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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았다곰 Dec 06. 2021

피터의 법칙

내가 승진하지 않는(못하는) 이유

늦게 교직에 들어섰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쑥스러운 듯 툭 던지던 한 마디, '초등학교 선생은 어떠냐?'라는 질문에 3초 만이라도 고민을 했더라면 이렇게 멀리 그리고 늦게까지 돌아오진 않았으리라.


덕분에 승진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10년 이상 돌아왔으니 너무 늦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으니 관리자는 별로라고 애써 변명하고 자위해보아도 못내 가보지 못한 길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더라.


최근에는 변명거리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바로 '피터의 법칙'.


어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수준까지 승진한다는 원리인데, 자기가 맡은 현재의 자리에서 성공적 성과를 거둬서 승진을 계속하더라도 어느 순간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며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어 조직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는 현상을 설명한단다.


교장, 교감 외에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승진체계가 없는 교직 문화에서는 딱 들어맞는 원리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왜 승진을 할 수 없는가 또는 왜 내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가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하다. 지금 단계에서 괄목할 만한 아니 최소 성공이라 불릴 수 있을 만한 성과가 있어야 다음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볼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작은 일을 맡겼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조차 꼼꼼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한 번이라도 한심한 실수를 반복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확정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모습만 보더라도 내게 다음 계단은 없구나 생각한다. 아니 진부하긴 하지만 결정적인 자격, '아이들이 변화되리라는 확신이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는 나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자격이 없다.


그렇다 해서 철밥통의 장점을 살려 이 자리에 마냥 머무르겠다는 건 아니다. 더디지만 종종걸음으로 걸으려 애쓰는 중이다. 


그래프는 'success'를 통해 'advancement'라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우상향 하지만, 그전에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s-u-c-c-e-s-s'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수평 이동해야 한다. 나는 그 길을 걷는 중이다. 이제 신규티를 벗었으니 나는 지금 두 번째 'c'에 와 있을까, 아니면 'e'에는 다다랐으려나. 남들보다 늦게 출발했으니 내 공간은 'success'가 아니라 'suces'쯤 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잔걸음이지만 그래도 계속 걷고 있는 것을.


최소한 아이들에게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고, 평생 기억될 만한 스승이 되진 못하더라도, 졸업앨범을 뒤적일 때 뒤늦게 또 한 번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자평하니 당장은 그걸로 충분하다. 언젠가 'success'의 마지막 's'에 다다를 무렵 그래서 눈앞의 'A'가 어른거릴 때쯤에라도 지금의 만족이라도 유지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아이들과 한 시간이라도 흙운동장에 나가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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