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말을 하고 살 수 있을까?

by 파랑

엄마를 하지 못하는 아이는 언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처 재활병원에서 감각통합 치료도 시작했다. 아이가 겁이 많아 그네를 잘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는 불빛 조명 소리에 매우 민감해서 맘에 들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면 크게 울거나 도망가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낯선 것에 적응하는데 한참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말을 못 하는 것도 후후~ 바람을 부는 입 모양을 하지 못했고 초를 불어서 끄는 것도 매우 어려워했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중에 혀와 입의 움직임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인데 숨을 입으로 내쉬는 것을 잘하지 못하니 당연히 말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언어치료실에서 촛불을 부는 법, 소리를 내서 후후 부는 법, 숨을 쉬면서 입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ABA 치료를 시작하기도 했다.


ABA 치료는 시립 어린이병원 종일 반이 있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들어가 아침 10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의 학습 과정과 치료과정에 치료사와 함께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집에서도 반복하며 아이에게 언어와 사물을 가르쳐주는 치료과정이다.

ABA에 참여하는 아동의 대부분은 36개월까지 무 발화 아동이었으며 우리 아이는 그때까지도 엄마를 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한 마음이 매우 컸고 돈과 시간을 들여 아이의 치료에 매진하게 되었다.


ABA에서는 대부분은 먹는 걸 이용한 강화를 통해 아이에게 그림 카드를 통해 학습시키고 보상을 주며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해 간다. 아이는 반복 학습을 통해 주변 사물이 무엇인지 그림 카드를 이용해서 배우고 오리, 호랑이, 펜, 연필 등의 모든 사물에 대해 인지하고 학습하게 된다. ABA를 통해 사물이 무엇인지 배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그림 카드를 포인팅 하며 인지적인 기능을 많이 끌어올렸다.

PECS와 ABA에서 사용한 언어수업 방법


ABA를 통해 인지의 기능을 끌어올린 뒤에 아이의 발화를 돕기 위해 프롬프트를 하는 언어치료실을 찾아 그 선생님이 계신 서산에까지 가게 되었다. 외국에서 배워온 프롬프트 언어 수업은 입 모양을 조작해서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아이가 알게 되고 반복해서 연습함으로써 아이의 발화를 도와주는 치료였다. 일주일에 두 번을 서산을 왕복하면서 아이는 아주 조금씩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으니 떼를 쓰게 되고 포인팅이 되지 않으니 부모님 손을 가져가서 원하는 것에 놓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언어도 행동이나 습관처럼 아이에게 익숙해져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언어를 배울 수 없었던 나의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니 다른 대체 행동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엄마, 아빠의 입 모양을 선생님이 손으로 만들어주며 아이에게 소리를 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언어로 표현을 했을 때는 많은 칭찬과 박수를 주며 아이에게 잘했다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지나고 아이는 발음의 문제가 있지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나의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면 어떡할지 걱정도 많았다. 지금은 너무 말이 많아서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두곤 한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시간이 올 거라고는 믿지 못했다. 신랑이랑 둘이서 농담처럼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조용했었는데 말이야’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종일 ABA 치료를 하고 감각 통합 치료, 언어치료, 인지 치료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400만 원을 넘긴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150만 원만 쓸 걸 그랬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했다. 돈보다도 많은 경험과 치료가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쓰는 돈이 치료비였기 때문에 아낌없이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돈은 아깝지만 그때 들인 시간과 나의 노력에는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서산까지 주말에 함께 해주고 운전을 해주신 친정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주중에 늘 치료를 데리고 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해서 토요일 하루만큼은 아빠가 운전을 대신해서 치료실을 다니곤 했었다.


눈이 많이 쌓인 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서산을 데리고 오면서 ‘차에서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한 날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집에서 사용한 언어표현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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