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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Feb 01. 2023

키워드를 통해 완전히 빠져드는 '우리만의 유럽여행' 2

스위스의 자연, 프랑스의 감성 그 중심에서 청춘을 외치다(2개중 2탄)

----------------이전 이야기------------------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나는 설렘과 떨림을 안고 여행을 시작했다. 파리에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뉘른베르크를 거쳐 체코에 입성해서 프라하 시내를 즐겼다. 그리곤 리디체-다하우에서 역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며 맥주의 도시, 뮌헨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3일간 그곳에서 머물며 다양한 것을 보고 또 먹으면서 시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스위스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2번째 이야기------------------


12일 차 (취리히, 스위스 / 10,394 걸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코스로"


여행의 중반전에 들어서고 언제부터인가는 그 전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고민하는 습관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노력까지 들이기에는 지친 것도 있었을 것이고 또 생각보다 긴 버스에서의 이동시간에 코스를 짜는 것도 생각보다 생산적인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스를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나 가는 유명한 명소가 한두 개밖에 없던 터라 나머지 시간이 고민되었고, 그나마 알아본 초콜릿 박물관은 몇 분 차이로 그 예약이 all 마감되어 버렸다.


그때, 구글맵을 스크롤하다 우연히 발견한 'FIFA MUSEUM'. 이건 또 축구 마니아로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같은 조원들 중에서도 코스를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길래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박물관 후기를 보면 처음에는 티켓값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구경하고 나면 의외로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박물관에 도착한 우리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안내받는 곳은 락커룸이다.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캐비닛들 중 자신이 원하는 아무 곳에 짐을 보관할 수 있었는데 'Son'이라는 이름을 찾지 못한 게  왠지 모르게 조금 서운했다. 그렇게 겉옷과 짐을 보관하고 난 뒤, 1층에서 월드컵의 간단한 역사와 각 나라별 유니폼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반영이 되지 않았는지 마지막 우승국 역사에는 음바페의 사진과 함께 2018 프랑스의 모습까지만 나와 있었다. 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축구의 황제 펠레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걸음을 멈추고 약간의 묵념 시간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관람을 위해 각 나라별 월드컵 언어들이 쓰여 있는 통로를 따라 지하로 이동했다. 월드컵에 참여했던 각 나라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축구 강국을 클릭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대한민국을 누르니 역시나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헤딩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나왔다. 물론 3살이었기 했지만, 나름 월드컵을 함께 응원한 사람이라는데 자부심을 느껴본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계속해서 월드컵과 관련된 정보와 이미지들로 가득했는데 특히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가 잘 갖춰져 있던 것이 좋았다. FIFA판 인생한컷에서는 최근에 경기가 있었던 스타디움에서 다 같이 사진도 남길 수 있었고, 방음부스에서는 임의의 경기에 대해 각자가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되어 이른바 '내 맘대로 중계'를 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같은 00년생 동갑내기 친구의 남미 국가 월드컵 골 세리머니 재현은 아직까지도 내 웃음 버튼으로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에 관람한 월드컵 영화부터 축구의 모든 것이 있었던 기념품 점까지 모든 게 좋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축구 박물관은 구글맵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발견한 건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아마도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는 필연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기분 좋게 축구 기념품을 양손에 든 우리가 향한 곳은 린덴 호프였다. 취리히에서 호수와 시내가 가장 아름답게 잡히는 전망대. 물론 가는 길에 구경하려고 했던 성당이 일찍 문을 닫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마저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린덴호프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모든 사람들이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 번 사진을 찍으려면 마치 볼링을 칠 때와 비슷하게 옆에 있는 사람과 타이밍 눈치를 보면서 찍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남긴 또 한 번의 인생사진. 파리와 하이델베르크 이후에 거의 처음으로 모든 조원들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도 찍으며 취리히에서 깊어가는 푸른빛 저녁을 함께 이야기했다.


또 한 번 유럽기행의 밤은 깊어져 갔다.




