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고요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차를 통해 마주한 나 (1)

by 거울씨

ㅣ 어느 때보다 멍 때리기 좋아서 차 마시는 시간을 사랑한다.


제주에서 일 년 간 살던 시절 1~2주에 한 번씩 명상선생님께 일대일 명상지도를 받았었다. 어떤 날은 너무나도 평온했고, 어떤 날은 환희에 차 있었으며, 어떤 날은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어떤 날은 도망가고 싶기도 한 그런 다채로운 시간이었다.

어느 날 명상을 끝내고 명상실을 나가려 채비하던 때였다. 선생님께서 오늘 다른 일정이 없다면 차 한잔 하겠느냐고 물으셨고, 혼자 점심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던 나는 기쁘게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선생님이 추천해 주시는 식당에서 소소하지만 풍족한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 차를 마시기 위해 들른 곳은 근처의 한 작은 절이었다. 조금은 당황한 나에게 선생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여기 스님께서 좋은 차를 잘 내어주신다며 나를 안으로 인도해 주셨다.


처음 뵌 스님께서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차 선반을 뒤적이다 차를 고르시곤 무심한 듯 정성스레 차를 내려주셨다. 사실 차라고는 오후 늦게나 저녁에 들른 카페에서 마실 것이 마땅치 않아 카페인이 없는 캐모마일 같은 종류의 차를 마신 것 외에는 접해본 적이 없었고, 그나마도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어서 꼭 차를 처음 마셔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차를 주실 때 어떻게 받고 어떻게 마시는 게 예의인지 모르겠어서 옆에 앉아 계신 명상선생님을 곁눈질로 열심히 관찰하며 흉내 내길 몇 분, 계속해서 몸으로 들어가는 따뜻한 차는 점점 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긴장이 풀리니 차향이 은은히 느껴지고, 차를 마셔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나에게 스님이 알려주시는 차에 대한 이야기는 디저트처럼 차의 풍미를 높여주었다. 누군가와 있을 때면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뭐라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던 나에게 찻자리에서의 침묵은 어색함은커녕 그 순간을 음미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각 잡고 명상을 할 때보다 오히려 더 마음이 단순해지고 어떤 생각이나 감정, 감각에 휘둘리지 않고 그 순간에 그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차는 내 삶 속에 들어왔다.


제주에서의 외로운 시간, 잠을 이룰 수 없던 지난한 밤, 괴로움을 잊어보려 술에 의존하다 망가져가는 몸을 느꼈을 때 술을 대신해 나와 함께해 준 가장 다정한 친구는 차였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은 차가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시기였다. 원래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요소에 의해 사람을 만나거나 밖을 나돌아 다닐 수 없는 상황은 괜스레 답답하고 외로움을 가중시켰다. 그때 다양한 차를 사서는 온도나 찻잎의 양, 우리는 시간 등을 바꿔가며 연구하듯 차를 마시는 시간이 없었다면 또 한 번 나의 마음이 무너졌을 수도 있었을 테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그나마 안정된 시기를 보낸 게 2020년이었는데, 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어떤 날은 차를 내리는 행위가 좋아서, 어떤 날은 차향을 잘 느껴보려 집중하는 것이 좋아서, 어떤 날은 그냥 차가 좋아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았다. 나에게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를 돌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를 즐기며 나를 돌보는 시간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 번째,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마실 차를 고른다. 날이 더워 몸 안에 열이 차는 것 같은 날에는 녹차를, 뭔가 몸의 감각이 둔해져 기민하게 차를 즐길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는 향이 풍부한 백차나 홍차를, 섬세하게 차를 즐기고 싶은 날에는 청차를, 속이 불편한 날에는 흑차(보이차)를 고른다. 나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 구석구석 살피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차에 맞는 다기를 고른다. 사실 몇 개 가지고 있지 않아 고른다기도 민망하지만 가지고 있는 다기들 중 최선을 다해 그 차의 풍미를 잘 살려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세 번째, 물을 100도씨로 끓이고는 그 차에 맞는 온도까지 물을 식힌다. 짧지만 멍 때리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네 번째, 온도를 맞춘 물을 차에 붓고는 차가 우러나길 기다린다. 이 시간은 경우에 따라 10초 정도로 짧기도, 1분 이상으로 길기도 하다. 이 시간은 어떤 명상 시간보다 나에게 무념무상을 가져다준다. 사실 멍 때리다 과하게 우려 쓰고 떫은 차를 내리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아... 이 차는 이 정도까지 우리면 이렇게 까지 쓰구나, 떫구나, 생각보다 오래 우려도 괜찮네'하고 배우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다섯 번째, 우려진 차를 숙우에 옮겨 담고는 이를 찻잔에 덜어 향을 맡는다. 그러고는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며 내 몸으로 옮겨오는 온기와 향, 때로는 맛을 즐기며 멍을 때린다. 멍을 때리다 보면 문득 그날 있었던 일이나 며칠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차를 마시며 멍하니 그 일을 떠올리다 보면 내 생각이나 감정이 명료해지며 해결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찻자리를 정리하는 것까지가 나에겐 차를 마시는 시간에 포함된다. 대용량 포트에 물을 팔팔 끓여서는 그날 사용한 모든 다기를 하나씩 큰 볼에 담고는 뜨거운 물을 부어 씻어내고는 살짝 말렸다가 깨끗한 면행주로 닦아 원래 있던 장소에 돌려놓고 나면 나만의 찻자리가 끝이 난다.


오롯이 차와 나만이 존재하는 그 시간.

어느 때보다 멍 때리기 좋아서 차 마시는 시간을 사랑한다.

주변에서 나에게 자주 멍 때린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결코 멍 때리고 있지 않다.

'멍 때리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국립국어원-라는 의미인데 내가 멍 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가득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나 혼자만의 세계에 가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멍 때리는 동안 뇌가 많이 회복된다는데, 제발 멍하니 있고 싶은 게 내 소원이다. 나는 자주 수많은 생각들로 뇌에 과부하가 걸린 듯 뒷목이 땅겨옴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마시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시간보다 진짜로 멍 때리고 있는 순간이 더 많다. 심지어 멍 때리며 뇌를 회복하다 보면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문득 떠오르다 순식간에 해결 돼버리기도 한다. 이러한데 어찌 차 마시는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멍 때리다 차를 잘못 우리 기도, 다기를 깨 먹기도 하지만 그 또한 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순간이다.


꼭 다기와 찻잎을 가지고 티타임을 즐기지 않아도 된다. 집에 있는 컵과 티백차로도 좋다. 티백차 포장에 적힌 권장 온도와 시간에 맞추어 차를 따뜻하게 우려 천천히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찻자리를 가질 수 있다. 대신 그 시간이 5분이든 10분이든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차를 우리고 마시는데만 시간을 들이다 보면 나의 몸과 마음을 만날 수 있는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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