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눈을 마주하며 위로받다.

예술을 통해 마주한 나 (1)

by 거울씨

10대 시절의 나는 예체능 계열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다. 특히나 미술을 싫어했는데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나에겐 미술적 재능도, 미술 작품을 볼 줄 아는 눈도 없다고 생각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뇌리에 깊게 박혀있던 경험이 있는데 중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달력에 넣을 그림이라 생각하고 월을 하나 정해서 그림을 그려오라는 수행평가였다.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욕심에 여러 날 정성 들여 그림을 그렸지만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고민하다 결국 밤을 새워가며 다른 그림을 하나 더 그리고는 제출하는 날까지도 어느 그림을 제출할까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해 두 개를 다 가지고 학교에 갔었다. 고심 끝에 나중에 그린 그림을 제출하기로 마음먹은 차에 반 친구 한 명이 그림을 못 그려왔다며 울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행동이지만 어차피 나에게 남는 그림이 하나 있으니 그 친구를 달랠 겸 이거라도 괜찮으면 제출하라며 건네었다. 그 친구는 행복해하며 그 그림을 수행평가로 제출하였고, 얼마 뒤 나는 C를 그 친구는 B라는 평가 점수를 받아 들었다.

이때 느낀 감정은 슬픔이나 억울함, 시기 등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아... 나는 엄청 고민해서 내가 더 잘 그렸다고 생각한 그림을 냈는데, 그 그림은 C를, 내가 못 그렸다고 생각한 그림은 B를 맞았구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잘 그린 그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곤 소심하고 욕심 많은 아이는 더더욱 미술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미술이라는 존재를 아예 잊고 지내다 엄마가 건네신 탁상 달력 속 그림이 내 마음에 미술에 대한 관심의 씨앗을 심었다. -이렇게 보니 아픈 경험도, 좋은 경험도 모두 달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겪었다는 걸 지금 글을 쓰며 알았다. 참 인생은 모를 일이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제작한 달력으로 김병종 작가님의 그림이 매달마다 하나씩 실려있었다. 모두 같은 시리즈였는지, 어떤 그림들이 실려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생명의 노래'라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직장 생활 초년생으로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항상 나는 왜 이리 에너지가 부족할까, 해야 할 건 많은데 왜 이리 몸도 마음도 따라주질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원망하던 차에 만난 그림들이었다. 빨간 꽃과 노랗고 초록초록한 색감들은 내 안에도 아직 꿈틀거리는 뜨거운 에너지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줬는데, 특히 크고 빨간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삼켜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꽃의 에너지를 내가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한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그러곤 깨달았다. '아... 그림은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감상해도 되는 거구나. 작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기법을 사용했고, 유화인지 수채화인지 이런 것들을 몰라도 충분히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구나'라고 말이다. 그렇게 미술 작품에 대한 마음 벽이 허물어지고,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오래가지 못한 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장벽의 끝이 어딘지 가늠도 못하고 그저 오르고 오르는데 온 힘을 쏟던 시간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 장벽에서 거하게 미끄러져 내리고, 내가 어디까지 올라갔었는지, 어디까지 더 떨어질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우울이라는 녀석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기를 쓰던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미디어아트 '그대, 나의 뮤즈' 전시었다. 우울이 데려온 무기력에 꽤 긴 기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에너지가 조금 생겨 어디라도 가야겠다 생각한 때였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찾게 된 전시로 반 고흐,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의 작품을 미디어아트로 펼쳐냈다는 홍보 사진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 당시 유일하게 아는 작가인 반 고흐의 작품보다 내 마음을 건드린 건 르누아르의 작품이었다. 르누아르 작품 속 인물들을 바라보다 문득 '얼마 만에 이렇게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에 깊게 잠식되어 있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그런 나를 타인은 어떻게 바라볼지, 또 어떤 평가를 나에게 선고할지에 대한 두려움에 누군가와 지긋이 눈을 맞추며 대화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림 속 인물들의 따뜻한 시선에, 살아있지 않은 그들의 어떠한 평가도 없는 시선에, 나는 숨이 쉬어지고 위로를 건네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여러 작가의 그림 속 인물들과 눈을 마주하며 전시장을 맴돌고 맴돌았다.


그 후부터 나는 기회가 생기면 그림 속 인물들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내 마음속 혼잣말이었지만 때로는 안부를, 때로는 감정이나 생각을, 때로는 그의 삶을 물으며 외로움을 위로받던 시간들.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두려운 것이지 사람이 싫은 게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 소중한 시간.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법, 아니 상처받아도 건강히 잘 소화해 내는 법을 배워가면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


미술을 싫어하던 아이는 그림으로부터 위로받고, 지루한 삶을 조금은 다채롭게 보내는 기회를 얻고, 새로운 장소에 가서는 미술관이라는 둘러볼 장소를 얻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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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 작품명, 작가명/위, 왼쪽부터 오른쪽 순으로>

1. Margaret Olley 2011, Ben Quilty

2. Country Dance 1883, Pierre-Auguste Renoir

3. 우체부 조제프 룰랭의 초상 1889, Vincent van Gogh

4. 생명의 노래-화안, 김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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