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 에세이 2장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들 - 헐크의 한마디에 오열하다.

by 거울씨

- 영화 '어벤저스' -


일상을 살아가는 중 문득 자신의 몸이나 마음의 컨디션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 영화를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타인과 대화하다가, 밥을 먹다가, 운동을 하다가, 때론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나를 알아차린 삶의 많은 장면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영화 어벤저스를 보았던 때인데, 많은 사람들이 설렘과 환호의 기운을 풍길 때 나는 입을 틀어막고 엉엉 울었던 경험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과학자 배너 박사는 화가 나면 폭발적인 힘을 가진 헐크로 변신한다. 어벤저스 동료들과 떨어져 있다가 전투 중 나타난 배너. 아직 헐크로 변신하지 않아 지금이 화낼 적기라 말하는 동료(캡틴 아메리카)에게 그는 말한다.


"제 비밀인데, 전 항상 화가 나 있어요."


그러곤 바로 헐크로 변신하여 전투에 참여하는 배너 박사를 보며,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다 결국 오열했었다. 처음엔 도대체 내가 왜 울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어서.'


그때 당시만 해도 누구보다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었다.

선생님, 부모님, 직장 상사 등 나보다 어른인 이들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타인에게 화는커녕 싫은 소리 한마디 제대로 해본 경험도 많지 않았으며 그저 착하고 수용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불만이나 화나는 감정을 숨기거나 참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그저 허용 범위가 넓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는 내가 자신마저도 속이며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것을 헐크의 그 한마디가 일깨워준 것이었다. 내가 나를 속이며 만들어뒀던 감정의 틀을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어서 그런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를 일부 깨달았다고 해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긴 시간 스스로 속이는 자신과 탐정 놀이를 하듯 혼란의 시기를 겪었고,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있던 감정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에 매몰되어 암흑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어두운 시기를 통과해 가는 중이지만 누구보다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나를 깨닫고 배워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감정의 노폐물이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도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내 안엔 미해결 분노들은 많지만 말이다.


오늘 저녁 OTT 플랫폼 켜고 어벤저스를 다시 보려 한다. 13년 전 그 헐크의 대사는 오늘의 나에겐 어떻게 다가올까? 또 어떤 캐릭터가 오늘의 나를 알아가는 단서를 제공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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