13일 차 (루체른, 스위스 / 13,676 걸음)

"마침내, 설산 위 주인공이 될 결심"


스위스에서의 이튿날, 가장 베일에 싸여있던 루체른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행을 떠나기 이전, 이곳에서의 목적지는 리기산과 빙하공원 정도로 압축되고, 둘 중에 한 곳을 다녀온 후 남는 시간에는 시내를 구경하며 시간을 내려 했던 것이 원래의 계획었다


  언제나 여행은 의외성을 띠는 타이밍에 틀어지는 법. 그러나 그 방향 전환은 오히려 나에게 환상적인 하루를 선물해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오늘은 이 간 10년 지기 친구의 조언에 따라 리기산도, 빙하공원도 아닌 필라투스 산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산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또 한 번 느낀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 버스비가 만원이 넘는 나라는 정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산 초입까지 약 10분간 걸어 올라가니 다음 교통수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블카가 바로 그것이었다. 케이블카를 타면서도 신기한 점이 많았는데 케이블카의 빠른 속도나 그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인상 깊었지만 진짜 신선했던 것은 산 정상까지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환승하여 두 종류를 타야 했던 것. 만약 이 글을 읽고 필라투스에 가기로 결심했다면, 케이블카의 첫 번째 정류장은 환승역도 도착지도 아닌 곳이니 이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첫 번째 아름다운 풍경은 케이블카를 환승하는 환승 스테이션에서 왼쪽 문으로 나오면 구경할 수 있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설산들과 점점 나를 둘러싸는 바위와 나무들을 병풍 삼아 남겨본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을 풍족하게 채워줄 만했다. 하지만, 진짜는 정상에 따로 있었다.


"우와... 미쳤다!" 기억하기로는 함께 정상에 오른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동시에 같은 멘트를 외쳤다. 어느 정도냐 하면은, 그야말로 '절경'이라는 표현이 딱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특히 흔치 않은 겨울 유럽의 맑은 날씨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얀 설산 위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색 지붕들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그 뒤에 우리를 향해 장렬하는 아름다운 주황빛 태양까지. 사람이나 동물은 어떻게 서도 화보였고, 사진은 그곳에 있는 무엇을 찍어도 명작이었다.


마침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포즈를 취한 우리는 하얀색 필라투스 산 위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각자가 순백의 눈앞에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나름대로의 결연한 다짐을 약속했다.




14일 차 (인터라켄, 스위스 / 16,039 걸음)

"저 하늘을 날아가도 놀라지 말아요"


 점점 희미해진다. 행복했던 나날들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유럽기행을 다녀와 그 1탄을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생하게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랬기에 마음속에 그려지는 생생한 추억들을 글자라는 형태로 뱉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느새 일주일도 더 지나 두 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는 무렵이 되자 가장 찬란했던 기억들마저도 나만의 언어로 돌이켜내기가 사뭇 용을 써야 하는 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푸르게 빛을 내던 두 개의 호수 사이에서 즐겼던 인터라켄에서의 15분 간의 비행은 아직까지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오후 2시, 간단한 또 한 번의 맥도널드에서의 점심식사와 산책을 마친 우리는 본격적인 오늘의 콘텐츠인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약속된 포인트로 향했다. 예정된 시간까지 배정된 차량이 오지 않아 점점 초조해졌다. 아침부터 끊임없이 오다마다를 반복한 빗방울 때문에 이번 여행 최고의 액티비티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오전시간부터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어? 저기 온다!' 다행히도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차량은 우리를 데리러 와주었고 본격적인 준비과정이 시작되었다.

  매장에서 명단을 체크하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우리는 짧은 낭만을 즐기기 위해 그 비행시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산을 올라가야 했다. 차 안에서는 내 손으로 직접 나를 이끌어줄 선생님도 뽑았다는...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내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이미 오전에 산책을 하며 패러글라이딩의 종착지를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량이 멀리, 그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비행에 대한 그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언덕을 따라 5분의 하이킹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이른바 'paragliding airport'. 나름 공항이었던 만큼, 생각해 보면 그 떨림은 인천공항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만큼 못지않게 컸던 것 같다. 카운트 다운과 달리기, 그리고 마지막 힘찬 발구르기와 함께 드디어 나의 인생 처음 패러글라이딩 비행은 그 시작을 알렸다.

   막상 하늘 위에 떠오르니 생각했던 것만큼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비행이 조금씩 진행될수록 융프라우를 포함한 아름다운 설산들과 푸른 나무들, 그리고 저 아래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의 지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에메랄드 빛으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던 양쪽으로 펼쳐진 두 개의 호수, 툰호와 브리엔츠 호. 학생 때 스킨스쿠버를 위해 동남아를 갔을 때의 블루라군만큼이나 그 푸름이 짙었다. 풍경을 구경하다 보면 같이 타는 직원이 영상과 사진을 남겨주게 된다. 이때, 나중에 이 원본을 받아볼 수 있으니 후회 없이 영상 메시지와 사진을 남기길 바란다. (본인 같은 경우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어차피 외국인이라 남사스러운 한국말은 못 알아들을 테니..!) 그렇게 가장 높은 추억을 저장하다 보면 '빙글빙글'이라는 패러글라이딩을 회전시키는 마지막 이벤트를 끝으로 착륙을 하게 된다. 이륙과 마찬가지로 착륙 또한 안내대로만 하면 되니 안심해도 좋다.

