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신(新)
오른쪽만 다치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
2019년 오른 발등 골절
2022년 오른 어깨 부상
2023년 오른 손목 터널 증후군
2024년 오른 약지 골절
2024년 오른 갈비뼈 골절
몸을 오른쪽과 왼쪽 절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나의 오른쪽은 너덜너덜 만신창이일거다. 인바디 검사를 하면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근육이 더 많은데도 항상 오른쪽 부위만 부상을 입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아니면 자주 다친 이후 몸이 스스로 강화를 한 걸까? 흠, 어쨌든 남들은 평생 골절 한 번도 겪기도 힘들다는데 일 년 사이에 벌써 두 세 번의 골절을 겪는 나는 뭐란 말인가. 풍채로 볼 때 종이인형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말이야.
가장 따끈따끈한 골절 이야기를 하고싶다. 약 5주 전에 버스 바닥이 매우, 무척, 심각하게 미끄러운 나머지 하차할 때 미끄러질 뻔 했다. 물론 그동안의 수련으로 다져진 최고의 균형감각으로 착지를 했건만, 이후부터 약간 따끔따끔한 통증이 시작됐다.
약간의 자연치유를 믿는 나로서 이정도의 고통쯤이야, 하고 넘긴 게 잘못됐는지 혹은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간 병원이 잘못됐는지. 어찌됐든 내 갈비뼈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무리하지 않게만 생활하면 된다고 피곤으로 거무죽죽한 얼굴의 의사샘이 말했다.
역시 그럴줄 알았어, 안심하며 가끔 운동도 다시 가고 일상생활도 무리없이 수행했다.(사실 웃음이 헤픈 내가 웃을 때마다 갈비뼈가 아프다는 걸 쉽게 받아들였으면 안됐는데...)
그러다가 요근래 누워있기만 해도 통증이 지속돼 잠을 설치고 일하다 실수도 잦아져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오늘 전과 다른 병원에 방문했다.
함께 엑스레이를 보는데 가슴 바로 아래(가슴에 눌리는 부분) 갈비뼈에 약간 돌출된 듯 보이는 뼈가 있었다. 결국 초음파 검사까지 진행했고, 골절이 맞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지어 부러졌다가 붙었다가 다시 부러진 것 같다고.
아니 이럴 수가 있나요?
골절이 아니고서야 이 통증이 말이 안되긴 하니 곧바로 수긍했다. 전에는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며 하늘을 탓하고, 슬퍼하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나의 불운을 알렸지만.
하도 다치니 이제는 마치 월례행사처럼 익숙했다. 다치는 게 자연스러운 느낌이랄까.
오른쪽 손가락 약지를 올해 8월에 다쳤건만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갈비뼈가 부러졌다. 이 정도면 보험사기로 의심할 법도 하다. 햐여튼 이제는 다치는 데 제법 이골이 나서 정말 아무렇지 않은 내 모습에 조금 놀라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 발등 골절을 겪었을 때만 해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울함을 느꼈는데, 부상도 쌓여서 경험이라고 다치면 다칠수록 의연해지는 것 같다.
오히려 오른쪽만 다치는 모습에서 반만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육체가 부상으로 인해 망가진 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게 아닐까? 어딘가 전과는 분명 달라지겠지만 또 새로운 몸에 금방 적응할 거라는 걸 안다. 처음 다쳤을 때 내가 우울함을 느꼈던 이유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며 스스로에게 지나친 특별함을 부여한 게 첫 번째고, 이전과는 분명 달라질 신체에 나도 모르게 낯선 이를 보듯 불안함을 느낀 게 두 번째다. 그러나 오른쪽 약지 골절이라는 절정을 지나 이제는 될대로 되라~라는 마인드로 바뀐 것 같다. 속된 말로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에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나영 교수님 왈. 내가 하기 싫은 일도 '내게 이런 기회가 왔구나', '내가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고 사고만 바꿔도 감정과 태도가 바뀐다고 한다. 이런 식의 사고 전환은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났을 때도 충분히 사용가능하다. 몸이 아픈 사람에 대한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나 또한 다치고 있구나.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계속 다치는 걸까.
그러니까 현재 내게 불행하고 힘든 일이 찾아왔다고 해서 거기에 늪처럼 빠져있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닥친 일인데 뭐 어쩌겠나. 될대로 대라~ 마인드다. 오히려 나는 다친 게 아니고 반 정도 새로 태어난 것과 같고, 좋은 일이 내게 찾아오기 위해 행운 총량의 법칙을 맞추고 있는거라고. 그러니까 우선은 회복에만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