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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나

스트레이트 진(straight jeans)

by 아이스블루



수학여행을 앞둔 딸아이의 옷을 쇼핑하면서 청바지가 필요하다길래 바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은 요즘 아이들이 즐겨 입는 바지는 통이 넓은 와이드진이라는 것이다.

다른 패션아이템이 모두 그렇지만 바지는 특히 체형이나 취향에 따라서

선택의 폭이 넓은 옷인 것 같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스키니 진에서부터 힙합가수를 연상시키는 통 넓은 와이드 진까지.

무조건 유행하는 바지를 입기보다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 텐데…


딸아이가 사기를 원하는 스타일도 유행처럼 통이 넓은 청바지였다.

내가 보기에 너무 넓고 긴 바지에 딸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아~~ 제발 저런 스타일만은.."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건 순전히

내 취향일 뿐이고, 그 아이가 자유롭게 옷을 고를 수 있도록 지나친 간섭은

자제해야 하겠지만 내 딸이 깔끔하고 얌전한 바지를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인 것 같다.


취향 얘기가 나왔으니 내가 즐겨 입는 바지얘기도 해보려 한다.

지금은 약간 여유 있는 스트레이트 핏의 바지를 즐겨 입고 있지만, 예전에 난 몸에 딱 붙는

스키니진을 즐겨 입었다.

단순히 즐겨 입는 걸 넘어서 한여름을 빼면 일 년의 대부분인 3계절을

스키니진으로 생존한 셈이다.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서 슬림하고 볼륨 없는 몸매를 통이 넓은 바지로 꾸미고 나면

옷에 파묻히는 듯한, 솔직히 감당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 멋진 루즈핏의 패션스타일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신 없는 몸매에 스키니진도 그다지 어울리는 바지가 아니었을 텐데,

결국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바지도 못 찾고 예쁜 시절이 다 흘러가버렸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스트레이트 진 (straight jeans)


곧게 된 실루엣 팬츠의 총칭. 주로 홀쭉한 라인의 것을 말한다.

스트레이트 데님은 허리부터 발목까지 일자로 떨어지는 실루엣이 특징인 데님 팬츠로,

슬림하지도 너무 넓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핏을 의미한다.




출처-unsplash




유명인들의 사복패션 중 특히 사진까지 참고해 가며 열심히 따라 해 보았던 것은

한때 "꾸안꾸의 정석"이었던 할리우드 배우 '커스틴 던스트'의 스키니진 스타일이다.

그 시절 패션잡지를 볼 때면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 부분에서 베스트 드레서

명단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던 그녀는 할리우드 영화배우답게 비율 좋은 몸매에,

타고난 패션 센스로 언제나 멋진 코디를 보여줬고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옷으로도 늘 남다른 존재감을 뿜어냈던 비결은 늘씬한 그녀의 체형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스키니진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키니진과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법한 면티셔츠, 그 위에 무심히 걸친 재킷,

평범한 조합이지만 결과물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코디이다 보니,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절망감도 컸다.

난, 왜, 도대체 저런 분위기가 안나냐고!!


'다리 길어서 저런 핏이 나오는 거야 ‘

'몸매가 좋잖아'에서 '아마 코디가 입혀주는 걸 거야'로 생각이 미치고,

'명품을 어떻게 이겨?'라는 결론을 내야만 나는 안 되는 이유가 생기게 되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지만, 패션잡지에 나오는 사진처럼 꾸며도

그녀처럼 멋진 분위기를 낼 수 없었던 이유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마음에 든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했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예쁜 모델이 몸에 꼭 맞는 블랙 스키니진을 입은 모습이 멋지다고 앞뒤 안 가리고

비슷한걸 사서 입는다.

내 옷장에도 같은 색깔의 면티셔츠가 있으니 맞춰서 입고 얇고 풍성한 머플러도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사서 무심한 척 걸쳐본다.

이렇게 입으면 저 사진 속 연예인처럼 시크해 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왠지 어색하고 모두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 빠진 걸 모르고 있다.


'바지가 너무 꽉 끼는 건 아닌지...'

'티셔츠는 돈을 좀 더 주고라도 브랜드로 지를걸 그랬어.'

'머플러 할 날씨는 아닌데 괜히 감고 나왔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로 가득하고 집에 들어갈 궁리만 하게 되었다.

빨리 이 옷들을 벗고, 남들의 시선도 벗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내 체형을 모르고 스타일도 모르면서 남을 따라서 옷을 입으면, 내 옷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행동도 위축된다.

남이 예쁘게 입은 옷들이 나에게도 모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지금 자주 입게 된 바지는 스트레이트 진(stright jeans)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매를 너무 드러내는 쪽이 어색해져서 인지 스키니진 보다 살짝 여유가 있는

스트레이트 핏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스키니진의 정석 커스틴 던스트'는 아니지만 내게도 어울리는 하나의 바지는 분명히 있다.

그것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바지, 잘 산 것 같아~





결국 딸아이가 선택한 바지는 기본스타일인 레귤러핏의 연한 색 청바지.

처음에는 매장에 나가서 구입하자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바지를 제 고집대로 주문해서 입어보더니, 사진처럼 예쁘지 않다고

그대로 포장해서 반품해 버렸다.

매장에서 직접 입어보고 구입한 바지를 딸아이는 마음에 들어 했다.

입었을 때 어울리는 바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 아이는

아마 바지를 살 때 꼭 입어보고 살 것이다.


남의 옷처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불편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입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하나의 바지’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이 스키니핏이든 루즈핏이든 유행과도 상관없다.

요즘 누가 그런 바지를 입느냐며 시대 주류에 민감하지 못하다 흉볼일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낡은 면티셔츠를 입었어도 함께 입은 바지가 나와 찰떡같이 어울린다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감이 넘쳐흐를 것이다.

잘 고른 바지 하나가 보물처럼 느껴진다.

drawing by 아이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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