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도 엄마가 처음이야

by 파랑

가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눈이 즐겁고, 운전하면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가을.jpg

이런 가을날 운전을 하고 동생 집에 도착했다.

두 돌 된 조카가 이모가 왔다며 활짝 웃으며 미소를 날린다.

40살이 넘어서 결혼을 해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동생은 두 돌 된 아이를 혼자 키우느라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하루하루를 애를 보느라 애쓰고 있다.

조카가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두 돌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알지 못했다.

내 아이는 두 돌에도 엄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하고 착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다고 생각했을 뿐.

엄마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두 돌에 말을 조카처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


조카아이는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침에 엄마가 ‘도서관 갈까?’ 하면서 조카를 데리고 나왔는데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내복을 사러 근처 백화점에 들렀는데~ 차에서 조카가 ‘도서관 가는 줄 알았는데 백화점에 왔네’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동생과 나는 한참을 웃었다.


조카는 나를 보고는 ‘ 반짝반짝한 가방 들고 왔네~’라고 말을 한다든지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고 ‘부들부들한 신발 신었네’라고 말을 해주고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높이 쥐고 있으면서 ‘숟가락을 꼭 잡고 있어야 해, 떨어뜨리면 안 돼’라고 말하며 자신이 들은 말과 상황에 맞는 말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예쁜 표현을 하는 조카아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들과 정말 달랐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내 아이는 잠이 많고 착한 아이였으며 유난히 말이 없는 편이었다.

아랫입술을 빠는 경우가 많아 음료수 쿠우의 ㅅ자 입을 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잘 울지도 않은 순한 아이였다.

나에게는 결혼 3년까지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간절한 마음으로 시험관을 해서 가진 소중한 아이였으므로 두 돌때까지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했다.

직장을 휴직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두 돌때까지 평탄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두 돌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엄마를 하지 않았다.

나를 부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눈 맞춤도 길게 하지 않았으며 낯을 가리는 일도 없었고 포인팅을 하거나 시선을 공유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점들을 잘 알지 못하고 좀 늦겠지 하며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두 돌이 지나고 나서 아이를 셋을 키운 친정 언니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꺼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는 것 같은데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게 어떨까?’

언니가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다른 아이들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시립 어린이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대기를 걸었다.

아이의 발달이 의심될 때 소아정신과 진료를 대기를 걸어 두었는데 세브란스의 유명한 교수님의 경우 진료 대기가 1년이 넘었고 시립 어린이병원도 4개월 이상의 대기기간이 있었다.


일단 대기를 걸어 두고 가까운 언어치료센터에 방문해 언어진단을 받고 발달 재활 바우처를 받아서 언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발달 재활 바우처는 소득의 제한이 있지만, 장애를 진단받지 않고 진단서만 있어도 바우처를 신청 할 수 있었다. 언어치료센터에서는 지금 언어발달이 늦은 게 맞으니 언어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 마음은

‘ 그래, 일찍 치료를 시작하니 몇 개월만 하면 정상 발달을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정상 발달을 하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많은 것을 해주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두 돌의 아이를 데리고 치료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01.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