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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란 Mar 06. 2022

구병모 파과 해석, 조각에 대한 투우의 감정은 뭐였을까

 단어로  정의해버릴  없는 관계를 좋아한다. 긍정적이기보다는 어쩐지 어두운 키워드로 가득  있어서 함부로 말할  없는 관계. 질척 질척, 수렁에 빠졌어, 증오하지만  마음보다  사랑해,   봐줘. 구병모 <파과>에 나오는 조각과 투우가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조각을 향한 투우의 감정선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둡고 흐릿했고 그게 상당히 취향저격이었다.  봐도 일방통행,   동안이나 묵혀온 감정, 그렇지만 제대로 마주  적은 없어서  감정을 자신도 설명할  없는, 그래서 화가 나는, 그치만 옆에 있고 싶어. 표현이 서툰 투우를 대신해서,  마음대로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았다.


조각을 향한 투우의 감정은


한 단어로 말하기 어렵지만 굳이 꼽자면 역시 ‘애증’이겠지.


투우는 가족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서 결핍이 있던 아이였다. 퍽퍽 건조한 형식적인 가정에서 그나마 온기를 느꼈던 때가 바로 조각이 약을 빻아 먹여주고 챙겨줬을 때. 투우는 이때 비로소, 아마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걸 느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을 보호자로 인식하는 오리처럼, 투우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안정감을 준 조각에게, 비록 일방적일지라도, 깊은 유대를 쌓아왔을 것이다.


그런 유일무이한 사람이 아빠를 죽였으나, 가족을 죽였다는 분노 이전에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자꾸 그를 괴롭힌다.


1. 왜 나는 살려줬지?

2. 왜 굳이 약을 갈아서 정성스럽게 먹여줬지?

3. ‘잊어버려’


왜 그렇게 친절했지? 내가 특별했나? 내가 아들 같았나? 각별한 애정이 있었나? 처음으로 ‘온기’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내 인생에 지대하게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 나 또한 ‘특별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방역업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방역업을 시작하고 조각을 찾아냈을 때, 드디어 찾았다!라는 속 시원함보다는 분노가 더 컸을 것이다.


1.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어린아이가 방역업을 시작하게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쭉 이 일을 해왔다니. 그동안 자기 같은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었을 거고. 그럼 당연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추측하면서도 내심 기대했을 거고, 그렇지만 조각은 진짜로 기억을 못 하고 있었고.


2. 늙고 힘없어진 조각은 투우가 기억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서


이 지점에서 왜 화가 났을까?


“달빛에 비친 단단한 척추와 견갑골이 두드러져 이제 곧 거기서 날개가 돋기라도 할 것 같았다. 바깥쪽으로 돌아선 자세로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사람이 숨기척에 고개를 반쯤 돌려서는 태연한 표정으로 소년을 흘겨보았는데, 그것이 지난 엿새간 가사를 맡아준 도우미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소년은 기억에 입력해야 하는 몇 가지 사실들추정 40대 초중반 여성, 마른 단신에 세미 롱의 직모를 잊어버린 채 그녀의 실루엣을 따라 일어난 미풍이 창밖에 휘날리는 꽃잎들을 실어 날라 오는 것만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아버지를 저렇게 만들어놓고 어째서 당신의 옷이나 얼굴에는 단 한 방울의 피가 튀지 않고 그토록 깨끗한가요, 그것은 대체 무슨 기술인 가요. 소년은 이 순간 진심으로 그것이 궁금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녀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작정이었다.”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투우가 조각을 회상하는 이 묘사 장면에서, 조각의 찰나가 투우가 인생을 살아가는(버티는) 원동력 비스무리한 것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깨끗함이, 올곧음이 - 킬러라는 직업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런 단어들이- 투우의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둘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투우가 방역업자가 된 것도 그저 ‘어쩌다 보니’라고 본인은 말했지만 조각의 영향이 99% 정도 될 것이다.

