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상에서 겪는 혼란의 이유는 간단하다.
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손님.
최근 나에게도 그런 손님이 찾아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르바이트에서 잘렸다.
이유는 명확했다.
새 직원을 뽑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던 비주얼 대표님은
내가 직원으로 채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며
TO를 위한 매출 증진을 위해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 목표 매출이 채워지며
내부적으로 채용 포지션을 논의하는 상황까지 놓였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전해진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는
나에게 혼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나의 커리어와는 거리가 먼 역할이
현재 회사에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재무 대표님의 결정대로 직원이 충원되었다.
그 안에서
내가 설 곳은 없었다는
아주 작은 사회의 이야기였다.
내 기대와 다른 결말이 맺어질 때
감정적으로 태도가 변하기는 너무 쉽다.
나 역시
그 에너지를
내 의견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쓸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어쩌면 선택지는 두 가지였을 것이다.
의미 없는 감정풀이와 맹비난
혹은 내 현주소를 파악하는 일.
나의 필요와
그들의 필요가 맞지 않았을 때,
이해와 존중으로 상황을 일단락 짓고
나의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맞는 선택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실패는 방향 전환이라고 했던가.
물론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결과 앞에서
작은 좌절은 마음에 스크래치로 남는다.
하지만 이 스크래치 또한
'나' 라는 작품에 필요한 하나의 터치라고 여긴다면
꽤 견딜 만해진다.
아직 나는 완성작이 아니니,
완성된 때를 떠올리며
지금의 필요와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넉넉해진 시간은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뾰족한 강점 찾기'로 방향을 잡았고,
나의 태도는
'사랑의 시선'을 택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유행하는 말들, 드라마, 문화에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유행 한가운데로 들어가기보다는
여전히 조금 거리를 둔 채
달라진 기운과 흐름을 읽어내는 쪽에
더 익숙해졌다.
지금 사회는
반대 입장을 넘어
혐오라는 감정에까지
쉽게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흑과 백으로 갈라진 채,
반대의 입장은 좀처럼 수렴되지 않으며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믿는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나는
이해와 존중이 멈추지 않는 쪽에
서 있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의 혼란은
무언가를 증명하기보다,
어떤 태도를 지킬 것인가를
다시 묻는 시간에 가깝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시나요?
2026.1.22
선택했으면, 떠나자 혼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