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내가 돌본다니까 왜들 이래? 아무도 못 오게 해!"
할아버지의 단호함 뒤에는 무언가 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댁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문턱을 넘자마자 긴장감 어린 공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조용한 듯 어딘가 날이 선 분위기, 누구도 먼저 웃지 않는 얼굴들.
그 공간은 말없이도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집엔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할머니가 누워 계셨고,
곁에서는 "내가 직접 돌볼 거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고집 센 할아버지가 있었다.
거실 한편에는 조용히 앉아 있던 자녀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있었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선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의료진 방문에는 동의했지만,
요양보호사 시간을 늘리는 것에는 끝까지 망설이고 계셨다.
그 단호함은 단순한 고집이라기보단, 그 안에 무언가 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더 사람을 부르려고 해?"
그 말 속에는 자신이 아내 곁에서 직접 돌봐야 한다는 무언의 사명감과,
어쩌면 속죄 같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병세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혼자 감당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나는 우선 가족들과 따로 만나 의견 조율부터 시도했다.
그러나 아들과 딸 사이에도 입장이 달랐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게 그냥 두세요."
"안 돼요. 어머니 고생만 더 하시게 되는 거잖아요."
갈등은 깊어졌고, 그 사이 할머니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식사량이 줄고, 통증 호소가 잦아졌으며,
표정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피로와 체념이 느껴졌다.
그 가족의 갈등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는 가족들이지만,
말하지 못한 감정과 이해받지 못한 서운함은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쌓이고 쌓이다 이런 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가족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했고,
경제적인 역할은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감당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처럼 가족들에게는 무뚝뚝하고 사랑 표현에는 서툴렀다.
그런 삶 속에서 아내와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결핍을 느꼈고,
그 감정들이 어머니 임종 직전에 갈등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 심한 발진과 낙상까지 발생했다.
할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넘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소식을 들은 아들이 나를 찾아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그냥 이렇게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방법 좀 같이 찾아봐 주세요."
그 말에는 체념도, 걱정도, 안도도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의료진과 상의한 뒤 다시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버님, 아버님이 아내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저희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해드리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아버님 혼자 감당하시다 보면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드실 거예요.
24시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도와드리면 아버님도 더 좋은 모습으로 아내분 곁에 계실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던 할아버지의 굳은 표정이 조금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한 번 접혔던 눈썹이 살짝 풀리고,
입술이 간신히 다물렸다.
며칠 후, 나는 따로 할아버지와 개인 상담을 진행했다.
그날은 유난히 햇살이 따뜻한 오후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마주 앉은 거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할아버지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계시더니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살면서 내가 참 못해준 게 많아서 그래요..."
그 말 한마디가,
그동안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아내 곁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
왜 가족 간 갈등 속에서도 버텼는지 모든 설명이 되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목이 꽉 메었다.
누구보다 강해 보였던 그분의 어깨가 그날 따라 조금은 작아 보였다.
며칠 후, 드디어 요양보호사 24시간 투입에 동의하셨다.
그 이후 상황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의료진도 주 3회 방문 돌봄을 시작했고,
가족 간 소통도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자녀들도 어머니 곁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고,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미소가 식탁 주변에서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할머니 얼굴에 처음으로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누워 있는 몸이었지만, 그 미소에는 감사와 안도, 평화가 담겨 있었다.
임종 전날이었다. 그날 새벽, 할머니는 조용히 임종을 맞이하셨다.
숨소리는 점점 가늘어졌고, 온 집안은 숨죽인 고요 속에 감싸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계셨다.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끝까지, 따뜻하게, 담담하게. 며칠 뒤, 아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드릴 수 있었던 건 선생님 덕분이에요."
나는 그 문자를 보며 조용히 울었다.
슬픔보다는 따뜻함이 더 컸다. 이런 관계의 회복과 돌봄이야말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이번 사례는 나에게 가족 관계의 복합성과 인간적 아픔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주었다.
특별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평범한 가족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
그동안 눌러왔던 아픔과 후회가 터져 나온다.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통합돌봄의 본질 아닐까.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반드시 화려한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진심에 귀 기울이고,
가족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나는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을 더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돌봄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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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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