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웃음 말고, 내 웃음을 찾고 싶다

by 이영미

며칠 전, 회사 직원 한 분이 영화 ‘하이파이브’를 보고 왔다며 너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회사와 관련된 캐릭터가 나온다며 장면 하나하나를 신나게 설명하는 그분의 표정은 꽤나 상기돼 있었다.
혼자 깔깔 웃으며 떠올리는 모습이 참 밝아 보였다.

그때 나는 오전 업무에 한창 몰두해 있었다.
솔직히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괜히 그분이 민망해하실까 봐,
나는 습관처럼, 자동처럼 웃었다.
입꼬리는 올랐지만,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나는 왜 웃고 있지?”

요즘 나는 웃는 일이 어쩐지 피곤하다.
예전에는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이 좋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라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웃음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가정에서는 엄마니까,
직장에서는 선배니까,
누군가는 나를 보고 안심해야 하니까.

진짜 웃겨서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베르베르의 웃음』을 읽게 되었다.
책 제목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쿡 찔렸다.
요즘 내 삶에서 ‘웃음’은 가장 멀리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짧고 엉뚱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었지만,
그 속에서 자꾸 내 모습이 보였다.

특히 이런 장면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가기 전, 단 하나의 질문으로 된 시험을 치른다.
“당신은 얼마나 당신답게 살았습니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억지웃음 위로 찬물이 끼얹어졌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답게 웃고 있는 걸까?

돌아보면 나는 늘 ‘좋은 사람’으로 살아오려 애썼다.
아내로, 엄마로, 직원으로, 선배로.
그러는 사이, 정작 나는 언제나 뒤로 밀려 있었다.

슬퍼도 참았고, 화가 나도 눌렀고,
지쳐도 ‘괜찮은 척’ 웃었다.
그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한 방어막,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가면이었다.

베르베르는 말한다.
“웃음은 인간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혹시 나는, 진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웃고 있었던 건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하루를 돌아봤다.
오늘 나는 몇 번이나 웃었을까?
왜 웃었을까?
그중에 진심에서 우러난 웃음은 있었을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았다.
몸이 기억한 표정이었을 뿐,
내 마음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억지웃음을 잠시 멈추고 싶다.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는 부담도,
무조건 착해 보여야 한다는 의무도,
하나씩 내려놓고 싶다.

웃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있고,
무표정이어도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있다는 걸
이제는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그 웃음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웃는 얼굴’을 되찾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나로 웃는 순간, 그 웃음을 되찾고 싶다.

그 웃음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오늘 나는 조용히 이 질문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얼마나 나답게 웃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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