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잡는 마음

Yes!라고 대답했던 여름

by 유기

나의 단점 중 하나는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언가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후회할 수는 없겠지만, 그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시도해 보고 싶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이 생겼던 건, 대학교 때의 후회 때문인 거 같다. 대학교 1년 수업을 재수강하면서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조바심. 아마 그런 마음에 어떻게든 남들과 같이 뛰기 위해서 더 노력했던 거 아닐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라는 내 원칙을 세우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름은 나를 예기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다.


가장 먼저 했던 건, 여름학기 "유학 프로그램"이다. 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내가 다른 곳으로 또 유학을 떠나다니! 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공부를 하는 수업이라기보다는 해외에서 연구 실습을 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브라질 마나우스(Manaus, Brazil)로 떠났다. 2주 동안 아마존강 위를 떠다니며 배 위에서 생활하면서 물고기 연구를 했었고, 짧은 시간 동안 정말 잊지 못할 추억들을 넘치도록 만들었다. 피라냐 튀겨먹기/아마존 강에서 수영하기/누워서 쏟아지는 별똥별 보기 등등,, 이건 따로 글로 써야겠다! 미리 조금 보고 싶다면 내가 예전에 썼던 네이버 블로그에 잠시 들려보는 것도 좋을지도...




아마존에서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캠퍼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주어진 일이라면 크든 작든 붙잡아 보자는 마음으로, 알바를 3탕이나 뛰었다. 학교 식당에서 청소와 샌드위치 만들기, 캠퍼스 행정 사무실에서 데스크 잡일 하기, 교수님 연구 보조로 참새 연구하기. 정말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나름 잘 풀어나갔다.


새 연구는 늘 새벽에 시작됐다. 새벽 4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고 아직은 깜깜한 하늘 아래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박사생 차에 올라 필드로 향했다. 차창 밖에는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고, 풀잎 끝에는 물방울이 반짝였다. 새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 고요한 숲속에서 우리는 망을 치고, 작은 참새들을 붙잡아 날개 길이를 재고, 체중을 기록했다. 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떠올라 숲이 환해졌다.


연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대개 오전 10시쯤이었다. 씻고 잠깐 눈을 붙이면, 곧바로 두 번째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식당 알바였다. 점심 타임에는 끊임없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식당 바닥을 바쁘게 쓸고 닦다가, 오후 타임에는 비교적 여유 있게 손님들을 맞았다. 이 시간은 항상 나만의 샌드위치 조합을 개발하며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식당 근무가 끝난 날이면, 바로 캠퍼스 행정 사무실로 달려가 서류 정리며 잡일을 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이상하게도 리듬이 생기니 버틸 만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무렵, 하루를 통째로 바친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시계를 보면 아직 해가 환히 떠 있는 오후 여섯 시였다. 여름날의 긴 햇살은 내 하루를 두 배로 늘려주는 것만 같았다. 저녁에는 룸메이트들과 밥을 먹고, 가끔 운동도 하러 갔다. 룸메이트의 차를 빌려 틈틈이 운전 연습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추억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여, 내 여름을 단단하게 채워주었다.




간질간질한 추억을 품고 3학년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여섯 과목을 들었지만,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교회 활동에도 발을 넓혔다. 캠퍼스 교회에서는 여전히 성경 공부 리더로 섬겼고, 연구실에서는 참새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 이른 새벽에 들었던 새소리, 손바닥 위에서 잠시 꿈틀거리던 작은 생명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했다.


학부 학습 개발센터에서 피어튜터(Peer Tutor)로 후배 학생들을 도왔다. 누군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개념을, 내가 설명하자 눈이 반짝이며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느껴지는 뿌듯함은 시험 점수와는 또 다른 종류의 보상이었다. 버스로 40분을 달려 남미 출신 초/중등 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또박또박 받아 적는 그들의 글씨와, 때때로 실수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모습에서 어린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주말이면 옆 동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긴장으로 굳은 얼굴을 하고 들어섰지만, 작은 손길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씩 담대하게 만들었다.


'교육', '동물', '연구', '의료'.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이는 분야들이 하나의 실로 연결된 듯 내 안에 얽혔다. 그리고 나는 그 실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내 삶의 방향도 분명해질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




난 여전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완벽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가오는 기회마다 망설임 없이 'Yes!'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그 대답들이 모여 언젠가는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줄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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