  

하늘도 날아보고 기분도 좋겠다, 오늘 저녁은 스위스의 명물인 퐁듀를 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싸게 느껴지는 스위스의 물가 그리고 퐁듀가 생각보다 훨씬 별로였다는 친구들의 후기를 듣고선 또 한 번 동네의 디저트 가게에서 허기를 달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200m 상공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며 수줍게 쏘아 올렸던 쏘니의 카메라 세리머니처럼, 오늘 하루도 좋은 추억만을 마음속에 저장해 본다.




15일 차 (바젤, 스위스 / 10,736 걸음)

"깊어지는 여행, 현실과 낭만의 모서리"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모임 시간. 버스에 올라탔는데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원이 버스에 탑승해 있었다. 관광도시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바젤의 특성도 있겠지만, 숙소에 남아 하루쯤 재충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여행이 깊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할 거다.

  그렇지만, 나는 갈 수 있는 모든 도시의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기에 약간은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바젤 시내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고, 동물원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의견에 잠깐 솔깃하기는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한 뒤 시내에 있는 버거킹 공간으로 향했다. 배고 많이 고팠냐고?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여행의 중간 기간이긴 하지만, 나의 학업과 관련하여 신경 쓸 일이 있었기에 오늘은 다른 일정을 포기한 채 나의 교환학생과 관련된 정보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제출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들 중 하나였던, 바로 교환학생 지원 시기. 복학을 하고, 그다음 학기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는 1월 10일까지 정해진 형식에 맞추어 학교에 양식을 제출해야만 했다. 다행히 누나의 도움이 있어 여행은 올 수 있었지만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기에 커피 한 잔으로 몇 시간을 버티며 웹서칭과 보이스톡을 이어나가며 현실의 미래를 대비하는데 힘썼다. 특히, 지원하는 국가와 대학에 있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유럽에 대한 호감이 한 층 더 높아진 점이 큰 참고가 되었다. 이런 좋은 느낌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 중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들로 리스트를 추려보며 마무리했다.


  여행의 막바지로 향하는 문턱에서, 이렇듯 현실의 경계를 다시금 두드리는 체험을 한 것은 오히려 나에게 좋은 반환점이 되었다. 시작한 지 열흘도 더 넘은 여행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약간의 관성적인 안일함마저 떨쳐버릴 수 있는... 쉽게 말해 남은 여행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일종의 교훈마저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을 실천으로 옮긴 가장 즐거웠던 날의 체험을 바로 다음 날인 16일 차에 콜마르라는 곳에서 실현시켰다.



16일 차 (콜마르, 프랑스 / 14,275 걸음 )

"준 현지인이 되어 우리 만의 영화를 찍다"


나에게는 가족 톡방이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이라면 그러하듯이 말이다. 원래도 화목한 우리 가족의 특성상 톡방에서의 소통이 어느 정도 활발하게 진행되는 편이긴 하지만, 특히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타지에 있을 때면 무언가 더 애틋하게 대해게 된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 9시는 내가 톡파원이 되어 그 전날의 일화들을 브리핑해 주는 일종의 뉴스 시간이었다. 여행을 떠난 지 십여 일 정도가 지나던 날, 그런 톡방에서 나의 이야기와 사진을 접하신 아버지가 느긋하지만 날카롭게 내게 던진 물음이 있다


" 해당 나라 사람 상인 또는 기타 주변인의 삶, 가정식 등 한 끼라도 해야 진정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기계처럼 짜인 것은... 그래도 도난은 늘 조심"


통역하자면 "그래서, 남들이 다하는 정해진 길 말고 너희만이 할 수 있는 것들 중 도전해 본 것이 있니?"라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때까지도, 그런 아버지의 말씀은 나에게 일종의 기분 좋은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이에, 오늘은 다른 때와는 조금 다르게 다녀봐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콜마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를 들으며 도착한 콜마르 시내. 성당을 중심으로 서서히 거닐며 둘러본 아기자기한 건물은 가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도시라 할만했다. 어딜 가나 있던 도시의 상징인 황새 문양은 이곳에 놀러 온 10년 지기인 우리를 더욱 반겨주는 듯했다.


