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졌다고 느낀 날, 나는 처음으로 불안했다.
늘 ‘관심받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 감정을 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다.
어릴 적부터 “예쁘다”, “눈빛이 똘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특별함을 부여했고, 그 속에서 나는 존재감을 느꼈다.
그 시선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선 안에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더 이상 그 중심에 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물러난 듯한 기분.
익숙한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 나만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방법을 썼다.
남편 앞에서는 괜히 아픈 척을 했고,
직장에서는 내 성과에 조금씩 말을 보탰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땐 절실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했다.
그 모든 행동의 바닥에는 같은 문장이 숨어 있었다.
“나 좀 봐줘.”
이제는 안다.
관심이라는 건, 결국 위로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나 지금 좀 힘들어. 알아줘."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갈구한다는 걸.
어느 날 거울을 보았다.
관심을 받기 위해 애쓰는 내 얼굴이 낯설었다.
조금 불쌍했고, 동시에 우스웠다.
그날 이후, 나는 시선을 바꾸기로 했다.
나를 향한 시선에서, 타인을 향한 시선으로.
조용히 화를 내는 동료의 표정을 살폈다.
말없이 앉아 있는 후배의 손끝을 보았다.
그들도, 나처럼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 배웠다.
그 신호를 안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나는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었다.
때론 외면했고, 때론 모른 척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줘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알아차리면 된다’는 여유로.
관심은 기술이다.
적절한 거리와 타이밍, 그리고 감도.
그 기술이 서툴던 시절엔 애를 썼고, 지금은 덜 애쓴다.
아마도 그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신호를 본다.
짧은 한숨, 눈빛, 말끝에 매달린 조용한 외로움.
그걸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알아차리는 마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