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프로젝트 런칭 후 느낀 점
1년간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입사는 작년 1월에 했고, 그해 8월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올해 8월에 오픈했으니 꼬박 1년이 걸린 셈이다.
나는 메인 기획자도 아니었고 그저 일부분을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프로젝트는 끝마친 것은 처음이라 아직도 그 여파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1년 차 신입이 경험하기 힘든 임팩트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잘 마무리하고자, 오픈 후 소감을 짧게 남겨보고자 한다.
나는 일단 오픈만 하면 좀 한가해질 줄 알았다. 오픈하면 플젝 때문에 못 갔던 여름휴가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오픈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근데 오히려 더 바쁘면 바빴지 한가해지진 않았다. 오픈 후에 해야 할 일을 나열하자면 이러하다.
1) 버그 대응 : 런칭 전 QA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버그들이 빵빵 터진다. 정책의 구멍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 개발 오류일 수도 있다. 뭐든 간에 기획자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
2) 서비스 문의 대응 : 오픈 후에, 내가 만든 서비스를 이용해서 운영해야 하는 사업팀으로부터 각종 문의가 들어온다. 예를 들면 '프로모션 새로 등록하려는데 이미지 업로드가 안돼요' 이런 식이다. 서비스 이용 가이드를 써놨어도 미처 예상 못한 문의를 한다. 서비스가 스무스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기획자가 문의에 대응하며 뒷받침해줘야 한다.
3) 지표 데이터 추출 : 다양한 부서에서 런칭 후 효과 지표를 뽑아달라는 요청이 온다. 오픈 전과 비교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매출액은 얼마나 늘었는지 등등..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했기에 기존 시스템으로는 확인 못하는 게 많아서 직접 쿼리 작성해서 SQL 돌릴 일도 많다. 대시보드를 생성해놨다면, 데이터가 잘 뽑히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아무튼 이런 데이터 요청이 너무 많아서 데이터 뽑다가 죽는 줄 알았다.
4) 개선 및 유지보수 : 오픈 일자를 맞추기 위해서 미뤄놨던 다양한 백로그들이 있기 마련이다. 리스트업 해놨던 개선 사항들을 잘 챙겨서 진행해야 한다.
서비스 기획자나 PM들이 프로덕트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표현할 때 흔히'내가 낳은 자식 같은 프로덕트'라는 말을 쓴다. 이 프로젝트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말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이미 만들어진 서비스를 개선시키거나 변형하는 기획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프로덕트였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낳은 것 같았다. 몇 배로 공들여서 기획해야 했기에 애착이 저절로 생겼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 서비스에 대해서라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자부심은 처음 겪어보는 생소한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경험해보니, 다음 프로젝트도 잘해나갈 용기가 생겼다.
왜 나 같은 주니어가 이런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프로젝트가 한참 진행 중일 때쯤에 알게 되었다. 담당님이 말하기를, '네 눈빛이 너무 하고 싶어 하길래' 조인시켰다고 한다. (마침 일손도 모자란 상황이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긴 했음.) 물론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라 욕심이 난 건 사실이지만 딱히 티 낸 적은 없었는데 알아보셨다니 너무 신기하고 소름 돋는다!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라 힘들었지만, 야근도 하고 주말에 공부도 해나간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열정으로 맡게 된 일이었고, 열정으로 끝낸 셈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니어 기획자들도 대형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건 기획이라는 직무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이 서비스에 대해 광고하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알아봐 주었다. 그렇다 보니 오픈 후에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반응과 피드백을 보내왔다. 대부분 칭찬보단 비판이 더 많았다.
근데 사실 이미 다 예상했던 비판들이었다.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회사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못 고친 점들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점임에도, 막상 원색적인 비판을 접하니 너무 무력감이 들었다. 마치 내가 무능력해서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처음엔 이런 쓴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쓴소리와 선 긋기로 했다. 외부 사람한테는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한텐 어차피 변명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의 완성도를 온전히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멘탈이 버틸 수 없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엔 보통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와 소통했다. 그런데 이번엔 워낙 큰 프로젝트다 보니 법무팀, 사업팀등 회사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제휴를 맺은 다른 회사의 개발팀과 PM과도 협업할 일도 정말 많았다. 사내 사람들이랑 협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며 기획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은 이번 프로젝트가 나에게 남긴 가장 큰 자산이다.
오픈한다고 프로젝트 관련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서 시원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이런저런 관련된 일이 계속 이어져서 매듭짓기가 힘들었다. 수능이 끝났는데도 수능 공부하는 기분이랄까.
근데 또 막상 뿌듯함을 즐길 수 있는 날은 오픈 날짜 그 하루뿐이었다. 런칭한다고 뭐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고, 그냥 똑같은 나날들을 버텨내야 했다. 나에게 분명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고, 잘 마쳤는데도 마음이 좀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파티가 끝난 후, 텅 빈 파티장에 나만 남겨진 것 같았다. 진심을 다해 공들여 만든 서비스다 보니 여운이 좀 오래 남나 보다.
아무튼 내게 많은 배움을 준 프로젝트인 만큼,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복기했다.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넥스트 레벨로 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