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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블루 Jan 22. 2023

B급이 더 좋은데요

그릇


드디어 면기를 구입했다.​

혼수로 장만했던 큰 면기 4개 중 일찌감치 3개가 깨져 버려서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지금까지 면을 먹을 때면 어정쩡한 크기의 파스타 그릇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아슬아슬하게 넘칠듯한 국물에 짜증은 올라오고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드디어 가족 면기를 모두 장만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족 면기


작은 종지 하나를 살 때에도 폭풍 검색과 깊은 생각이 필요한 나는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를 좋아하면서 대부분 B급 그릇을 가지고 있다.

공정 과정에서 기포가 잡혀서 매끄럽지 못하거나 스크래치가 난 제품이나 문양이 한쪽으로 쏠렸다든지 점이 찍히는 등 사소한 하자가 있어서 A급이 되지 못한,

한마디로 만들면서 실수를 해버린 것이 B급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품이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정상가격에 판매되지 못하고 인터넷 쇼핑몰등에서 파격적인 할인금액에 구입할 수 있다.

금이 갔다거나 깨지는 등의 그릇으로써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니어서 사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게 도대체 왜 B급인가?



 명품 골라내는 눈썰미가 없는 나로서는 아무리 눈 씻고 봐도 그 “결점”이라는 걸 찾을 수 없다.

기포 자국을 접시 바닥면에서 발견했지만 일부러 뒤집어 보지 않는 이상 눈에 뜨일 일도 없으니 That’s ok 다.​

설령 무늬가 삐뚤어져 있다 한들 밥은 안먹고  가만히 그릇의 문양만 바라보고 있진 않을 테니 더더욱 나에겐 문제 될 게 없다.

이런 멀쩡한 제품을,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그릇을 이렇게나 저렴하게 사다니...,

취급하는 곳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40%~60% 정도 싸게 구입할 수 있으니 정말 최고다!!


특정 제품을 고를 때 내 취향에 맞으며 순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B급 그릇을 선택한다.(그릇이라면 음식을 온전히 담고 표면이 매끄러우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명품 그릇이라도 깨지면 끝이 아닌가?​

한번 깨어지면 수리할 수도 없다고 해서 상전 모시듯 조심조심 사용하고 싶진 않고, 식구가 돌아가며 설거지도 하며 부담 없이 쓰고 싶다.

혹시 깨지더라도 덜 위험하게 깔끔하게 깨져서 우리 가족이 안전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질 좋은 그릇을 쓰고 싶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B급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소한 한 가지만 눈을 감아주면 나머지는 최고로 즐길 수 있다.


최고를 추구하지만 꼭 모든 면에서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B급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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