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안 와서 계족산 가려고 해."라고 일정을 알린다. 같이 가기로 하고 갑자기 혼자 가려니 맘에 걸렸나 보다. 그러면서
"오면 좋겠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문자를 보는 순간 이미 내 마음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수건과 생수 등 간단한 준비를 하고 달려간다.
분명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했는데 해가 떴다. 음, 일기 예보.... 너....
목적지는 계족산 장동 산림욕장. 산 초입부터 황톳길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지역의 한 소주 회사에서 이 길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이미 맨발 걷기의 명소로 이름이 나있다. 같은 대전에 있는데도 몇 년 만에 찾은 계족산은 입구부터 정비가 싹 되어있고, 없던 카페도 하나가 생겼다. 어째 생뚱맞다 싶은데 어쩌면 다음에 들릴 땐 그 옆에 다른 카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계족산은 한때 장동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뻔질나게 등산했던 적이 있을 만큼 친숙한 산이다. 그때는 한참을 올라가면 중간쯤에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한 잔에 1000원. 안주는 멸치, 생양파.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기엔 그것보다 달콤한 것이 없었다. 막걸리 한 모금이 목을 타고 위장까지 내려가는 살아있는 느낌이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 잠시 추억에 잠겨 본다.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먼저 도착한 동생은 이미 계족 산성 근처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나도 출발!!
맨발 걷기의 명소답게 산 입구에 발 씻는 곳과 신발장이 준비되어 있다. 멋지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황톳길 위로 두 발을 올린다. 벌써 좋다.
비 때문에 다져지고 불순물이 있는 곳도 있어 발이 조금 불편한 구간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즐겨본다. 계족 산성으로 가는 길은 경사도 완만해서 힘들이지 않고 누구나 즐기듯이 다녀올 수 있어 좋아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7월의 산은 무성한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살도 그 기세가 꺾이기에 충분하다.
먹이가 풍부해서일까 다람쥐가 쪼르르 잘도 다닌다.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도로 중간에서,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다람쥐 포즈로 먹이를 어찌나 열심히 먹는지, 오물오물 입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산에서 가끔 다람쥐를 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그리고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다. 또 두꺼비도 어슬렁거리며 산비탈을 기어가고 평화롭다.
계족산성 밑 정자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쉬고 있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반가운 얼굴을 보고 나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함께 진흙이 잔뜩 묻은 발을 보며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시원한 산바람에 땀을 식혀본다.
장맛비로 몰랑몰랑해진 황토가 쌓여있는 구간은 그야말로 놀이터다.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며 올라오는 황토의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라니. 쫀득쫀득, 몰랑몰랑. 얼마나 찰진지 오감 놀이가 따로 없다. 잠시 어른의 엄숙함도 갖다 버리고 깔깔거리며 즐겨본다.
긴 황톳길 맨발 걷기를 끝내고 잔뜩 묻은 황토를 씻어내는 것도 하나의 놀이 같다. 시원한 물이 다리를 적시고 쓱쓱 씻어내는 대로 누런 황토가 사라지고 뽀얀 맨발이 드러난다. 씻어도 씻어도 어딘가에서 나오는 황토의 흔적. 어디에 숨어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