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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주 May 05. 2020

수습기간 막 끝낸 막냉이 기획자의 단상

이커머스 기획자의 일상과 생각

기획자가 된 지 4개월 조금 넘었다. 간절했던 회사에서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게 아직도 현실감 없고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회사 생활이 마냥 쉽진 않았다. 다른 사람은 반나절에 끝낼 일도 일주일 씩 붙잡고 있기 일쑤고, 선배님들 대하는 게 서툴러서 실수 아닌 실수도 여러 번 했다. 사소한 일로 벌벌 떨기도 하고, 작은 칭찬에 하루 종일 기분 좋기도 했다. 별거 아니지만 나에게 크고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노트 앱에 짧은 글을 적어놨다. 이 브런치 글은 그중 아주 일부를 옮겨놓은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건 나로선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글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잘 알아야만 타인의 기준에서 내가 정의되는 것을 경계할 수 있고, 그래야만 나의 주관을 갖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획이란

나는 정석을 원했다. 기획 일이 주어졌을 때, 항상 모범 답안을 찾았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고민했다. 정해진 방법대로 따르기만 하면 완성되는 구조를 원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 적어도 기획에서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기획자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래서 자주 헤맸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팀엔 든든한 선배 기획자가 많았고, 회사엔 훌륭한 기획 문서가 충분했다. 하나씩 차분히 읽을수록, 역시 저마다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아무리 읽어도 그걸 그대로 따라하기엔 무리였고, 어떤 기획이 좋은 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맡은 서비스를 확실히 이해하고, 회사 업무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서비스를 잘 아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십 년이 넘게 운영된 서비스를 단기간에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비자일 땐 몰랐던, 내부 기획안과 히스토리를 보며 하나씩 배우고 있다.


가령, 우리 회사 서비스 중 아쉽거나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발견하더라도, 히스토리를 파보면 다 그렇게 기획된 까닭이 있다. 심지어 내가 새로 제안한 서비스가 알고보면 예~전에 이미 제공했다가 접은 서비스인 경우도 종종 있다. 황당하지만 실화다. 너무 당연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는 이미 회사에서 수백 번 고민했다. 그런 흔적들을 좇으며 기획을 배우고 있다.


기획이 어려울지언정 너무 재밌다. 기획은 나에게 천직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며 항상 감사하다. 거만하지 말되 자신감 있게 일을 잘하고 싶다. 요새는 그런 생각뿐이다.


책상 위 나의 위로, 죠르디.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라이언

#커뮤니케이션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라인홀트 니버-


가끔 느끼기에 신입이 넘지 말아야 하는 암묵적인 선이 있는 것 같다. 나서도 되는 순간과 아닌 순간을 구분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어렵다. 수평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의 생각을 말해야만 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모나지 않으면서도 '논리 있게' 말하는 것이 기획자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당황하면 어버버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조리 있게 말하고 싶다.


#자연스러운 사람

나는 너무 작은 일에도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고 혼자 동떨어짐을 느낀다. 특히 회사에서 어린 티를 내지 않고, 팀에 녹아드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그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선 선천적인 타고남이 필요한 게 아니다. 몸에 밸 정도로 피나는 노력, 시간의 쓰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거다. 배우 김태리가 신입임에도 현장에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거는 그간 쌓아온 연기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입이 아닌 셈이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선 내 몸과 마음이 익숙해져야 하고 대비되어야 한다. 욕심만 있어선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조급해지면 안 된다. 조급해지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나는 경쟁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건 회사 생활뿐만은 아니다.


#일잘알

팀 선배님이 나에게 일을 잘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과 깊이 고민한 결과물을 내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선배님은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일을 끝난 뒤에 목적을 달성했는지 구체적인 결과물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업무와 관련된 책을 이것저것 추천해주셨다. 그중 하나가 OKR관련된 책.

읽을수록 이상적인 이론과 실무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상적인 이론과 실무의 간격을 좁히려는 태도는 중요한 것 같다. 상황상 다 적용하진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론 옳은 방법을 계속 떠올리며 일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를 만들거라 생각한다. 일의 목적과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것. 계속 되뇔 수 있기를.


#데이터

취업 전에 해놓은 SQL 자격증 공부가 일할 때 꽤 큰 도움이 되었다. 필요한 데이터를 뽑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편리한 일이었다. 물론 아직 회사 데이터 구조도 모르고, 원하는 데이터가 어디 숨어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지만 기본적인 SQL 문법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 종종 있다.


우리 팀에 BA(business analyst)가 있어서 자극을 받는다. 기획자도 좋지만, 나중엔 BA도 해보고 싶다. 천천히 공부하다 보면, 적어도 은퇴(?!)하기 전엔 BA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요새는 바빠서 공부를 접어두었지만 다시 제대로 공부해야지. 일단 공부해야 할 것은 크게 (1) 데이터 아키텍처, (2) SQL이랑 파이썬 문법 공부 (3) 실무 통계 이 세 가지다. 이 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굳게 결심!!! 진짜 할 것이다!!!




아직 쓸 말도 남았고 제대로 정리된 것도 아니지만, 일단 글 발행!! 왜냐면 다 완성시키고 업로드하려면 아마 나는 평생 브런치에 글 못 올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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