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듣는 거지 ‘잘’ 듣는 건 아니었어
대화에서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질문을 던지며 내가 너의 이야기를 아주 궁금해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 - 헐 그래서 걔가 뭐라고 했는데? - , 그때 네가 느꼈을 감정을 한 번 더 서술하며 공감을 표한다 - 엥 진짜 어이없었겠다... - .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에서, ‘듣는 사람’이라는 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큼 리액션을 해준다면 참 좋을 텐데, 생각할 정도로, 나는 ‘굿 리스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친구와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 평소처럼 그 친구가 열심히 오디오를 채웠고, 나는 듣고만 있었다. 내 친구가 남친이랑 헤어졌는데…, 우리 사촌언니가 요즘…, 내 동기가 이런 말을 했는데…, 응응.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헐 진짜? 대박이다 미쳤다. 너무나 익숙한 이 흐름에서 갑자기 친구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너는 뭐 재미있는 얘기 없어?”
오 마이 갓. 사실 이건 내가 정말 받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질문 중 하나다. 난 그냥 너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으로 온 건데,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란 말이야? 요즘 내 일상은 항상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똑같은 길을 가며 챗바퀴를 돌고 있고, 그중 그나마 특별한 일은 이미 만났을 때 다 말해버렸으며, 어제 뜬금없이 한 생각은 <심장이 계속 이 속도로 뛰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같은 재미없는 주제인데, 다짜고짜 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터무니없는 얘기를 시작할 수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재미’까지 있어야 한다니! 넌 무슨 얘기가 재미있는데? 내가 어제 먹은 점심 메뉴가 재미있어? 도저히 생각해도 어떤 말을 하는 게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그냥 … 듣는 게 편한 것 같아. 그래서 사실 그런 말 들으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네가 말하는 재미있는 얘기가 대체 뭐야?
위에 말했듯, 들어주는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내게, 이때 친구의 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야, 대화도 티키타카가 되어야 하는 거야. 넌 너무 듣기만 하잖아. 그냥 아무거나 말하면 그게 재미있는 거지.
*
맞는 말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대화를 패턴화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보통의 대화가 [영희가 A라는 얘기를 하고, 철수는 그에 대해 리액션을 보이며 적절히 자기 얘기를 섞는 식] 이든가 [ 영희가 A주제를 끝마치게 두고 철수는 B주제로 넘어가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식]으로, 탁구 치는 것처럼 대화 소재를 핑-퐁하는 거라면, 나는 인터뷰하는 사람처럼 계속 묻기만 하고 내 공을 던져주지는 않았다. [영희가 A를 말하면 적절한 질문과 리액션을 던지며 영희가 계속 얘기하게끔 유도하는] 게 나의 대화 방식이었으므로. 그러니까 영희는 야구연습장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혼자서 대화 소재를 빵, 빵, 빵. 치다가 지쳐버린 것이다. 옆에 앉아서 와아아- 박수만 짝짝 치는 내 태도가 내 친구에게는 마치 이렇게 보였겠지.
‘내가 리액션이라는 먹이를 줄 테니 계속 너 혼자 쇼해줘!’
상대가 지칠 때까지 이야기하게 하는 수법을 쓰는 내가, 과연 굿 리스너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나는 ‘잘’ 들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이기적인 듣기를 해왔던 거다. 둘의 시간을 공백 없이 채우고는 싶지만, 나는 너를 재미있게 해 줄 만큼의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너에게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없으니, 이 시간의 책임을 모두 너에게 떠넘긴다는, 그런 이기적인 듣기. 말하자면 적극적인 수동 행위였달까. 친구들에게는 난 듣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좋아하기보다는 그냥 그게 편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나의 리액션마저도 잘 봐줘야 영혼이 30%쯤 들어있다. 내게 리액션과 질문과 공감이란 그냥 상대와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겁게 채우기 위한 (정확히 말하면 상대가 이 시간이 즐겁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일 뿐, 솔직히 말하면 별로 그렇게 자세하게까지 궁금하지 않거니와,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감정이 동기화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성의 있게 듣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들어주는 척을 하더라도, 어쨌든 그건 ‘척’ 일뿐이니까,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 실은 그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게 티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단순히 ‘네가 계속 얘기하며 오디오를 채워줬으면 좋겠으니까’ 의무적으로 하는 비어있는 리액션과 기계적인 질문들… 난 리스너였을지언정 굿 리스너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듣기만 해서 지치고 리액션에는 점점 힘이 없어지는 것처럼, 상대는 또 말하기만 해서 지쳐버린다. 서로 지쳐버린 대화는 점점 영혼이 없어지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재미가 없고, 그리고 끝내는 자리를 파하며 헤어질 때 약간의 현타가 남는 것이다. 아… 쟤랑 만나는 게 이렇게 피곤했었나?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건 참 슬프고 끔찍한 일이다. 나는 너랑 계속 만나고 싶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용건이 없어도 편하게 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나도 말하는 연습을 해야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조차 말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다.
흔히 잘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잘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잘 말하는 것이 첫 번째다. 어쩌면 똑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대화 상대와 균형 잡힌 랠리를 할 수 있도록, ‘말하고 듣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서로 공이 툭- 떨어지지 않게 이어가는 랠리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긴장감이 있겠지. 듣기만 했을 때나 말하기만 했을 때는 찾을 수 없는. 기계적인, 영혼 없는... 이런 수식어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이고 온전히 정신을 그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자리가 재미없게 느껴지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잘 말하는 사람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말하기를 연습함으로써 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너도 나도 더 재미있는 대화가 되기 위해서! ‘말해야 할 재미있는 일’을 하나둘씩 주워서 메모장에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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