콜마르도 식후경이라고, 어느덧 점심때가 다가왔기에 사람들이 식당에 차기 전에 일찍 밥부터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이 예고 없는 휴업으로 우리를 가로막았다. 워낙에 슬로시티를 표방하는 국가였기에, 조금 더 기다리면 문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구경하면서 30분 내에 찍을 수 있는 우리만의 단편영화 콜마르 편을 찍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오글거릴게 뻔했지만, 나와 내 친구는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동의했다.


오마주 할 영화를 딱 하나로 선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제는 '어떠한 형식의 만남도 인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로 정하고, 여느 로맨스 영화와도 비슷한 느낌이 나는 장면을 촬영하고자 했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 여성과 멋진 성공한 남자를 다루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브로맨스'였지만... 말이다. 우연히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치는 씬 넘버 #1을 처음으로, 언쟁을 벌이다가 서로의 목도리를 푼 뒤 각자의 목도리를 바꾸어 매주는 반전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어설프지만 급하게 사랑이란 감정을 시작하는 현대인들의 섣부름을 담았다. 그러다가도 헤어질 때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1분 남짓한 장면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진짜 우리만의 청춘 영화는 그다음에 시작되었다.


 미슐랭에 등장했다던 맛집에서 만족할 만한 한 끼를 한 뒤, 쁘띠 베니스의 사진 스폿을 찾기 위해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왼쪽 시야에 들어온 동네 미용실. 장난기 가득한 우리가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가위바위보가 진행되었고, 순식간에 벌칙자 1인이 결정되었다. 최후의 변명을 들을 새도 없이 바로 미용실에 찾아들어갔다. 완전히 로컬이었다. 영어는 아예 통하지를 않았고, 파파고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커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자르기 전, 데이비드 베컴과 비슷한 외국인 사진과 함께 약간의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는데 알아들을 리 만무한 우리는 오케이만을 연신 외쳤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차마 두 눈 뜨고 쳐다보기조차 미안한 광경이 펼쳐지고 말았다. 친구의 머리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던 것. 베컴으로 호기롭게 출발했던 머리 깎기의 여정은 결국 그 끝에 대륙에 살 것 같은 졸부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미용실 원장님의 주의사항은 '손님의 머리는 직모다 보니 앞서 보여드린 사진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뉘앙스의 다소 위험한 충고였던 것. 단순히 머릿결이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우리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인을 제외한 모두는 그의 독특한 비주얼에 하루종일 웃으며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의 앞글자가 같다는 이유로 여행 내내 '차은우'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가던 그는, 화끈한 변신 뒤에 더욱 높아진 인기를 실감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눈가엔 촉촉함이 묻어났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은 콜마르라는 곳에서 제약된 콘텐츠 때문에 지루한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루 콜마르에서 우리도 비슷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교훈 삼고자 한 나의 내적 마음가짐, 오래된 친구들과의 호흡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온 행운까지 더해지니 그 언제보다 영화 같은 하루를 보냈다.



17일 차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 10,475 걸음)

"코드명: 여행 막바지, 저 텐션에서 탈출하라"


어느덧 찾아온 17일 차, 내일의 이동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오늘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의 여행 밖에 남지 않는 초조 하면서도 지치는 기간으로 접어들었다. 많은 친구들의 텐션이 예전과 같지 않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크게 감탄하는 일이 잦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도착한 스트라스부르. 나에게는 이전 파리생제르망 경기에서 원정팀의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도시는 크리스마스의 수도라고 불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가장 먼저 들어가 본 곳은 도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웅장하면서도 고요한 성당의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정숙한 기도를 올리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높이와 디자인의 건축물이라고 하니,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 안과 밖을 잘 즐기시길 바란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꽃을 형상화한 젤라토까지 맛있게 먹고 나니, 시장을 구경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 건물 앞에서 사진 찍는 것에 흥미를 느끼던 여행의 초반과는 사뭇 달라진 우리였기에 무언가 조금 더 색다른 이벤트나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 한 동생의 머리가 번뜩였다. "여기, 방탈출 있는데 한 번 해볼래?"


