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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Feb 23. 2023

아몬드 속 신.호.등

일주한권 문철환콜 프로젝트 그 여덟번째 이야기 <아몬드>

우리 모두의 아몬드, 그리고 신호등


  우리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빛나는 존재들,

  그들에 대한 감사.


1) 책 아몬드를 읽는데 달력을 보니


  나의 전역일은 11월 14일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글을 끄적이고 있는 오늘은 어느덧 2월 22일. 복학생의 신분으로 오랜만의 개강을 앞두고 있는 나는, 어느덧 전역 100일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책 아몬드는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소년은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즐거움, 설렘, 떨림 그리고 그 반대인 두려움이나 미움까지도 쉬이 알지 못하는 것. 그러다가 한 일을 계기로 가족과 이별하는 경험을 하고 '곤이'라는 아이를 만나면서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한 소년의 성장기, 변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의 변화에 대해 다룬 감동적이면서도 묘한 느낌의 소설을 통해 작가는 결국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변화시킬 수 있는 단 한가지 묘약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도 중요하고, 알맞게 성장해나가며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나서 최근 스멀스멀 다시 싹트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라던가, 또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위치하지만 엄연히 우리의 정다운 이웃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작성해보기로 결정한 것은 보다 '나'와 그 주변에 관한 것으로 정했다. 생각보다 자주 잊고 지내는 사소한 평범에 대한 이야기. 그렇다. 내가 이번 책을 읽고 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 그래서 더 소중한 주변적인 삶에 대한 감사 이야기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극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어쩌면 감정을 느끼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도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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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삶만을 부러워하며 만사에 감사하기를 주저했던 나로선, 이번 기회를 통해 평범한 삶 속에서 주어졌던 다채로운 색깔의 상황과 감정들에 대해 감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2) 지난 여름의 뜨거움, 그리고 지난 인생의 따스함


  지난 여름, 우리나라를 강타한 강렬한 신인 가수의 노래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가수 이무진의 ‘신호등’이라는 곡이다. 그가 2000년생 나의 동갑내기라는 점에서도 눈길이 갔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색과 신선한 비전은 나의 귀와 뇌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그가 노래함에 있어 나를 포함한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가사말을 심심하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이제 20대 초반 군인인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신호등 노래가사는 이번 나의 감사일기를 쓰는 방향성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귀감이자 응원이었음을 서문을 통해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더불어서, 내가 이 글을 관통하여 이루 말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라 함은 비단 내가 소제목 등에 표면적으로 드러낸 글귀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그 존재를 포괄한 집단적인 관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밝혀두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임을 일러둔다.


  이제, 본격적인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3) 신호등, 그 빛나는 각각의 존재에 대한 감사


1. 빨간불 - 잠시는 주변을 둘러보며 멈춰도 됨을 알려준 군대에 대한 감사


“이미 난 발걸음을 떼었는데, 날 재촉하네... 난 걷기도 힘든데!”


  13살, 중학교 준비. 16살 고등학교 준비. 19살 대입. 25살 졸업. 25.5살 취업. 30살 결혼.

우리 사회는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할 일을 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할뿐더러,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잉여인간’이라고 칭하며 핀잔을 주곤 한다. 나 또한 이런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정신없이 살아왔고, 내 삶 속에 ‘쉼’이라고 칭할만한 시기는 주어지지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겨우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발걸음을 떼서 걷기 시작하는 내게 사회는 즉각적인 새로운 노력을 재촉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오던 내게 대한민국 남성의 자연스런 선물이 도래했고, 그렇게 도착한 우편물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나는 군대란 곳에 입대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군대라는 곳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나치다고 싶을 정도로 몰아치는 훈련소에서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들, 그리고 소대를 배속받고도 이어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근무의 굴레... 이곳, 군대에서 머물면서 사실 근무도 근무이지만 사실 그 외적으로는 흔히 ‘비번’이라 칭하는 휴식 시간이 그래도 넉넉히 주어졌다. 그리고, 그 소중한 비번 시간동안 사회 속에서는 누리지 못하였던 꿀맛같은 쉼을 누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좋아해주는 것,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 등등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을 가진 덕분에, 그간 관성적으로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와 활동만을 수동적으로 수용해왔던 내게 이제야말로 진짜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었는데,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둘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매개체였고, 뿐만 아니라 철학도인 내게 일종의 철학적인 함의를 담은 메시지를 전해주는 가장 좋은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군대가 없었고 계속 쉼없이 앞으로만 달려갔더라면,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맹목적인 직종에 취업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는 ‘멈춤’을 강요한 군대라는 존재가, 나에게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내 인생의 방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어느덧 그곳에서 나온지 100일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미운 정이 박혀 하나의 추억거리가 된 그곳에서의 일상... 나의 꿈 이외에도 사회로부터 벗어나 군대에서 누렸던 ‘잠시 멈춤’은, 내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과 귀중한 가치들, 시대의 정신 등을 파악할 수 있게 커다란 바탕을 제공해주었음을 함께 언급하며 붉은색 감사함에 대한 글을 줄인다.  




