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앞에서 나에게 묻다

달콤함 속의 쓴맛

by 유기

사실 난 대학교를 조기 졸업했다. 우왕좌왕했던 1학년을 만회하듯 2학년과 3학년을 빡빡하게 보냈고, 결국 3학년을 끝으로 남들보다 일찍 학사모를 머리 위로 던졌다. 그런데 막상 졸업장을 쥐니, 뭔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서툰 것이 많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당분간 학교에 남아, 연구실에서 더 일하기로 했다. 연구를 좇을 것인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바라던 의료인의 길을 따를 것인지. 그 사이에서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다.


그해 여름,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2016년의 그 프로젝트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인 '가상 진료실 (Virtual Clinic)'을 시도하던 곳이었다. 나는 환자 차트를 검토해 적합한 후보를 추리고, 전화를 걸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등록을 돕는 일을 맡았다. 매일 수십 명의 환자와 목소리를 나누며, 전화 너머로 쌓이는 친밀감에 뜻밖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부 연구실 일을 마치고, 하버드 의과대학 암 전문 병원에서 임상 연구 코디네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대학 시절 룸메이트 네 명과 좁은 원룸에 살던 대학 시절과 비교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달콤했다. 메뉴판 오른쪽 끝 가격은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주문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렌트카를 몰고 여행을 떠났는데, 1년이 남짓한 사이에 미국 동부의 구석구석 둘러본 것도 그때였다.


첫 직장은 겉보기엔 참 "꿀" 같았다. 내가 맡은 임상 연구 외에는 과도한 업무가 없었고,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않는 날에는 사무실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와 새해 시즌에는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도, 출근하는 의사도 드물어, 출근해 넷플릭스를 틀어두고 잠시 쉬다 퇴근하곤 했다. 사무실에 홀로 남아 창밖의 보스턴 눈발을 바라보며 맥도날드를 먹고 해리포터를 보던 그날의 감성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달콤함 속에서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난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라포(rapport)를 쌓아가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것.

둘째, 난 일이 내 삶을 전부 삼켜버리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면 전문직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의료 전문직 가운데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건 '의사'였다. 함께 일하던 암 전문의 선생님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의대를 졸업하면 다양한 전문 분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병실에서 친했던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한 경험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분은 내가 졸업한 학부 근처에 살던 화가였고, 고된 항암 치료 중에도 늘 미소와 농담을 잃지 않으셨다. 매번 남편과 함께 두 시간가량 운전해 병원 찾으셨고, 병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항상 병원 앞 카페에서 내 커피를 챙겨주곤 했다.


그 환자는 늘 예약을 잘 지키셨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시며 예정된 항암 치료를 연기하자고 했다. 그 통화가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몇 주 뒤 남편분의 전화를 받고 병실로 향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의료기기에 의존해 연명하고 계셨다.


그 장면 이후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타인의 마지막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의사로서의 침착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경험으로 길러지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을 쌓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과정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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