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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Feb 09. 2023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일주한권 문철환콜 프로젝트 그 일곱번째 이야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2023년 1월 27일 금요일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렸던 산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날은 두 산에서 각기 다른 일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송파의 명산, 남한산성에는 내가 다녀왔다. 앞서 아버지 회사 원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 하나였고, 맑은 날씨 속에서 눈 내린 설산의 명풍경을 보고자 하는 욕심이 또 하나였다.


첫째로 약속이라 함은, 나의 전역을 축하해 주시는 자리에서 원장님께서는 자연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라는 미션을 전해주셨다. 언제까지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는 과제와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맛있는 밥과 함께 좋은 말씀을 해주신 분께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이에 남한산성에 올라가 타인의 삶을 엿들으며 역설적으로 나의 삶을 새롭게 관조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둘째는 설산에 대한 관망이다. 앞서 유럽에 다녀오면서 눈 내린 산이 우리, 인간의 눈에 전해줄 수 있는 일종의 미적인 맛에 대해 큰 감명을 받은 바 있다. 나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표 사진이 설산을 배경으로 한 인물 사진인 것도 그래서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날 내린 눈이 햇빛의 쏟아짐을 튕겨내며 보여주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풍경을 놓치는 후회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두 번째 이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던 신부님에게 닥쳐온 결과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하셨던 신부님은, 호기롭게 눈 구경을 위해 북한산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항상 가난한 자들을 먼저 생각하며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여느 주말과 같이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불현듯 말씀하신 거다. '신부님이 돌아가셨대'... 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내가 잘 모르는 유명한 신부님이 연로하셔서 고인이 되셨다는 건가. 물론 아니었다. 항상 신도들의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 성전과 신도를 위해 애쓰셨던 신부님이 아름다운 날에 눈 내린 산을 보겠다고 떠나셨다가 돌아오지 못하신 것이었다. 이른바 '실족사' 하셨던 거다. 정말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던..


  평소에도 탄탄한 몸과 좋은 운동신경을 보유하셨던 그였기에 부산스러운 장비를 챙겨가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처음에는 슬프다가, 중간에는 바보 같았던 신부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은 셨던 분이었던 만큼 그분의 뜻을 우리가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 나의 일기 중 일부 -------


이런 일을 오랜만에 겪으면서 종교적인 회의, 또 철학적인 무력감이 한없이 온몸으로 체감되는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 보고자 합니다.


철학적으로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며 실존적으로 파헤친 학자는 대표적으로 사르트르와 키르케고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르트르는 세계대전이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이어나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에 대해 잠시 파헤쳐보려 합니다. 책 속에서, 작가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개념들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1)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윤리나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 격언은, 사르트르가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즉슨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지며 떠오른다는 것. 인간이 어떤 역할이나 특징으로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가 구분한 기독교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 두 범주 모두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기도 하죠.


이 격언을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떠올려야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때조차도 우리는 개별로 충분한 삶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실존자라는 것입니다. 때로 많은 일이 풀리지 않고 자신이 사회 속에서 무쓸모한 역할이라고 생각이 들 때조차도 우리는 '든든한 아빠', '노력하는 수험생', '칼이 무서운 요리사' 등으로 규정받기 이전에 한 개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실존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2) 선택과 책임


실존주의적으로 인간의 개념을 해석해 보자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태어남으로써 얻게 된 실존 이후 도약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주체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불태우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주체성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를 미래를 향해 내던지는 존재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미래 속에 스스로를 '기투'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알 수 없는 미래이지만 적어도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름으로 점진하게 되는 겁니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기본적으로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일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앞서 말한 주체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일 텐데요,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다른 많은 가치들이 그렇듯이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기본적으로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선택이 꽤나 근본적인 것이든 혹은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든 그 선택에 따라 다수의 다른 가능성들은 배제받은 채 오로지 그것에 따른 가치만은 갖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선택에는 대개 책임이라는 것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서 있을 다양한 선택들에 직면할 때마다 불안해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속에서 전적으로 의지할 만한 존재를 몸소 체감하며 항상 살아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 막연함은 더 크게 느껴지겠죠. 그럼 세상에 태어난 이상 마냥 불안 속에서만 삶을 영위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실존에 관해 걱정하고 있을 시간에, 약간의 생각 전환만 일으킨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보다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정말 그 자체로 하나의 주체로서 홀로 서는 존재라면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즉슨, 결정론(인간의 행위가 이미 정해진 인과 관계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란 없는 것이 되고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것이죠.


.....


바로 이 지점에 오늘 제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날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죽음... 그런 존경하는 분의 죽음을 체험하며 어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저였지만, 이번 책을 읽고 고민해 보며 '어차피 인간은 홀로 남겨진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인간은 결코 다른 인간이나 사상에 의존적으로 응고된 채로만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 수많은 사회적 관계의 표상 속에서도 실질적으로는 결국 혼자라는 것이죠. 조금 외롭겠지만, 자유로운 혼자.


아마 앞으로 살아가게 되면 때로는 제가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찾아올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말이죠.. 여러분들도,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유한한 삶 속에서 이 굴레를 반복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도 '결국엔 우리는 자유로운 혼자'라는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그다음과 같은 생각에 해당하는 밑에서 던지는 한 문장의 신념으로 내일 하루도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누군가의 커다란 슬픔을 내 글의 소재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결례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제 감정과 생각을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적어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고, 또 항상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던 분이셨기에, 돌아가신 신부님 또한 자신의 죽음에 마냥 침묵하기만을 바라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그마한 카페에 앉아 차마 위쪽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적는 이 소박한 글이 저를 포함한 남겨진 이들에게 소소하게나마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하루하루는 성실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네이버 블로그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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