그의 그 당돌한 한 마디에 우리는 오늘도 어제에 이어  현지에서 웬만한 관광객이라면 도전해보지 않을 만한, 신선한 소재를 품고 있는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코너를 몇 개 돌아가니 눈앞에 나타난 현지인들의 방탈출 카페. 한국에서도 그 난도에 따라 상당히 높은 빈도로 실패를 겪어본 방탈출이었기에, 타지에서 외국어로 된 방탈출 미션들을 우리가 과연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좀 헷갈렸다. 그러나, 망설인다는 것은 곧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의 반영인 법. 우리는 잠깐의 pause 끝에 당당히 Room Escape를 향해 행진했다.


수갑에 묶인 채 시작되어 수많은 열쇠를 찾고 빛을 비추고, 또 문양을 확인해 내는 과정은 우리를 진짜 마야문명 안으로 데리고 간 느낌이었다. 특히 어둑이 비치는 은은한 불빛 그 언저리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우리를 둘러쌀 때면 그 모험심은 한층 더 고취되곤 했다. 그렇게, 한 50분이 지났을까... 제한시간 1시간이었던 방탈출을 10여분 남기고 최종적으로 신성한 해골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어려움이 때로 찾아왔지만 관찰력이 좋은 사람, 해석이 좋은 사람 등등 6명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외국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방에서 탈출하기를 성공했다는 것은 같이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럽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FIVE GUYS 햄버거까지 먹으며 든든하게 저녁 일정까지 마무리했다. 어쩌면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다니다가 저 텐션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던 타이밍이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그럴듯한 도전을 통해 또 한 번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길 수 있었던 하루였다.





18일 차 (뮐루즈, 프랑스 - 파리, 프랑스 / 7,323 걸음)

"돌고 돌아서, 우리의 추억이 시작됐던 곳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하고, 때로는 벌레와 싸워가며 잠을 청하면서도 다음 날의 펼쳐질 낭만적인 하루를 기대했던 첫 여행지 파리. 우리의 마지막 여행을 찬란하게 장식하기 위해서 한국으로의 귀국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이곳을 다시 찾았다.


숙소가 유난히 밝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4성급이라는 타이틀과 디즈니 성을 묘하게 닮은 수려함이 한 몫했겠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나의 눈에 또 하나의 콩깍지를 씌웠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조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여유로운 밤에 한 잔의 술은 또 빠질 수가 없었고, 달달하면서도 상쾌했던 칵테일은 그 자체로 우리를 둘러싸는 하나의 분위기가 되어 우리의 마음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다음 날 펼쳐질 아름다운 풍경을 암시하는 것 마냥...



19일 차 (파리, 프랑스 중 디즈니랜드 / 14,369 걸음)

"오색빛 일루미네이션의 찬란함, 우리의 앞날도"


가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날이 지나갔다.

여행의 마지막 날, 파리에서 시내를 구경하려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는 3명의 조원 친구들과 함께 30주년을 맞이한 파리의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잃어버렸던 동심을 제대로 찾아보자는 의지 하에 우리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첫 셔틀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부터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롯데월드가 실내 어드벤처와 매직 아일랜드로 구분된다면, 파리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 파크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파크 두 개로 나뉜다. 이곳까지 와서 한 군데만을 보고 간다면 분명히 아쉬움이 남을 테니, 만약 오게 된다면 반드시 '투 파크' 티켓을 끊을 것을 강추드린다. 당연히 투 파크 티켓을 구매한 우리가 먼저 향한 곳은 간소한 놀이기구들과 예쁜 볼거리가 많은 디즈니랜드 파크였다.


빅 썬더와 인디아나 존스라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으로 시작된 오전 일정. 한국인으로서 롯데월드와 애버랜드의 긴 줄을 예상하고 아침부터 오픈런 비슷한 것을 감행했지만,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이 정도 줄인 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동심을 자극하는 플레이스가 굉장히 많았다. 피터팬부터 토이스토리까지... 그중에서도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흉내 낸 정원에서는 초록색 미로 속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마치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날의 감성에 젖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디즈니랜드에 온 이상, 우리는 기념품 샵을 구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언맨부터 라따뚜이와 더불어 토이스토리, 라이언킹과 겨울왕국의 엘사까지 없는 것 빼고는 예쁘다 하는 것들은 다 있었다. 그중에서도 하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물건이 있었다. 조원들과 같이 있다 보니 괜한 수줍은 마음에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머지않은 시간에 은밀하지만 용기 있게 원하는 것을 되찾아오기도 했다.


