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통해 마주한 나 (1)
요즘은 그 열기가 덜해졌지만 한때 대한민국엔 MBTI 광풍이 불었었다. MBTI는 성격유형검사로 사람을 총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사실 수많은 사람을 딱 16가지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4가지 혈액형으로 사람을 나누다가 16가지 MBTI로 나누는 것은 그래도 점차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냐고, 우리나라도 조금씩 포용력이 더 생기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또 누군가 공감성이 떨어지는 답변을 했을 때, 예전에는 매정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도 "너 T구나?"하고 덜 불편하게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며,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또 다른 길이 하나 더 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측면 말고도 나에게 MBTI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명상을 만나기 이전에 처음으로 나를 마주하고, 스스로를 보듬어 본 계기를 MBTI가 나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2015년쯤으로 기억한다.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안 직장상사로부터 친구가 상담사라며 상담을 권유받았었다. 자신의 친구인 상담사에게는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기 힘들 수 있으니 한 다리 건너 다른 상담사를 알아봐 주는 섬세하고 고마운 분으로,
"나는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자랐다."
라는 유정화 시인의 '다행'이란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사람 중 한 분이었다.
소개받고도 한참만에 겨우 찾아간 상담소에서 앞으로의 상담을 위한 초기 검사 중 하나로 MBTI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몇 번의 상담 후 MBTI 검사지를 받아 들곤 상담사로부터 설명을 듣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검사나 상담 과정을 통해 상담사가 파악한 '내가 생각하는 나'는 ISTJ인데, MBTI 검사를 통해 살펴보면 ENFP라는 것이었다. 이 검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MBTI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한데, 에너지의 방향인 I(내향)와 E(외향), 인식기능인 S(감각)와 N(직관), 판단기능인 T(사고)와 F(감정), 생활양식인 J(판단)와 P(인식) 4가지 영역에서 각각 둘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에 따라 성격유형이 결정되는 것이다. 즉, ISTJ와 ENFP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정반대의 성격유형이라는 것이다. ISTJ는 내가 추구하며 스스로를 세뇌시킨 '이상의 나'이었고, ENFP가 그 당시의 내 성격에 해당하는 '실제 나'이었다. -'그 당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성격은 기질과 달리 시기에 따라 변화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고, 실제로 현재의 나는 ENFP가 아니다.-
"ENFP인 사람이 ISTJ로 살고자 노력했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나지막이 건네는 그 한 마디의 울림은 나에게 파도, 아니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나의 힘듦을 수용해 주는 그 한 마디에 우울증을 앓게 된 후 처음으로 마음에 와닿는 위로를 받았고, 내 마음이 항상 지옥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알 것 같으니 무언가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이상 속 내가 아닌, 내가 실제로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 이해하는 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수없이 나를 생채기내던 행위를 덜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에게 적용시키지 못했는데, MBTI를 통해 사람마다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라는 말이 진정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A와 다르니 a라는 일을 못할 수도 있구나.'
'나는 B와 다르니 b라는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구나.'
'나는 C와 다르니 c라는 행동을 안 할 수도 있구나.'
등등 내가 만난 많은 이들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부분들을 쏙쏙 골라, 너도 할 수 있다며, 아니 너도 해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이 나라고 나를 속이며 그 틀에 맞지 않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고, 괴롭혔구나...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했구나... 그냥 내가 정말 내 이상 속 나라고 생각했구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에서 나를 아는 과정의 문을 열어준 것이 MBTI였던 것이다.
그 후로 십 년이 흘렀다. 지금도 적(우울증)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고, 때론 지기도 이기기도 하며 엎치락뒤치락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십 년의 시간 동안 얻은 가장 큰 보물은 최소한 내가 나를 속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는 자기 합리화가 있고, 이를 알아차릴 때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 십 년 전의 나와 비교하면 거의 하고 있지 않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은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거기에서 내가 느낄 감정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A를 대신해 어떤 일을 했다고 하자. 나는 그리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고, 호감을 얻기 위해 그 일을 대신했다. 즉, 나의 감정적 이득을 위해 그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때의 나는 '온전히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그 일을 했다'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진심으로 믿었다. 문제는 반대로 나를 대신해 A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A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위했는데, 그 사람은 나를 위하지 않네'라고 몇 날 며칠을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사람이니 서운할 수 있겠지만 나를 속이지 않는 나는 '나 또한 내 감정적 이득을 위해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으니, 아예 얻은 것이 없는 건 아니고 다음에는 굳이 A와의 관계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안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서운함을 예전의 나보다는 빨리 털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감정&행동의 객관화는 에너지가 항상 부족한 나에게 감정 소모를 줄여주었고, 최소한 스스로에게 착한 척, 멋진 척하지 않는 날 것의 자신과 대화할 기회를 주었다.
내가 조금이나마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