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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Aug 17. 2015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4)

펑유란 선생의 눈을 빌려 교사로서의 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굉장히 훌륭한  책입니다.

한 분야에 대해 사(史)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 분야를 말 그대로 잘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듭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벽돌을 쌓아 놓는다고 다 집이 될 수 없듯이

사료를 모아 놓는다고 해서 다 역사책은 아닙니다. 철학의 역사를 서술한다? 더군다나 쉬운 일 아닐  것입니다.


'내 맘대로 고전' 매거진에 빨리 소개하고 싶은데 내공이 부족해서 아직 글쓰기를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펑유란(1895~1990)

이 '중국철학사'에는 공자의 삶 및 그의 사상에 대해서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특히 교육가로서의 공자를 조명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는데요,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최초의 교육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었으며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인재양성에 무엇보다도 힘을 쏟았고, 신분의 귀천을 전혀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 지도를 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자기 사람 및 세력 만들기로 인한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았았던 공자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보다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길러내고 싶었던 것 입니다.

 

사실 그 자신이 고전 독서 및 공부를 통해 고대 성현들을 사숙(私淑)한 훌륭한 학생이었기에 탁월한 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전을 읽고 정리해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기 위한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것, 탁월한 부분입니다.


앞에 올린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뉴턴의 명언을 따르는 심정으로 한 번 더 교사로서의 공자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교사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나라도 이런 교사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공자는 교육가였다. 그의 강학목적은 "인재양성"에 있었다. 특히 국가를 위해서 일할 인재를 양성했지, 어떤 한 학파(一家)의 학자를 양성하지 않았다. ... 즉 공자는 제자들을 전적으로 '인재'가 되게끔 했지, 자기가 주창한 학파의 학자로 가르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는 중국 최초로 학술을 민중화했고, 교육을 직업 삼았던 교수노유(敎授老儒)였고, 전국시대의 강학과 유세의 풍습을 열었으며, 중국에서 농부도, 공인도, 상인도, 관료도 아닌 선비라는 계급을 창립했거나 적어도 선양발전(發揚光大)시켰다.


공자의 행적 및 중국 역사상 영향은 소크라테스의 행적 및 서양 역사상의 영향과 서로 비슷하다.


공자가 최초로 육예를 일반인에게 가르쳤다고 말한 것은 공자 이전에 일찍이 누가 대규모로 학생들을 물러 모아 교육했다거나, 더욱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했다"는 말을, 믿을 만한 고서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공자는 처음으로 강학을 직업 삼아 생활을 유지했다. 이 사실이 결코 공자의 평가에 손상이 되지는 않는다. 생활이란 어쨌든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술을 보편화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선비계급의 창립자 또는 적어도 선양발전시킨 인물이었으므로 그의 업적의 위대함은 어쩌면 소크라테스를 능가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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