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키니진(Black skinny jeans)
수학여행을 앞둔 딸아이의 옷을 쇼핑하면서 청바지가 필요하다길래 바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은 갑자기 생겨난 유행은 아니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통이 넉넉한, 참 편안해 보이는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닌다는 점이다.
다른 패션아이템이 모두 그렇지만 바지는 특히 체형이나 취향에 따라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옷인 듯싶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스키니 진에서 부터 힙합가수를 연상시키는 통 넓은 바지까지...
유행하는 바지를 입기보다는 나를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을 선택하게 된다.
딸아이가 원하는 스타일도 역시 통이 넓은 청바지였다.
간혹 내 기준에 너무 넓고 긴 바지에 딸아이가 관심을 보이면 "아~~ 제발 저런 스타일만은.."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취향일 뿐이라며 그 아이가 자유롭게 옷을 고를 수 있도록 필요이상의 간섭은 자제하려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내 자식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취향 얘기가 나왔으니 내가 즐겨 입는 바지얘기도 해보려 한다.
이미 살짝 언급했으므로 예상이 되듯이, 난 통이 좁은 스키니진을 즐겨 입는다.
단순히 즐겨 입는 걸 넘어서 한여름을 빼면 일 년의 대부분인 3 계절을 스키니 블랙진으로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특유의 분위기는 차치하고라도 슬림하고 볼륨 없는 체형 탓에 통이 넓은 루즈핏으로 꾸미고 나면 옷에 휘둘리는 듯한, 솔직히 감당이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 멋진 루즈핏의 패션스타일은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유명인들의 사복패션 사진을 참고해 가며 따라 해보고 싶었던 것은 한때 <꾸안꾸의 정석>이었던 영화배우 커스틴 던스트의 블랙진 스타일.
그녀의 일상사진들을 볼 때면 마치 패션 화보집을 보는 듯 정말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패션 아이템으로도 멋진 일상룩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베스트 드레서 명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했던 비결이라면 물론 할리우드 영화배우답게 비율 좋은 몸매와 타고난 패션 센스가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은 남다른 존재감을 뿜어내는 스키니진을(특히 블랙 스키니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스키니진과 옷장 뒤져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법한 면티셔츠, 그 위에 무심히 걸친 재킷!! 평범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결과물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코디이다 보니,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고 또 그만큼 절망감도 컸다.
"다리 길이 때문이야" "몸매가 좋잖아"에서부터 "아마 코디가 입혀주는 걸 거야"로 생각이 미치고,
"명품을 어떻게 이겨?"라는 결론을 내야만 나는 안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생기게 되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패션잡지에 나오는 사진처럼 꾸며도 멋진 분위기를 낼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은 경우이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무조건 따라 했기 때문이다.
늘씬한 모델이 빈틈없이 잘 맞는 블랙 스키니진을 입은 모습이 멋지다고 앞뒤 안 가리고 사서 입는다.
내 옷장에도 비슷한 면티셔츠가 있으니 맞춰서 입고 얇고 풍성한 머플러도 최대한 비슷한걸 사서
무심한 듯 걸쳐본다.
이렇게 입으면 저 사진 속 연예인처럼 시크해 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왠지 어색하고 모두 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바지가 너무 꽉 끼는 것은 아닌지...'
'티셔츠는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브랜드로 지를걸 그랬어.'
'머플러 할 날씨는 아닌데 괜히 감고 나왔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로 가득하고 집에 들어갈 궁리만 하게 되었다.
빨리 이 옷들을 벗고 남들의 시선도 벗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내 몸을 모르고 내 스타일도 모르면서 남을 따라서 옷을 입으면 자신 있게 그 옷을 소화하여 입어낼 수 없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겉돌고, 당연한 소리겠지만 예쁠 리가 없다.
예뻐 보이는 옷들이 모두 나에게도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바지, 참 잘 산 것 같아~
결국 딸아이가 선택한 바지는 기본스타일 레귤러핏의 연한 색 청바지!
오프라인에서 사자는 내 말을 거역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나름 유행한다는 바지를 제 고집대로 주문해 입어보더니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대로 포장해서 반품을 해버렸다.
매장에 나가 직접 입어보고 구입한 바지를 딸아이는 마음에 들어 했다.
아마도 앞으로 그 아이는 바지를 살 때 꼭 입어보고 살 것이다.
옷이 불편하면 하루종일 행동까지 불편해져서 빨리 집에 들어가기만 간절하게 기다리게 되는 것과 반대로 누구에게나 입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하나의 바지>가 있다.
그것이 스키니핏이든 루즈핏이든 유행과 상관이 없다.
요즘 누가 그런 바지를 입냐며 시대 주류에 민감하지 못하다 흉볼일은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낡은 면티셔츠를 입었어도 함께 입은 바지가 나와 찰떡같이 어울린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를 만나든 자신감이 넘쳐흐를 것이다.
잘 고른 바지 하나가 보물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