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책 읽으면서 진지하게 낄낄 웃었습니다
어느 '읽고 쓰는 인간'의 '듣고 말하는 인간' 되기 프로젝트, 그리고 그 후기
장강명 작가가 가수 요조와 북21 출판사가 후원한 '책, 이게 뭐라고' 팟빵을 진행하면서 겪은 소회를 쓴 책입니다만, 작가, 특히 소설가의 에세이가 늘 그러하듯이, 장 작가님의 책과 독서에 대한 철학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김영하 작가가 '모든 작가는 독자였다'라고 했는데, 이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읽는 사람이며, 그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쓰는 인간이기에, 작가들의 에세이는 늘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최근 문학/출판계 동향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수 있고요(웹소설 마켓이 참 재미있는 곳이더군요. 그리고 셀럽이 쓴 책만 팔린다는 웃픈 현실도). 저자의 문체가 간결하고 위트와 유머가 있어서(셀프 디스도 서슴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물론 내용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추천받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장 작가님은 인생 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등을 얘기하는데요, 조지 오웰의 산문집은 바로 샀고(카페가 있는 서점에서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깁니다), '악령'은 조만간 구입하여 읽을 예정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 책이 방아쇠를 당겨 주네요).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독자 중 하나가 사게 만들었으니, 장 작가님의 이 책은 최소한 저에게만은 성공한 책입니다.
-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권태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쎄. ... 책이 재미가 없어서 책장이 잘 안 넘어가면 그 책은 덮고 그냥 재미있는 다른 책을 읽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 "가끔 책을 어디서 읽느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 물을 안 마시면 목이 마르고 책을 안 읽으면 마음이 허하다.
책을 읽는 행위, 독서가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저도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물쩡 거리거나 '딴 취미가 없어서요'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책 한 줄도 읽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종종 있습니다.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생각은 하지만, 안 읽는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닙니다. 와중에 종종 권태기도 와서, 책을 쌓아놓고 읽을 책 없다고 종종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장 작가님은 권태기가 없었다고 하네요. 지독한 읽는 인간입니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읽기 위해서 읽으면 이런저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쓰기 위해서 읽으면 조금 나아질까요?
그렇다고 장 작가님이 엄청난 다독가도 아닙니다. 20대 이후부터는 읽은 책을 쭉 적어 놓았다고 하는데, 대략 1,500권 정도라고 하더군요.(참고로 장 작가님은 75년생입니다) 짐작하기로 이 분은 책을 참 꼼꼼히 찬찬히 그리고 꾸준히 읽는 분입니다. 사실 '많이'라는 형용사는 다분히 상대적인 단어이기에, 많이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의미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보다는 질이라고나 할까요? 읽은 책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써먹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읽은 양으로만 따지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분은 책과 함께 말 그대로 사는 분입니다. 책을 읽는 것과 물 마시는 것을 동급으로 비교하다니. 여기서 한 가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태도와 집중력이 핵심이라고. 장 작가님도 책에서 언급합니다만 책 많이 읽고 나서 본인의 독서 편력을 자랑하면서 독서법 책을 내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그리 와 닿지 않습니다. 양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태도와 집중력, 그리고 애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안 읽는 게 물 안 마시는 것과 동급 정도는 되어야 작가 하는 것 같습니다. 안 읽고는 못 살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독자이자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
책을 좋아합니다.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만 책이라는 물건 자체도 좋아합니다. 유치하기는 합니다만 책꽂이에 꽂힌 책을 쭉 보고 있으면 부자 된 거 같아서 좋습니다. 그런데 책이라는 물건 자체도 의미가 큽니다만, '책이라는 매체를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전자책이 좋다, 종이책이 좋다,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더니 아니지 않으냐 등의 논쟁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독서라는 행위, 책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이 독서라는 행위가 비교 불가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책을 종종 구입해서 읽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더 선호합니다. 포터블하기도 하고 종이 자체의 질감, 종이향과 잉크 향도 좋고, 밑줄 칠 때 만년필과 종이가 만들어내는 그 사각거림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서를 어떤 형태의 책으로 할래'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중요합니다. 너무 뻔한 얘기인가요?
- 그런데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다고 아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책벌레였던 인간 백정도 수두룩하다.
-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든 나라는 나치 독일이었고, 히틀러는 평생 개를 아낀 채식주의자였다. 이는 단순히 불쾌한 우연이 아니다. 공감이 윤리의 지침이 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가를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다.
책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책을 읽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저런 수식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 좋은 사람이, 좋은 책을 읽어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똑같은 유유를 먹어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됩니다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됩니다. 소가 될 것이냐 독사가 될 것이냐의 책임이 책에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우유는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본성이 잘못된 사람이 읽으면 잘못 적용되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읽고 성경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사고 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긴 수사와 젠체하는 단어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높다.
글을 쓸 때, 진실하고 간결하게 써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소개하면서 장 작가님이 한 말인데요, 정말 동의합니다. 글은 정직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며, 맑고 깨끗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얘기, 본인의 지적 역량을 뽐내기 위해 힘을 잔뜩 주고 남들 무시하는 것 등등 조심할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진실을 가리려면 치장이 많이 필요하니, 꾸미고 또 꾸미고 덧붙이는 것 아닐까요? 속지도 말아야겠고 속이려 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글은 내가 죽어도 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