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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라는 꿈

시간과 재미

by 임우주

기획자로서 나의 무기 : 시간과 재미


내가 지금까지 기획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을 잘 할 수 있었던 나만의 비법이자 무기는 '시간'이다. 기획은 어느 정도 정답이 정해진 일이기에, 시간을 들여 깊이 고민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기획을 할 때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편이다. 주말 동안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다듬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더 나은 기획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쓰고 공들여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재미'이다. 진심으로 이 일을 좋아하고 재밌어해야 자발적으로 시간을 더 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기획자로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뿌듯하다. 그래서 내 시간을 더 투자해서 일하는 것이 아깝거나 힘들지 않다. 오히려 정말 하고 싶은 기획이 있을 때는 야근을 해도 신이 난다.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그것이 기획자로서 나의 근본적인 무기다.




디자인을 좋아했던 어린시절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10대와 20대 때 진로를 찾기 위한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한테 한번도 하지 않았던 그 과정을 그냥 주저리 주저리 적어본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나는 중3 미술 선생님한테 미술 특성화고를 추천 받았지만, 미술보다 공부를 더 잘했기 때문에 외고를 가게 되었다. 외고에 가게 된 이후에도 계속 미대에 대한 미련이 남았지만 외고 특성상 미술 쪽에 가진 못했다. 예술은 밥 굶는다는 부모님의 제재도 한몫했다.


그런 상태로 경영학과에 오게된 나는 UX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그 개념은 미술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나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애매하게 독학으로 UX에 대해 이것저것 배우다가 대학교 2학년 때 '삼성디자인멤버십'이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삼성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유명했고, 날 제외하면 실력 개쩌는 디자인 4학년 전공생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빡센 서류 통과와 1박 2일동안 치뤄진 과제와 면접을 경험한 것이다. 결과적으론 떨어졌지만 여기까지 간 것만으로도 어쩌면 내가 재능이 있는거 아닐까란 착각이 들었다.


그 후에 디자인공학을 부전공하며, 그리고 창업으로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보며 UX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어떤 대외할동을 하든 디자인은 다 내 몫이었다. 없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온갖 디자인 일을 도맡아했다. 아는 지인이 하는 가게의 디자인 홍보물을 만들어주거나, 시청에서 사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다. 힘들어도 그게 너무 재밌었다.


맨날 뭔가 만들다가 툭하면 밤새던 시절


그러다 아무래도 UX를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자퇴하고 3년제 디자인학과에 들어갈까 고민하며 입학 설명회(sadi)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자퇴는 너무 무서웠고, 대신 인턴으로 모은 돈을 다 털어서 디자인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에서 나는 베이스도 없는 비전공생이었고, 이대로면 UX는 커녕 취업도 힘들 것 같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취준을 택한다. 결과적으론 운좋게 기획자 신입공채로 첫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

현업에서 바라본 UX는 디자이너보단 기획자의 role에 가까웠고, 오히려 디자이너보다 기획자가 내가 꿈꾸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비로소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이다. 돌고 돌아 결국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첫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신이나고 재밌었는지 모른다. 업무를 배울 때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니 너무 신기했다. 오히려 돈을 주고서라도 하고 싶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당시 사수님이 퇴사하면서 써준 편지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처음 얘기할 때 서비스기획자가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던게 생각난다. 사실 난 그정도까진 아니어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 저렇게 행복한 일을 하게 된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때의 내 들뜬 마음이 사수에게도 보였나보다. 아무튼 이 편지 내용은 내가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읽으려고 찍어둔 건데, 놀랍게도 필요한 순간이 아직 오진 않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그 마음 그대로라서.

사수님이 써준 편지와, 사내 방송에 나온 나


꿈꿨던 회사에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조급함


21살 때 운좋게 카카오에서 2개월동안 어시스턴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같은 팀에 있던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들이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나도 언젠가 IT 회사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리고 10년 후, 그 때 그 회사인 카카오에서 일하게 되었다. 카카오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게 된 지금의 서른한 살의 나는 당시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 기획자와 함께 협업하며 일하고 있다. 이건 그야말로 'Dreams come true'였다. (그분은 어시스턴트였던 나를 기억하진 못했지만 ㅎㅎ)


아무튼 그렇게 꿈꿨던 회사에서, 좋아하는 일을, 꽤 인정 받으며 잘 해내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목이 마르다. 너무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라 그런지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조절 안되고 브레이크가 잘 안걸린다. 연봉 오르는 것보다도, '잘한다'는 동료들의 칭찬 한마디가 더 큰 동력이 되고 기쁘다.


아직도 나는 스물 한살의 그때처럼 UX가 너무 좋다. 벌써 일을 시작한지 6년이 지났는데도.


근데 요즘은 이런 열정이 과한가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너무 조급해져서 동료들한테 해를 끼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은 그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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