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통해 마주한 나(1)
"그 정도도 못 버텨서 뭐 해 먹고살래?"
"남들도 다 하고 사는데 왜 너만 유독 힘들다 힘들다 해?"
"조금만 더 버텨봐.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00이 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운동도 하고 건강한 삶을 살잖아. 너도 그렇게 해봐."
"다 정신력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맘 굳게 먹어봐."
"부모님 생각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니?"
"회피하려고 꾀병 부리는 건 아니지?"
"도대체 언제 좋아지는 거니?"
"한동안 괜찮아 보이던데 왜 또 갑자기 그래?"
등등 누군가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 누군가는 그냥 흘러가듯 툭 던진 저 말들에 나는 수도 없이 지옥을 맛봤다.
나는 십여 년 간 우울증과 싸워왔다. '싸워왔다'라고 표현한 것은 때론 비참해질 만큼 바닥의 바닥까지 드러내가며 벗어나려 발버둥 쳐왔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많은 분들이 경증부터 중증 우울증까지 겪고 있고, 너무 어두운 이야기들은 혹시나 부정적인 기운을 전달하지 않을까 해서 우울증과 관련된 이야기를 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마주하게 된 시발점은 우울증이고, 지금 나를 만든 대부분의 경험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덜 힘들까, 좀 더 나아질까'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도저히 이 이야기를 빼고는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의미 있게 전달되기 힘들 것 같아 이렇게 한 자 한 자 적어본다.
서두의 말을 건넨 이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내가 겪기 전에는 우울증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열심히 공부한 지금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또 부정적인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관계중심적 성향인 나에게 주변인들의 말이나 평가는 때론 사형선고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2주 넘게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이러다 미치든 죽든 둘 중 하나 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아가던 해 이전에도 우울증의 전조는 있었다.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직장에 앉아 있다 보면 갑자기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수도 없이 눌러야 했다. 그전에는 재미있던 취미생활도 전혀 재미가 없고, 사람들을 만나도 예전만큼 즐겁지가 않고,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뛰었으며, 자주 몸이 아팠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힘들고,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외면했던 것 같다.
직장에서의 사건과 개인사가 트리거가 되어 그동안 눌러왔던 우울이 한 번에 터져 나왔을 때는 도저히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과 감정들을 다 쏟아내자면 수십 편의 글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제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밤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소포클레스의 명언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누군가는 내일을 맞이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니 감사히 여기라며 나 자신을 달래보아도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아침은 항상 너무나도 우울하고,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씻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도 내 의지로 되지 않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러다 보니 제 몫을 제대로 못 해내는 날이 많았고, 이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수치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
뭔가 대단히 큰 의지를 가지고 '우울증을 이겨내 보자!' 이런 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덜 피해주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고, 대체의학에도 기대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상담대학원도 다녀보고, 친구들의 종교시설에도 따라가 보고, 생활패턴도 바꿔보고, 여러 운동도 해보고, 여행도 가보고,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만나보고, 사는 지역도 바꿔보고, 명상, 차, 도예 등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그러다 그 어느 것도 할 에너지도 없을 때는 1주일이고 한 달이고 집 밖에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어떨 때 우울증이 심해지는지, 어떨 때 조금 덜 해지는지 알고 나서 무언가를 하더라도 해야겠다는 것을.
'아... 내가 나를 먼저 알아야겠구나. 내가 나랑 먼저 친해져야겠구나.'
그렇게 항상 밖으로 향해있던 레이더를 조금씩 안으로 돌리고, 내 마음과 몸 상태를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신세계였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잘 아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는 게 쥐뿔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마주하는 경험은 괴롭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나에 대한 이해가 쌓여갈수록 그 어떤 약보다 효과가 좋았다. 지금은 병원과 약 없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러 번의 재발을 겪었기에 아직 끝이라 단언하지 않는다. 우울이란 녀석은 어쩌면 평생을 보듬어가며 동행해야 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까?'라는 하나마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도 있지만 이거 하나는 항상 명확하다. 겪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나는 나를 제대로 몰랐을 거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았을 뿐 아니라 영영 나와 친해지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