다는 건 다 헛소리예요. 사람들이 기억하려고 노력을 해야지요." 이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끔 하기 위하여 쓴 책입니다. 어떻게 기억하고 어느 정도 기억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치열한 사실주의자, 황석영

사실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태도. 황 작가님은 사실주의자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의 사실주의는 간접 경험에 기반한 사실주의가 아닙니다. 그가 직접 몸으로 살아내고 견뎌낸 현실에 기반한 사실주의입니다. 그가 경험한 베트남전과 치열하게 투쟁했던 군사 독재 시절이 그의 작품에 사실적으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의 문학적인 재능도 한몫을 했고요.


그의 사실적이고 치밀한 문체는 당대에 거의 으뜸입니다. 사상계 신인상 당선작인 '입석 부근'을 읽다 보면 그 사진으로 찍어 전달하는 것 같은 문장에 일종의 경외감을 표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학적인 재능에 더해서 본인이 몸으로 체험한 시대의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들어 가니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지요. 이 자전에도 이러한 그의 문학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에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전부 다 드러냅니다(현부인이 3번째 분이신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북한 방문 및 그로 인한 옥살이에 대한 부분은 1권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디테일에 기반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문학적인 재능과 기억력은(네, 그는 메모를 거의 안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나올 정도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본인의 삶을 기억하고 또 써 내려가는 것이기에 가장 쉬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 평생을 순진무구한 문학소년으로 살다

황 작가님은 기본적으로 문학이 집이요 고향인, 작가입니다. 그의 삶은 결국 문학으로 귀결되고 문학을 제대로 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보니, 특히 북한에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많이 이용당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부분은 정치적인 이상 추구 및 순진함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황 작가님은 평생 대한민국에서보다 북한에서 더 대우를 받았습니다(김일성 만난 횟수보다 대한민국 대통령 만난 횟수가 모르긴 몰라도 훨씬 적을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이상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평가하려고도 투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정치와 정치인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사실 두 가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과 남북을 포함한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결국 이것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정치 및 권력에 대한 정치인들의 접근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이념과 이상,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는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건 김일성 이건 박정희 건 똑같습니다. 내가 살아야지 모두가 잘 사는 길은 정치판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황 작가님은, 개인적인 생각에 이 부분에 대해서 김일성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짐작컨데 그는 조국에서 정치의 쓴 맛, 권력욕의 무서움을 처절하게 맛보았으나 상대적으로 북한으로부터는 그런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문학인으로서 용기를 내어 한반도 근현대사라는 폭풍의 중심에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도 수준 높은 문학적인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부분에 있어서 황 작가님께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와 권력욕이 난무하는 세상은 문학가의 순수함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 부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나마 없었더라면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선배들께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역사책이자 문학 작품을 읽었습니다.


# 문장들


사람들은 드러난  사실만으로 진실을 다 알았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따라서 사실은 종종 진실을 왜곡하는 위험천만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은  행복하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여튼 남북 모두가 살길을 찾으려면 우리가 주인답게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김일성의 공과 과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박정희의 공과 과 역시 균형 있게 말해야 한다.


기억의 잔여물은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을 망각하려 할수록 더 견고해지기 마련이라면, 산 자든 죽은 자든 과거의 망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문학이라는 집이었다. 세상의 뒤안길을 떠돌며 노심초사하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면 나는 늘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실의  광대는 언제나 위험하다. … 너그럽게 웃어는 주지만 익살꾼은 집단에서 주요한 배역은 아니다. 그의 외로움은 수시로 무시당한다.


"좋은 글이란 역시 쉽고 간소해야 한다."


"이담에 역사책에 나온다는 건 다 헛소리에요. 사람들이 기억하려고 노력을 해야지요."


"생각해봐, 제힘으로 일해서 먹구살겠다는 놈들인데 나쁜 놈들이 있겠냐구. 나쁜 놈들이야 저 한양 번듯한 빌딩들 속에 다 있지."


이를테면 무술을  배우든 도를 닦든 일상을 재편성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감방에서의 독서가 올바른 독서가 아님을 곧 깨닫게 된다. 책도 남들과의 소통 속에서 읽어야 제대로 소화가 될 테니까.


물리적 거리가 생기고 그 기간이 길어져서 부부간에 불신과 오해가 쌓이면 갈등의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진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의견의 불일치는 있을 수 있고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입장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국민의 권리인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나는 처자식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무엇에 홀린 듯이 전국을 떠돌아다녔고 끝내 가족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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