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가 송송 들어간 부침개.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문을 열면,
항상 "어서 부쳐, 앉아서 드시고 가셔요" 하시던 그 집.
그 부침개는,
어쩌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나에게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이자,
작은 감사의 표현이었다.
이 가정은 우리 팀이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던 곳이었다.
늘 정갈하고 단정한 분위기, 낮은 음성으로 인사를 건네는 부부의 환한 미소, 항상 정돈된 식탁 위에는 작은 다과와 차가 놓여 있었다.
그 집은 언제나 나를 한 사람의 '손님'으로 존중해주는 느낌이었다.
방문진료가 일상이 된 곳이었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고, 돌봄과 보살핌이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귀한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열기 전부터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문틈으로 스미는 공기,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척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 미묘한 변화는, 오랜 인연으로 알게 된 감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곧바로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숨이 가쁘고, 맥박도 불규칙했으며, 전반적인 활력 징후가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농담도 곧잘 던지시던 분이,
이날은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수용이 함께 담겨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병원 이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신속하게 구급대원에게 어르신의 상태를 설명하며 의사의 소견서까지 전달해 급히 병원으로 옮겨드렸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뒤를 조용히 바라보던 할머니.
그 눈빛이 유난히 깊어 보였다.
어디선가 "괜찮겠지..."라는 혼잣말이 들리는 듯했다.
며칠 뒤,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는 이미 전신에 암이 퍼진 말기 환자였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진단이었다.
그 통보는 너무 조용하게 왔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가족은 고민 끝에,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집에서 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책임감, 그리고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맞닿은 깊은 결단이었다.
그 결정 이후, 할머니는 다시 간병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예전처럼 부침개를 부쳐주시던 손에는 힘이 없었고,
기름 냄새 대신 어딘가 조용하고 안쓰러운 기운이 부엌을 감쌌다.
언제나 분주하던 부엌에서 이제는 종이컵에 물 한잔을 따르는 것도 느릿느릿 이어졌다.
그래도 할머니는 묵묵히, 한결같이 움직이셨다.
그 뒷모습에서 묻어나는 건 체념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가족은 누구 하나 흔들림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드님 부부는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돌보기 위해 같은 아파트 윗집으로 이사해왔고,
일본에 계시던 따님도 일정을 조율해 자주 내려오셨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집의 공기는, 이상하게도 무겁기보다 따뜻했다.
어느 날, 원장님이 조용히 방문하셨다.
거창한 인사도, 길고 복잡한 설명도 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계셨다.
그 손은 오래도록 놓이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침묵은 수많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했다.
그 순간,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그 장면은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무언의 감사, 삶에 대한 수용,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마음.
"기름 냄새 나니까 예전 생각나네요.
그렇죠? 옛날엔 부침개 굽기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잖아요."
원장님의 말에, 할머니가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
잠시 후, 다시 부쳐진 부침개가 식탁 위에 올랐다.
그날 먹은 부침개는, 이상하게도 더 깊은 맛이 느껴졌다.
기름냄새가 아닌, 그 집의 기억,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입안 가득 퍼졌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가족 모두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소리 없이, 그러나 모두가 함께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고요히 내쉬셨다.
나는 장례식장까지 함께했고,
가족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셨다. 그 고개 숙임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그건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준 모든 손길에 대한 깊은 존경과 고마움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소망을 끝까지 들어주려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곁을, 말없이 지켜보는 우리가 있었다.
가정 내 임종이 의학적 완벽함을 담보하지는 못할지라도
사람의 온기와 존엄은 그곳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부침개를 굽던 그 손,
손을 꼭 잡고 눈물 흘리던 그날, 그리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
삶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의 바람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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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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