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우울증이 준 깨달음

우울증을 통해 마주한 나 (2)

by 거울씨

지금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약 없이 스스로 관리해 가며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울증이지만 안심하지는 않는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재발을 겪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럽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게 만든 우울증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울증을 통해 깨닫게 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지루하고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이었다.

나에게 있어 우울증이 가져온 가장 무서운 것은 '무기력'과 '집중력 부재'였다.

무기력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행위마저도 귀찮고 해내기 힘든 것들로 만들었는데, 청소, 빨래뿐만 아니라 나를 먹이고 씻기는 것조차 너무 힘겨운 일이 되게 했다. 때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정신은 깨어있는데 몸이 마비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몸이 너무 찝찝하고 간지러운데 열 발자국도 걸리지 않는 욕실까지 가는 것이 힘겹고, 욕실에 가서 나를 씻기는 일이 무슨 42.195km 마라톤을 해야 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기나긴 여정인 양 느껴져서 닷새 가까이 씻지 못할 때가 자주 있었다. 직장을 나가야 할 때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대충이라도 씻고 나갔으나 직장까지 그만두고 집에만 박혀있을 때는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인지 현재 기준으로 나에게 마지막으로 왔던 우울증을 이겨내던 시기에 쓴 감사일기를 읽어보면 '오늘 씻을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삼일 연속 매일매일 세수, 양치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여러 번 적혀있다. 지금이야 매일 씻는 것이 다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오늘도 근 이 주째 몸이 안 좋아 일상의 루틴을 거의 해내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공부도,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스스로를 원망하지만 최소한 너를 씻기고는 있잖아? 너 그날 씻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어. 천천히 가자. 아픈 게 나으면 충분히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루틴이야. 마음 조급하게 먹지 말자.'

라고 말이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니 '하나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조금씩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었다.

또한 무기력은 나에게 즐거움을 앗아갔는데,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술자리, 영화, 웹툰 등 좋아하던 어느 것도 즐겁지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기력도 없었고, 좋아하던 행위들에 몰입할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다 너무 귀찮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삶이 감정의 색이 빠진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이는 '집중력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었으리가 생각되는데, 우울증으로 인한 것인지 먹는 약의 부작용인 건지 우울증이 오기 전까지 받았던 극심한 스트레스들로 인해 뇌기능이 떨어진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울증이 오고부터는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책을 볼 때나 업무 시 무언가를 읽어야 할 때 한 줄을 넘어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한 줄을 읽고 그 밑에 줄을 읽을 때면 앞에 있던 내용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돌아가 첫 줄을 읽는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다. 영화나 웹툰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내용을 놓치고 뭘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고생하다 보니 점점 안 보게 되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대화를 놓치다 보니 적절한 반응을 하거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힘들었고,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있는 힘을 쥐어짜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가 바닥나 탈진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모임도 만나는 사람도 줄어들게 되었다.

우울증이 오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당연히 누려왔던 일상이, 때로는 너무 같은 생활의 반복이라 지루했던 일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갖은 애를 써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참 다양한 것들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일정한 패턴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나를 씻기고 먹일 에너지가 있다는 것, 집을 청결하게 유지할 힘이 있다는 것, 밖에 나가 걸을 기운이 있다는 것, 친구와의 대화가 힘들지 않다는 것, 영화와 웹툰을 보는 것이 즐겁다는 것 등 감사한 일 투성이다.


두 번째로, 우울증이 재발할 때마다 나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관찰하다 보면 내가 그 시기 때 외면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여러 번 다시 찾아온 우울증은 그 시기마다 나에게 정반대의 증상들을 가져오곤 했다. 불면 아니면 과수면, 폭식 아니면 거식, 감정적 업과 다운.

특히 나를 힘들게 한 건 불면과 과수면이었는데 둘 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었다. 불면은 두통, 집중력 저하, 체력 저하,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해 행해지는 잘못된 행동, 예민함 등을 나에게 가져다주었고, 과수면은 무기력, 시간 부족, 둔함, 멍함, 기운 없음 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때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고, 어떤 때는 잠만 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까?

불면과 과수면이 왔던 시기를 돌아보고, 마지막 우울증 시기에 불면과 과수면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관찰하며, 마음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 시기에 무엇을 외면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불면은 나의 무의식 속 진심을 외면하고 싶을 때, 과수면은 깨어있는 동안의 나의 생각이나 현실의 외부 상황을 외면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개인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가 권한 행위 중 하나가 꿈을 꾸면 일어나자마자 꿈 내용을 적어두고 시간이 될 때 차근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내 무의식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꿈이라면서 말이다. 꿈을 복기하면서 실제로 꿈을 통해 나의 마음, 특히 불안이나 걱정, 부정적인 감정들을 알아차린 경우가 많았다.


불면은 외면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나를 속이고 달래 모르는 척 대충 넘어가고 싶은 내 욕구들을 꿈이 알게 해 주는 것이 싫어 신경이 날카로워지다 점점 온다는 것, 과수면은 과도하게 생각이 많아지거나, 생각해 봤자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거나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고 싶을 때 잠으로 도피하기 위해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불면과 과수면은 우울증이 오기 전 일상에서도 가끔씩 존재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 일상의 문제들을 좀 더 편안하게 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 속 문제들 중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데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척도가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파도는 거칠고 위험해 보이지만 일정 부분 바다를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시련인 우울증도 어떤 면에선 바다의 파도와 같이 나의 일상을 뒤집어엎어 부정적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새로운 깨달음의 산소를 공급해 주고, 내 마음의 오염물을 분해하고 순환시킬 촉매제였다 생각하며, 그 고통스럽고 부끄러웠던 시간들을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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