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_가지 않은 길

30대 직장인의 자전적 소설

by 문득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




난 계획했던 대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를 탔다. 가는 비행기표와 첫날 숙소만 예약해놓고,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여행하겠다는 최소한의 계획만 세운채 유럽으로 떠났다.


나의 오랜 취미는 사진찍기여서 첫 월급으로 카메라를 산 적이 있다. 직장생활 초반엔 주말에 사진을 찍으러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진 찍기가 귀찮아지고, 사진도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방구석에 방치해놓고 먼지만 쌓여갔다. 유럽에 가겠다고 결심한 뒤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카메라였다.


'이제 너의 존재가 빛을 발할 때가 됐구나.'


9년 전 장만한 카메라여서 요즘 나오는 스마트한 기능은 없고, 사진 찍는 것에만 충실한 그런 아날로그 카메라이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다시 꺼낸 것만으로도, 해묵은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었다. 나의 카메라는 유럽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어딜 가나 프레임에 담고 싶은 풍경이 있고 그 정취가 살아있어, 카메라에 담긴 모든 사진들이 정지된 순간이 아닌 살아 숨쉬는 추억의 연속이 되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도버해협 너머 영국으로 향하는 유로스타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도시 간 장거리 이동을 할 땐 몸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수면모드에 들어가는데, 이번엔 옆자리에 앉은 스페인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쳐서 어색한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았다.


"런던을 둘러보고 그 다음 여행지를 고민중인데, 추천해주실 만한 데가 있나요?"


아주머니는 조금 생각하시더니 싱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세비야로 가보렴."


"세비야가 어디예요? 거긴 뭐가 특별한가요?"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데, 유럽과 아랍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란다. 지중해를 품은 따뜻한 기후, 친절한 사람들, 각양각색의 음식과 문화, 무엇보다 어딜 가나 플라멩코의 정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 난 마드리드 출신이지만, 세비야에 가면 외국에 온 것 같은 낯선 느낌을 받아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찾는 곳이란다. 누구나 여기에 가면 '인생의 순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운명적인 스페인 아주머니와의 만남과 운명적으로 알게 된 세비야란 곳은, 말 그대로, 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주간의 여행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세비야를 끝으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번엔 굳은 결심으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국 생활을 말끔히 정리한 뒤, 미련없이 세비야행 티켓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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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도시-보도-나무-인도-204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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