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현장은 늘 예고 없이, 그리고 너무 늦게 다가왔다.
텅 빈 방 안, 식은 국그릇, 끊긴 전화선, 며칠 전부터 멈춰 있던 시간.
그 안에서 나는 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후회,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자책.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과연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 속에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는 없을까?
그 물음은 고독사 사례를 마주할 때마다 내 안에서 깊어졌다.
마치 속을 파고드는 질문처럼,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책임'처럼 느껴졌다.
어떤 죽음은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그 생각은 처음엔 조심스러운 마음속 울림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를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 삶의 마지막 순간이
반드시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할까?
마취등이 켜진 차가운 병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의 이별이 정말 최선일까?
그 깨달음은 나를 가정 내 임종이라는 또 다른 돌봄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나는 고독사 현장에서 반복되는 무기력감과 한계를 경험하면서,
점점 더 가정 내 임종이라는 새로운 돌봄의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무렵, 나는 복지관과 오래 인연을 맺어온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밝고 호탕한 성격의 할머니는
복지관에 전화할 때마다 본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직원에게 호통을 치며
"내가 누구인지 몰라? 내가 몇 년을 여길 다녔는데 말이야!" 하고 너스레를 부리던 분이었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조금 얄밉지만, 결국은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나는 건강관리실에서 할머니와 자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할머니의 성격과 생활습관, 건강 상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인연이 주는 편안함, 나도 모르게 그분의 얼굴에 익숙함이 생겼다.
단순히 대상자가 아닌, '우리 동네 어르신', '나의 이웃'으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여름, 할머니를 담당하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으로부터 긴박한 연락이 왔다.
"선생님, 할머니가 식사를 거의 거부하세요.
물만 드신대요." 짧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위급함을 직감했다.
그럴 분이 아니었기에, 더 불안했다.
급히 할머니 댁으로 찾아갔다. 예전과 달리 얼굴에 기운이 없고 창백한 모습이었다.
잘 정돈되어 있던 이불은 구겨져 있었고, 방 안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입맛 없어. 밥 먹기 싫어."
"병원? 절대 안 가. 그냥 여기서 죽을 거야."
그 말과 함께 비뚤비뚤한 글씨로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각서를 꺼내어 보여주셨다.
그 종이를 펼치는 손은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단단했다.
할머니는 마음의 준비를 하신 듯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할머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응. 여기서 조용히 죽고 싶어. 나 병원비도 없어. 괜히 자식들 힘들게 하기 싫어."
그 말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더 슬펐다.
그 안에는 삶에 대한 체념,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마음은 단단해 보였다.
그러나 의료적 관점에서는 상태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우리 팀은 바로 논의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필요한 의료 지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시작이었다.
가정 내 임종이라는 새로운 돌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첫걸음.
이 경험은 내게 복지와 의료 사이에서,
그리고 직업 너머의 연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는 간호사에서 복지사로,
그리고 이제는 통합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직업적 정체성은 바뀌었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고독사 현장에서 가정 내 임종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예방하지 못한 죽음에서, 함께할 수 있는 죽음으로.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있다는 것
.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고독이 아니라 연결, 단절이 아니라 동행. 그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 https://blog.naver.com/ju8831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매돌봄 #고독사 #가정내임종
#재택의료 #죽음 #임종 #김정은간호사 #김정은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