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통해 마주한 나 (2)
알쓸신잡, 알쓸인잡 등 알쓸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하나의 주제나 사건을 다양한 전문가의 시선으로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 알고 있던 사실도 모르는 이야기가 되고, 새로운 세계가 앞에 펼쳐지는 그 설렘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가슴속에 차오른다.
시리즈에 출연했던 분들마다의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는데, 김영하 작가님의 말이 유독 잊히지가 않는다. 알쓸신잡 3에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는데, 옮겨 적자면 다음과 같다.
" 절대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100% 사용해선 안 된다,
한 60~70%만 사용해서 써야 된다,
절대 최선을 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제 모토였어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난다.
그러니까 남겨 놔야 한다, 능력을.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 놓으려고 애쓰고 집에서 대체로 누워있어요. 함부로 앉아 있지도 않아요. 대부분 누워서 많은 일을 해요."
유머러스하고 부드럽게 말을 끝맺으셨지만, 나는 깊은 수면 중 알람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드는 때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일을 할 때면 70%만 한다고 생각하고 일에 임하라는 조언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강렬하게 와닿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맞다, 최선을 다하면 큰일이 나기도 한다.
나는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최선의 기준이었다. 사람마다 최선의 기준이 다를 테지만 내 최선의 기준은 하고 또 해서 지쳐 쓰러지거나 못해도 그 직전까지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자기 파괴적 기준인가... 하지만 몰랐다. 그게 나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계속 지속가능한 기준인지를 말이다.
위의 문제들을 제외하고도 내가 직면하는 문제는 많았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너무 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최선을 다한 만큼 좋은 결과가 뒤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높은 성과, 주변의 인정 등으로 보상받는 경우들 말이다. 그에 못지않게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는 게 함정이었다. 최선에 대한 집착으로 생긴 높은 긴장감과 그로 인한 정신적 에너지 고갈, 몸을 혹사시켜 나타나는 건강 등의 문제로 실수를 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해야 했던 시간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나에게 남은 상흔들이었다. 실패감, 좌절감, 후회, 자책 등 심리적 문제와 몸을 돌보지 않은 죄로 받은 신체적 문제가 복합된 청구서를 받아 들고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곱씹고 곱씹으며 상처는 깊어갔다. 이렇게 반복되는 상처는 학습된 무기력, 이상한 자존심과 수치심, 삶에 대한 버거움을 내 곁에 데려다 놓곤 했다.
김영하 작가님의 말처럼 내가 가진 100프로를 쓰면 안 되었다.
실패했을 경우 나를 보듬고 다음 단계를 준비할 에너지정도는 남겨두고 살았어야 했다. 아니,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삶은 파편화된 사건들의 합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유기적이기에 하나의 일이 끝나더라도 뒤에는 다른 삶의 장면이 앞의 일들을 양분 삼아 이어져간다. 내가 만약 해녀였다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데 모든 숨을 다 쓰고 물 위로 돌아올 숨을 남지기 못해 생명이 위험했을 테니 이게 큰일이 아니라 뭐겠는가.
김영하 작가님의 말을 곱씹던 시기, 제주의 한 책방에서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인 '엄마는 해녀입니다'라는 동화책을 만났다.
해녀인 할머니와 엄마가 물질을 나갈 때면 할머니는 엄마에게 말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숨의 양'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 숨의 양 안에서의 노력만 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대화하고, 이를 기록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거울씨,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푹 자고, 내일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가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