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의 자전적 소설
이번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Prologue'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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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니 커피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3시간 분량의 영화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무슨 이런 꿈이 다 있지?
얼음이 다 녹아 연해진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생각에 잠긴다. 꿈에서라도 내 인생을 돌아보라는 계시인가? 요즘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런지, 내 모든 신경회로가 활성화되어서 30년 전 기억까지 꿈에서 생생했다.
나의 직장생활도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들었다. 한시도 퇴사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이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좀 이상한 건,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신입사원 A의 영향인 것 같다. A의 솔직한 감정표현,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에 충실한 모습,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 그리고 은근한 자신감까지... A는 확실히 내가 지금까지 잊고있었던 내면의 나를 깨우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걸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난 왜 입버릇처럼 괜찮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걸까? 죄송한 일은 왜 또 그렇게 많지? 안되는 일인데 해본다고 하는 건 추진력 있는 게 아니라 무책임한 게 아닐까? 내가 힘든데 남들 눈치 보느라 내 몸과 마음이 지쳐서 병이 나는 게 미덕인가?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겨 불이익을 받는 것을 훈장처럼 여겨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아무런 비판 없이 묵묵히 해왔던 일들이 나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지만, 나의 노력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과 이 조직, 이 회사는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난 회사를 위해 희생한 대가로 월급과 성과급을 받는다. 하지만 평생 이런 방식으로 월급을 받으며 살 순 없다. 때가 되면 원치 않아도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때까지 회사에서 지금처럼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남은 인생이 더 막막해질 것이다. 회사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난 남들과 다르게 살기가 제일 어려웠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다보니 어느새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누구나 아는 맛집에서 밥을 먹으며, 누구나 하는 것들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서 나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고, 그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를 덮고 있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는 그림자의 편안함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이제 이 그림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집 마련을 위해 지난 9년 간 모은 돈이 통장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서울의 집값이 이렇게 치솟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내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용히 잠들어있는 통장을 좀 깨워봐야겠다는 발칙한 생각이 든다.
두 달 뒤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다. 왕복이 아닌 편도이고, 아직 예약은 확정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내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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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동화-밤-음악-생선-하늘-118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