2. 노란불 - 사람들의 거듭된 경고 신호, 그럼에도 꿋꿋이 걸어간 나의 길.


“이제야 목적지를 정했지만 가려한 날 막아서네”


  나는 현재로서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스물네살. 엄밀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공군 제 10전투비행단 기동타격병으로서 충실히 그 임무를 다한뒤 철학도로의 복학을 열흘 정도 앞둔 대학생이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찾아간 도서관에서 나의 철학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이후, 단 한 번도 그 관심을 접은 적이 없는 나였다. 아직도 나의 인생에 있어 철학은 매우 중요하고, 나는 철학을 만지면서 살고 싶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철학을 공부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   .   .


  먼저, 과와 성적에 관한 사회의 편견이 있었다. 아무래도 고3에서 대학으로 넘어가는, 다시 말해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시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과’라는 선택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기본적으로 철학을 나의 진학 루트로 선택하는 순간, ‘쟤는 좋은 학교 가고 싶어서 과는 포기했나봐.’ 혹은 ‘생각보다 성적이 안나왔나 보지?’라는 뉘앙스의 시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길이라지만,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나이 대에 이러한 피드백의 반복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또, 라때로 점철된 어른들의 강력한 반대는 나를 또 한번 망설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산업화 시대 속에서 기술이 가지고 있는 무서움을 경험한 기성 세대의 어른들은, 사내 아이가 이과에 가서 좋은데 취직할 생각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굳이 문과를 갈거면, 무조건 경영을 가서 미래를 도모하라고 하기도 했는데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 나에게 그런 조언을 전했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히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의지가 올곧음을 끊임없이 나 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완벽하게 설득했던 나는, 주변의 만류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외면적 설득에도 기어이 성공해냈다. 덕분에 대학교에서 즐거이 철학 공부를 이어나가며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질 시간에 나는 확신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올바른 길로 나를 인도한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3. 초록불 - 나의 길을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초록빛으로 응원해주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그땐 함께 온 세상을 거닐 친구가 있었으니~”


  빨간색과 노란색, 그 다음은 초록색이다. 초록색은 우리가 어디로 가려 하든 그곳으로 향해도 된다고 아무런 제제도 없이 밀어준다. 그리고, 나에게 초록은 ‘친구’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세상의 어둠에서 구제해준 존재는 나의 친구들이었다.


 첫 번째 고비는 어렸을 적 눈치가 없던 시절 학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바야흐로 때는 중학교 시절, 말주변도 없고 사회의 유행에도 뒤처진 내게 인싸들의 급변하는 흐름을 쫓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에 흔히 주류라고 불리는 반 친구들의 모임에 거의 끼지 못하는 웃픈 사연을 가진 적도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친구 관계에서 붉어진 문제의 해결법도 역시 친구에게 있었다. 나의 순수한 마음과 친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읽은 몇몇의 친구들은 그들도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무릎 쓰고도 나를 모임에 끼워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런 그들의 의리 있는 행동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도 그리고 첫사랑 여자애와의 동아리 활동도 하며 나름대로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고비는 대학교 시절.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많이 다른 대학 생활과 공부, 그리고 장래의 꿈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대학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내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내 꿈의 방향성도 함께 고민해준 친구가 있다. 지금도 한 번 전화하면 한 시간이 넘게 통화하는 이 친구는, 요즘은 함께 자신의 학문과 인맥, 경험의 폭을 넓혀줄 교환학생에 대한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아, 요즘은 또 한 명의 소중한 친구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여행을 통해 인연이 닿은 친구인데, 그 친구와의 사소한 대화는 나의 일상에 기분좋은 떨림을 더해주곤 한다. 편한데 설레고, 서로를 끊임없이 디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마음이 훤히 보이는 관계. 덕분에 더 열심히 살게 된다.


  고마운 친구야, 몸 건강히 회복해서 또 어디로든 뜨자꾸나. 보고싶네, 또.



글을 마치며. - 가족을 잊지 말자!


 “내 머릿속은 텅 비워지고, 여전히 내 눈앞은 샛노랄 뿐”


  위에서 언급한 노력들과 같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또 그 노력의 결실을 체감하기 위해 어려운 경험들을 굳이 찾아서 부딪쳐보기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철학도로서 소크라테스에게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직도 나는 나를 잘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짝거리며 길을 안내해주는 신호등을 따라 무언가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였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나다. 과연 그런 미천한 내가 부단히 찾아가고 있는 목적지가, 과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인지도 알 리가 없다. 결국, 다시 말하면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아직까지 나는 어머니의 따듯한 품과 아버지의 위로와 응원이 더 좋은 나이다. 사회 속의 흐름에 관성적으로 파묻혀 살면서 가끔은 가족의 소중함이나 그 따뜻함을 잊을 때도 있겠지만 저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우리의 마음은, 부단히 가족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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