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던 그대를 추억하며.
운동회가 전교생뿐만 아니라 마을의 축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1년 중 딱 하루, 학교 문이 활짝 열리고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어우러지던 행사였는데, 거기에 동네 어른들과 지역 유지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제법 규모가 있는 학교에는 지역 정치인들까지 얼굴을 내밀 정도였으니 어떤 행사였을지 짐작이 되리라.
요즘은 다르다. 물론 지금도 그런 학교가 있긴 하나, 대체적으로 학년별 체육대회나 이벤트 업체에 하루를 맡기는 학교가 많아지는 추세라 예전처럼 아이들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참여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그 시절의 운동회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 중 하나는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웃음을 자아냈던 코너는 학부모님들의 계주 경기. 배가 볼록하게 나온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화 또는 기대에 못 이겨 쑥스러운 모습으로 운동장에 나오면 그 자체로 진귀한 광경이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싶은 모습으로 몸을 풀고,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은 어느새 당신들의 어렸을 적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방금까지 걸어 다닐 수나 있겠나 싶은 사람들이 총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운동장을 내달릴 때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동시에 안타까운 장면들도 보이는데,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어른들이 반드시 있었다. 하지만 아픈 것보다 넘어진 게 창피하기도 하고 혹시 자기 새끼가 실망할까 싶어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데,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다. 반드시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학부모들끼리의 계주 경기라고 하니 왕년에 바람깨나 가르고 달렸던 이가 자원했으리라. 아무리 수십 년이 흐르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하지 않았나. 잘해봐야 운동장 반 바퀴 달리는데 별 일 있으리라고.
그래서 넘어진다. 마음은 젊은데, 몸이 늙어 따라주질 않으니 넘어질 수밖에. 머리로는 이미 푸른 창공 아래 내달리던 '국민학생' 시절로 돌아갔는데, 몸은 성한 데보다 멀쩡하지 않은 데가 더 많으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비단 달릴 때뿐일까.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돌아가지 않는다. '문화 지체' 즉, 제도와 의식 등의 '비물질 문화'가 과학 기술 등의 '물질문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몸이 마음을 따라가 주지 못하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낯선 사람들과 만날 때도, 새로운 환경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내 혈관과 관절은 마음먹은 대로 젊어지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그 시절 기억으로 돌아가기보다 내 몸뚱아리를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자. 그러면 조금 더뎌도 넘어지지 않고 결국 결승선을 통과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