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생각도 감정도 감각도 내가 아니다

요가&명상을 통해 마주한 나 (2)

by 거울씨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생각의 길이 있고 나의 길이 있습니다.

생각에 옳고 그름은 없어요.

나에게 유리한 생각과 그렇지 못한 생각이 존재할 뿐입니다.

생각에 이끌려 가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내가 할 일은, 즉 '나의 길'은 '알아차림'입니다.

-선생님께 얻은 소중한 언어들-


2015년에 처음 개인 상담을 받으며, 상담이 효과가 있으려면 자가 상담도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2016년~2017년에 직장 생활을 하며 상담대학원을 매 해 한 학기씩 다녔었다. 상담대학원을 다니며 큰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가뜩이나 부족한 에너지로 직장을 마치고 다니는 대학원 생활이 너무 버겁고 힘들기도 했다. 또 과도한 자가 상담과 나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타인에게 꺼내 놔야 한다는 것에 지치기도 했고, 처음 상담을 접하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큼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정체되는 시기가 와서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8년 (위빠사나) 명상을 만나게 되었다. 1년 간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었는데, 다니던 병원의 원장선생님께서 그곳에서도 꼭 꾸준히 병원을 다니라며 추천해 주신 곳에서 운영하는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 후 따로 마련된 명상실에서 나이 지긋하신 명상선생님과 1시간 정도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명상을 접한 초반 세 달여 동안 느낀 놀라움을 글로 다 써 내려갈 수 없는 나의 비루한 표현능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처음 명상실에 들어섰을 때, 주황색 불빛만이 켜진 조금은 어두운 공간 안쪽의 좌식 테이블에 선생님께서 앉아계셨다. 선생님께선 간단한 인사와 앉을자리를 권한 후 조용히 포트에 물을 끓이셨다. 그러시곤 어떻게 이곳을 찾게 되었는지를 묻고는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셨다. 나의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었을 때 즈음 종이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건네시고는 몸에 물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마셔보라고 하셨다. 마침 오전이라 비어있던 속은 미지근한 물의 흐름을 좀 더 잘 받아들였는데,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물이 좌우로 점점 온기를 실어 나르던 감각은 내 안에 생명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분명 나의 일상 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던 작업이었을 텐데 이제야 그를 의식하고 알아차리는 과정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얻어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명상을 만나는 첫날이라 구체적인 명상 수련은 하지 않고, '나의 마주하는 에세이 1장' 첫 문단의 말씀을 이날 해주셨다.


"1년 365일 24시간 매 순간 나와 함께 있고, 눈 감고 죽는 순간까지 평생 나와 함께 하며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나와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흔치 않고, 24시간 나와 온전히 함께할 수도 없어요.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주고 나를 가장 잘 돌보아 줄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잘 돌보기 시작하면 외부 그 누구의 관심과 사랑도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나 자신이 온전히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잘 돌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제야 자연스럽게 행복이 오고 내가 해 나가야 할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 없이도 내가 온전할 수 있다는 깨달음,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그리해야 한다는 배움은 두고두고 나를 세우는 주춧돌이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시작하게 된 위빠사나 명상의 원리는 단순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 위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 호흡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집중하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감각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름 붙여주고는 다시 내 의식을 호흡으로 가져와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 생각, 걱정, 슬픔, 화남, 다리 저림 등등과 같이 이름을 붙여주고는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원리만 단순했다... 수행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원래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판단 없이 이름만 붙여주고 다시 내 호흡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한번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이 따라왔고, 어떤 감정이 떠오르면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명상 수련 후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는 시간에 위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더니,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생각의 길이 있고 나의 길이 있습니다.

생각에 옳고 그름은 없어요.

나에게 유리한 생각과 그렇지 못한 생각이 존재할 뿐입니다.

생각에게 이끌려 가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내가 할 일은, 즉 '나의 길'은 '알아차림'입니다.

생각의 길조차도 객관적으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감정의 길에 끌려 다닙니다.

그때는 무기력해지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명상을 할 때 명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책망할 필요 없어요. 다른 생각이나 다른 신체 감각에 빠져 잠시 명상에서 벗어났더라도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나의 힘이 됩니다."


여러 말씀 중에서도 나에게 오싹한 깨달음을 준 것은 '생각이나 감정'을 나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면, '나는 이러한 가치관(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어떠한 상황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며, 이러한 신체(감각)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리곤 했기 때문이다.


위의 말씀은 인도의 힌두 철학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네티(아니다, 부정) 수행법과도 맞닿아 있다. 라마나는 감각적으로 또는 생각을 통해 체험하는 자기는 진정한 나가 아니며 스스로 자기라고 동일시하는 것들을 부정한 다음에 남는 순수한 앎이 '진아'라고 하였다. 즉,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 묻고 "나는 육체가 아니다. 육체는 결국 썩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도 아니다. 왜냐하면 두뇌는 육체와 함께 썩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그 이유는 인격과 감정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깊은 의문 속에 위의 '진아'의 개념을 도출해 냈다. -원광대학교 요가명상학과 교재 현대요가의 흐름(2024), 이경선-


몇 년간 개인 상담과 집단 상담 및 자가 상담을 통해 나를 알고자 했지만, 한동안 정체되어 올라오던 막막함이 조금씩 풀릴 실마리가 보였다. 노력해도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는 두려움, 그러므로 인해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할까 봐 몰려오는 걱정 속에 한없이 침몰되어 가던 중 누군가 밑에서 나를 받쳐주어 물 밖으로 떠오를 수 있게 도와준 느낌이었다.


생각도, 감정도, 감각도 내가 아니니 진짜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여정이 앞으로의 내 삶에 펼쳐지겠구나. 나의 생각이나 감정, 감각에 매몰되어 나를 비난하지도 원망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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