  오후에는 조금 더 다이내믹한 어트랙션이 즐비한 스튜디오 파크에 입성했다. 가장 먼저 체험한 것은 '타워 오브 테러'라는 스토리가 있는 놀이기구였다. 건물 안에서 공포 스토리를 쫓아가다 보면 엘리베이터를 하나 타게 되는데, 어디로 연결되는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어트랙션인 것이 의외였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쭉 떨어지고 올라가리를 반복했다. 어두운 상태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자이로드롭 느낌이랄까... 티는 안 냈지만 솔직히 조금 아찔했다.

  이외에도 거북이 등껍질 위에서 모험을 떠나게 해 준 크러쉬 코스터부터 영화 라따뚜이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준 어트랙션까지 꽤나 많은 놀이기구를 체험했다. 그중에서도 또 한 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벤저스 어셈블 롤러코스터. 건물 밖에서부터 느껴지는 어벤저스의 웅장함은 실내에 들어서고 나서도 이어지는데, 그야말로 그곳에 간 우리를 어벤저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다. 그야말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세계관 과몰입... 하지만 그런 인트로가 섭섭하지 않을 만큼 어트랙션 자체의 스릴감도 충분했다.


그리고 드. 디. 어 찾아온 일루미네이션 시간!


불안했다. 이제 본격적인 쇼타임으로부터 30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를 오기로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럽에 사는 사촌형의 인스타 채널 oh튜브에서 본 디즈니랜드 30주년 기념 일루미네이션이었는데... 우산도 없던 우리는 급하게 디즈니랜드 쇼핑백을 둘러싸며 스스로의 몸을 파란색 가방으로 둘러쌌다. 어쩐지 오늘일이 다 너무 잘 풀린다 했더니... 혹시나 불꽃놀이를 보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었는지 시작 10분을 앞두고 비가 그쳤 인생 가장 아름다운 빛의 쇼가 시작되었다.

  

형형색색의 조명들과 찬란하게 터지던 불꽃들이 우리의 두 눈과 마음을 환상의 세계로 한참 끌고 가던 때였다.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화룡점정... 수줍지만 당찬 엘사의 목소리와 겨울왕국의 노래가 나오자 그 환호성은 하나의 붓이 되어 성 위에 아스라이 떠있던 용의 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행운처럼 느껴졌고,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마음은 사월처럼 따뜻해졌다. 그냥, 행복했다.



20일 차 (파리, 프랑스 - 인천, 대한민국)

"들이찬 시원섭섭함, 그러나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에"


비행기 좌석 화면에 드러난 어느새 우리 비행기가 서해안에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나를 깨워왔고, 곧이어 창문 밖으로 인천공항 근처의 가로등 불빛들이 내 눈동자에 비쳤다.


'아 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행이 진짜 끝이 났구나... 그렇구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떠났던 유럽여행이 종착지에 다다랐다는 아쉬움, 그래도 무사히 다녀왔다는 안도감, 이제 2년 만에 복학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 등의 갖은 감정들이 내 마음속에서 질서도 없이 교차해 지나갔다. 만감이 나의 뇌리를 지배하는 사이 비행기 불이 켜졌고 사람들이 한 둘 내리기 시작했다. 돌아온 것이다. 한국에, 집에 그리고 현실에.


하지만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정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중한 인연들은 계속될 것이고, 그날의 사진들은 언제라도 휴대폰에서 꺼내볼 수 있으며 여행 중에 함께했던 추억들은 온전하게 우리 마음속에서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청춘의 낭만 여행도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epilogue-----------------------------------------------------------------------


 그야말로 20일간의 여행은 내게 영화 같은 시간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나와 친구들의 표정 때때로 마냥 좋지 만은 않았다. 제멋대로인 날씨의 변덕에 따라 어두웠다 밝아지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된 서로의 날 것의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어색했던 카메라 앞에서의 포즈는 여행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면적인 표정과는 달리 우리의 마음은 항상 스마일이었다.

비록 때로 좋지 않은 날씨를 마주했지만, 그와는 모순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던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 서로의 쌩얼은 초라했지만 인생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분위기마저 멋있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였던 기억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카메라 앞에서도 항상 어설픈 제스처와 표정으로 애를 먹었지만, 예쁜 기들이 계속해서 저장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언제 미소를 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우리의 앞길에 '?'가 붙을지라도, 그 디폴트 값을 미소지음으로 유지하는 것... 앞으로 우리의 남은 여행도, 또 이후에 펼쳐질 우리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인생 있지 않은가. 비록 싸우고 토라지기를 반복하더라도, 그렇더라도 깊은 마음속에서는 언제 행복할 수 있는 사랑으로 가득 찬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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