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벌써 한 주의 끝 토요일입니다.
하루는 길게 느껴져도,
한 주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막막해 보이던 월요일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토요일이라는 조금 신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됩니다.
월요일 같은 지금 시간을 견디는 이유는 기대하는 토요일이 있기에,
저의 주제 파악을 위한 글을 오늘도 써 내려가 봅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자기 객관화가 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리나 조직 안에 어울려 살아가다 보면
여러 이유로 스스로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하게 부풀려 바라보기도 하지요.
마치 사회는
거대한 페스티벌 안에 있는 것과 닮았습니다.
큰 음악과 진동,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극 속에서
분위기의 흐름을 타는 모습 말입니다.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무리 능숙해도
그 상태가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됩니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귓가를 채우던 울림이 잦아들고
몸이 진짜로 필요했던
릴렉스와 적막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제야 나에게 필요한 다독임의 순간을 제공해줍니다.
내일 다시 흐름을 타기 위해서요.
반대로 이런 모습도 떠오릅니다.
막이 내린 공연 분위기에 취해
흐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내 주제를 잃어버릴 때,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착각이 반복되면
서서히 균열이 생겨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크게 다치기 쉬운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움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내 시간을 곱씹고 객관화해본다면
내가 가진 결핍은
나를 깎아내리는 증거가 아니라
방향을 전환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주제(topic)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회고는
내 주제,
분수이자 처지이고, 때로는 위기이기도 한
그것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마도 결핍을 받아들이고, 다독이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독임에는
사랑이라는 전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파악된 나의 처지가
나를 규정하는 한계가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하나의 주제가 됩니다.
2026.1.16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Nie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