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경계심이 만렙입니다

겁만 많은게 아니라 경계심도 거의 미어캣 수준입니다

by 생각창고

# 어느 유명 정치인의 일화입니다. 이 분이 유명 호텔 커피숍에 앉아서 과일 주스를 한 잔 시켰고 서비스하던 직원이 -정말 순수하게 서비스 차원에서- 빨대의 포장지를 제거하고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줬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왜 마음대로 포장을 벗기고 가지고 오느냐, 포장 제거하고 빨대에 독을 묻쳐서 가지고 오는지 어떻게 아느냐, 빨대 새 걸로 가지고 와라'라고 버럭 화를 냈다고 합니다.(이럴 거면 과일 주스는 왜 시켰을까요, 본인 마실 거 직접 싸가지고 다니지.)


조금 우습기는 합니다만, 소위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의 경계심 및 주변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네, 사장님을 포함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합니다. 단지 '내'가 그 경계심의 대상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실제로 사장님들이 대리 이하 사원급 등 경계심을 표출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직접 호통치거나 불신을 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최소한, 회사 규모에 따라 상대적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소위 간부라고 불리는 과장급 이상 정도는 돼야 본인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런 경계심이 사실은 밑에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비자는 얘기합니다.



미어캣 1.jpeg 미어캣의 경계심은 유명하지요

중신들은 작당을 하여 군주의 눈을 가리고 한통속이 되어
속으로는 사이가 좋더라도 나쁜 척하여 사심이 없는 것 같이 보이며
서로 눈이 되고 귀가 되어 군주의 틈을 엿본다
『비내(備內)』


# 어찌 보면 사장은 참 외롭고 두려운 자리입니다. 밑에 사람들을 포함해서 주변에 인간적으로 믿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부하들은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경쟁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처럼 혼자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앞에서는 온갖 얘기를 다하고 충성을 맹세하고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도 합니다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게 맞는 생각인 것이, 밑에 임원 몇 명이 짜고 사장을 따 시키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늘 사장의 '틈을 엿봅니다'. 그리고 '한통속이 되어 서로 간에 사이가 나쁘며 자기는 오직 사장님의 말만 듣는다'라고 그 앞에서는 서로에 대한 험담도 서슴지 않습니다만 그게 진실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그냥 뒤통수 맞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패거리를 지어서 뭉치며
신하가 바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군주는 고립된다
『외저설 좌하(外儲設 左下)』


신하들이 아직 난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준비가 갖추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난 사(難 四)』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경계심 만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동시에 불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혼자'인 사장님은 '패거리를 지어 뭉쳐 덤비는' 부하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아마도, 부하들이 아직까지 반기를 들지 않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왕이 느꼈던 고독과 불안감을 현대의 무언가를 가진 이들, 특히 사장님들도 매일 느끼고 사는 것 아닐까요? 다른 말로 하면,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뒷통수를 칠 수 있는 것이 '아랫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비관적이고 암울한 세계관인가요? 가장 크게 신임하고 많은 것을 주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는 정치인들, 사업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생각해보면, '동물의 왕국에나 나올 법한 얘기야'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무언가 찝찝합니다.



# 사장님, 특히 전문 경영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는 임원들에 대한 대우도, 본인들은 부인할지 모르겠으나 꽤 좋은 편에 속합니다. (공시 의무가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금융감독원 공시 시스템에 들어가서, 본인 회사 사장 및 임원들의 연봉을 확인해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임원 이하 부하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고 그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서 좋은 성과를 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경영자들의 공통된 욕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좋을까에 대한 답은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느 영화 평론가가 말했듯이, '돈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이니 돈을 많이 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돈을 너무 줘서 필요 이상으로 부해지면 딴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많은 돈을 받는 입장에서 그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자리에 가고 싶어 지는 것이지요. '관리가 부해지고 막중해짐은 난이 일어나는 원인이다(『팔경(八經)』)' 또한 춘추전국시대에만 통했던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돈은 언제나 더 많은 돈을 원하니까요.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 '금의위 14검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 견자단 형님이 열연한, 정통 무협 액션 영화인데요. 이 영화에 모든 악의 원흉, 반란을 꿈꾸는 왕족으로 '홍금보' 아재가 등장합니다. 원래 반역을 꾀했던 인물인지라 죽어 마땅하지만 왕족이라 먼 변경 지역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반역을 꿈꾸며 황궁의 환관과 내통을 합니다. 물론 그 환관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는 것으로 필요를 채워 주지요.


그런데 그 환관의 요구하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홍금보 아재의 측근이 불만을 토로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탐욕스러운 자들은 탐욕만 채워주면 되니 쉽다'라고 말이지요.


금의위 14 2.jpeg 대략 이런 분위기에서 이 대사를 날렸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돈으로, 일정 부분의 명예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부하들이 제어가 되면 좋겠지만, 아니 오히려 쉽게 생각되겠지만 이게 아니고 사장의 '자리', '권력' 자체를 원한다면 참으로 골치 아플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낌새를 일찍 알아채기 위해 경계심과 불신 능력치를 늘 만렙으로 찍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머리 둘 달린 뱀이 먹이를 다투다가 결국 둘 다 죽게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끊임없이 던져 주면서, 두 머리가 필사적으로 싸우되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 싸우면서 일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을 사장님들은 오늘도 꿈꾸는 것 아닐까요? 패거리를 짓지 못하게 하면서 끊임없이 서로 싸우면서 나만 바라보게 만드는 법을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요?


동물 가운데 훼라는 뱀이 있다. 한 몸에 입이 두 개 있어 먹이를 다투다가
서로 물어뜯어 끝내는 서로 죽고 만다.
신하들이 권력을 다투어 나라를 망치는 것도
모두 훼와 똑같은 유이다.
『설림 하(設林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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