당신은 왜 그때처럼 빛나고 있지 않지?

라는 어린애 같은 투정이.. 복잡한 감정과 섞여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타 그 외 )

- 조각의 따뜻한 모습, 어렴풋이나마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모습… (방역 업자에겐 불가능한, 모순적인)을 지켜보면서… 저에게 약을 빻아주던 건 조각에게는 사람이라면 베풀어야 했을 기본 도리였을 뿐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을 테지. 조각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투우의 인생에는 두고두고 남아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억울했겠지.

- 강박사를 보는 조각의 눈빛이 신경을 긁음 등등


“투우는 문득 바특하게 다듬었으나 다양하고 과격하며 오랜 육체 활동으로 거칠어지고 으스러진 데다 군데군데 이 나간 그릇처럼 깨진 그녀의 손톱을 떠올린다. 하나하나 뽑아서 손가락 끝나마 핏빛 꽃잎이 피어나면 좀 더 예뻐지고 화려해지겠지.”


투우의 이런 분노는, 다자이 오사무의 ‘유다의 고백’ 속 예수를 향한 유다의 감정과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을 끝내는 건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안돼.’ 투우는 조각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너무 멋지게 죽는 것도 초라하게 죽는 것도 성에 안찬다고 생각했다. 죽이고 싶다가도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그녀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조각을 사랑하고 또 증오하기 때문에 자기가 끝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각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데 반해, 조각은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당신의 죽음은 내가 결정하겠어, 당신의 인생에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쳐주겠어. 그런. 그리고 계속 조각 신경 긁고 시비 건 이유는… 그냥 자기 좀 알아봐달라고..



거기까지 연상하다 문득 그녀는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저 숲을 거닐다 자연스레 순하고 연한 풀을 밟아 나가듯 이런 중얼거림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네가 바로 그 애구나.”

그저 혼잣말 같은 거였는데 그녀는 점차로 가늘어지던 투우의 눈동자가 다시금 살며시 열리는 걸 본다.

“정말, 기억해?”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저 나오는 대로 한 말이라고 차마 대답하지 못하며 다만 얼버무린다.

“그, 뭐니. 주마등이라고 하지. 사람이 갈 때가 되면 갑자기 머릿속에 확 번지는 게 있다고 하잖아.”

투우는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가 결국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남겨진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직감하지만 실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됐어.”

그 많은 어린아이들 모두가 그녀를 찾아 나서지는 못했을 테고, 그 어린아이들 가운데 그녀 옆에서 삶을 내려놓은 경우도 흔치 않을 테니 ‘됐어.’ 투우는 가까이 있는 그녀의 무릎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건드린다.

“머리 좀”


투우는 끝내 자신의 손으로 조각을 끝내겠다는 염원은 이루지 못한다. 대신, 그가 조각의 옆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투우는 아직 어릴 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조각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바로  순수함에서 나온다. “정말 기억해? 어떻게 알았어?” “머리 좀…”


조각에게 정말 기억하냐고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것도, 무릎에 머리를 묻고 싶어 하는 것도, 조각이 열심히 약을 빻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초등학생 때의 투우와 하나도 다를  없어 보여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장면에서 투우의 심리가  이해되어 버렸다.


비록 조각은 투우를 끝까지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됐어 존재가 당신을 스쳐 지나갔던 어린아이들  하나  뿐이라도 당신 옆에서 삶을 내려놓는 아이는  하나뿐일 테니… 내가 당신을, 당신의 온기를, 당신이 약을 갈던  모습을, 그리고 ‘그날’을 생각해왔던 수많은 날처럼, 앞으로 당신도 남은 인생에서  날을,  기억을, 나를 떠올리게 될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 그걸로 ‘됐어.’


아가미에서의 클라이맥스가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라면 파과는 단연 여기. 구병모 작가님이 쓰시는 어딘가 비틀리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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