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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korea Nov 24. 2022

검정 구럭지

남보기 민망합니다.

2007년 당시에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15개 기업이 가동되고 도로, 공원, 정배수장 등 나머지 기반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범단지 도로 관리를 위해 채용한 북측 근로자 10여명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쓰레기를 줍거나 비질로 도로 청소를 담당한다. 나는 사무업무를 보다 가끔 도로 순찰을 다니고 그때마다 북측 도로관리원을 만나게 되는데 쓰레기를 주우라고 지급한 검정 비닐봉지는 어디에 두고 윗도리를 밑에서 들어올려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이다. 여느때처럼 도로를 한바퀴 도는 데 조장 선생이 쓰레기를 주우며 걸어가고 있다. 역시나 윗도리를 걷어 쓰레기를 담고 있다. '조장 선생, 지급해준 봉지에 담아야지. 그렇게 하시면 힘들지 않습니까?'. 조장 선생은 환하게 웃으며(윗니 전체가 빠져서 웃을때마다 너무 귀여우신 분이다) '일 없습니다. 구럭지(북측말로 봉투를 의미)는 아껴 쓰려고 그럽니다.' 아니 다 쓰면 또 달라고 하면 되지 하며 지나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측 직원들은 검정 비닐봉지(검정구럭지)를 참 좋아한다. 내용물을 밖에서 볼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이지만 그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다.


나는 입사 이후 약 1년 동안 한달에 한번만 남측으로 내려왔다. 보통은 매주 금요일에 내려가지만 뭐랄까 일년 바짝 일을 배우고 싶은 욕심때문에 그리 한것 같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북측 도로관리원과 함께 도로청소를 같이 했는데, 그 분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은 이유도 있고, 솔선수범이 관리자의 제1 덕목으로 배운 까닭도 있다. 토요일 오전, 북측 여직원 5명과 함께 공장 앞 도로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고, 그렇게 한시간 정도가 흐른 것 같다. 12시가 다가오자 공장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공장에서 토요일 근무를 마친 북측 근로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연신 비질을 계속했다.

며칠 뒤 조장선생과 여직원 한명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회의실로 안내하고 믹스커피 두잔을 타서 '드셔보세요' 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조장선생이 입을 연다. '안선생, 토요일마다 청소한다고 고생이 많소. 그런데 앞으로 나오지 않을수는 없나요? 제가 알아서 관리할테니 사무업무만 보시라요.' 좀 의아한 얘기다. '저는 괜찮습니다. 운동도 되고, 매일 하는 것도 아니니 신경쓰지 마세요.' 옆에 있던 여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퇴근할 때 사람들이 많이 쳐다봅니다. 청소는 저희가 깔끔하게 할테니 걱정 마시라요.' 한 발 양보할때라 생각했다. 알겠다고 하고 우선은 돌려 보냈다. 며칠 후 다른 일로 조장 선생과 대화를 하다가 그때 일이 궁금해졌다. '조장 선생, 왜 저보고 청소하지 말라고 하신겁니까?' 조장 선생은 멈칫하더니 '관리위원회 어렵게 들어왔다. 일반 기업이야 갈 수 있지만 관리위원회는 그래도 관리업무니까. 그래서 주변에 잔뜩 자랑하고 왔는데 퇴근하면서 도로 청소하고 있는 걸 보지 않겠나. 좀 민망해서 그런다.'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개성공단은 크게 개발업자(LH, 현대아산)와 관리위원회, 그리고 기업으로 나뉘는데 북측 사람들 입장에서 개발업자나 관리위원회에 오고 싶어 한다. 야근이 없어 기업에 비해 로임(임금)은 적지만, 보통 대학까지 나온 우수한 인재들은 기업보다 관리위원회에 입사하기를 희망한다. 내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에 도로관리는 물론 잘 되었다.


월요일 아침 북측 관리원과의 회의, 조장 선생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대신 부조장 선생과 조원이 참석했다. '조장 선생은 안나오셨어요? 어디 아프십니까?' 부조장 선생은 '엊그제 죽었습니다. 병이 좀 있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황망했다. 항상 윗도리 앞자락이 지저분하지만 나만 보면 앞니 빠진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던 조장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말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에 조장선생 안해(아내)는 민속박물관 앞에서 우표를 팔고 딸은 개성공단 기업을 다닌다는 말이 생각났다. '어떻게 조의를 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참담했고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일 없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선배에게 물었다. 방법이 없겠냐고. 귀뜸해준다. 협력부(북측 지도기관인 '총국'에서 관리위원회에 파견된 북측 부서)에 가서 얘기하면 방법을 알려 준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협력부로 달려갔다. 협력부 과장이 일러준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조의를 표했다.(여기에 쓸수는 없지만)

지금도 조장 선생 얼굴이 선명하다. 참 그리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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