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독일-체코-스위스까지, 그 낭만 속에 버무려지다 (2개중1탄)
#유니블 #서울지역대학생유럽기행
꾸준히 연재해 오던 나의 문철환콜 프로젝트는 나의 유럽 여행으로 잠시간 '일시 정지'를 했지만, 나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여정은 끊임이 없었다.
다음 주에 나의 문학과 철학을 담아내는 일 주 한 권 연재는 다시 시작되겠지만, 그전에 나의 이번 유럽 여행을 통해 느낀 바를 나만의 방식으로 브런치에 남겨보려 한다.
이 글이, 후에 이 글을 읽을 나 자신을 포함해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여행을 다시금 추억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
1일 차 (인천, 대한민국 - 파리, 프랑스 / 6,995 걸음)
"멍"
기나긴 여정의 시작, 나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것도 부다페스트-바르샤바를 경유해 오는 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샤를 드골 공항에 발을 들일 수 있었는데 그러한 과정은 나의 정신상태를 그야말로 녹초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부다페스트에서는 5시간을 뜬눈으로 보내야 했고, 재입국하는 과정에서는 또 한 번의 힘든 짐검사 절차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나의 피곤한 감정을 더욱 띵하게 만들었던 점은 파리 공항에 도착했는데, 우리의 자격을 검사하는 절차인 입국 심사를 사실상 겪지 못했다는 점. 파리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는 하는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고 해도 무언가 기분이 묘했던 것은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숙소에 도착하니 단장님이 홀로 나와 최종 후발대로 도착한 마지막 10여 명을 맞아주었다. 설명을 들은 뒤 정신없이 방에 올라가서 짐을 푸니 어느새 시계는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나의 1일 차를 기념해 주는 것 마냥...
두 번이나 경유한 끝에 도착한 이곳이었기에, 밑에 내려와 백숙을 먹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오늘 하루종일 나의 감정을 통제했던 '멍함'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쉽게 말해, 지쳐버렸다는 뜻이다. 다음날부터 시작될 신비로운 여행을 위해 간단한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이 들었다.
2일 차 (파리, 프랑스 / 14,223 걸음)
"설렘"
설렘으로 가득 찼던 하루였다. 옹골지게 나를 둘러쌌던 파리의 아름다운 분위기는,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었다.
실질적인 여행의 시작 단계였기에 아직까지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어색했을 뿐만 아니라 조원들과도 서먹했을 시기.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상황이 나를 더 떨리게 만들었지도 모른다. 오전에는 바스티유 광장을 보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최근의 시위로 위험성이 고조되었기에 가지 못했다. 꽤나 아쉬웠다는... 하지만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다.
오후에는 개선문 근처에서 처음으로 자유시간을 부여받았다. 마음이 맞았던 5명의 조원들과 함께 샹젤리제 거리 쪽으로 나아갔다. 그냥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도 이미 여행에 몰입된 우리는 서로가 파리지엥이 된 것 같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걸으며 몽마르트르 언덕과 뛸르히 정원 중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은 우리나라 속담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그 길로 우리는 구글맵을 통해 확인한 'onion soup' 맛집으로 향했다. 가게 이름은 결과는 성공적! 양파 수프가 가장 유명한 가게였지만 바질을 갈아 넣은 파스타와 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한 타르테 모두 맛있었다. (참고로, 가게 이름은 Brasserie Flottes...)
배를 채운 뒤에는 바로 옆에 있는 뛸르히 정원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연말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분위기를 끌고 온 크리스마스 마켓이 꽤나 크게 줄지어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자이로 스윙을 생각나게 하는 커다란 놀이기구들이 인상 깊었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아 뱅쇼 한 잔을 나눠마시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전체적으로 너무 예뻤지만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예비 단원들을 위해 말해주자면, 야시장을 생각하고 오면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서 기분이 좋아지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규정짓고 몽환적인 꿈을 가지고 온다면 그냥 영어를 사용하는 대만 야시장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니 유념하시길..!
밤에는 여경투어가 진행되었고 단원들과 함께 에펠탑 부근을 걸으며 파리의 밤을 즐겼다. 모든 유럽 여행의 시그니처 사진이 되는 에펠탑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도 당연히 잊지 않았다. 첫 여행날 치고 긴 일정을 소화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3일 차 (파리, 프랑스 / 21,355 걸음)
"마니아"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사실 나의 친구 덕분이다. 경찰과 교사를 희망하는 두 친구는 각각 곧 있을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이 물어온 서유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
3일 차인 오늘은 잠시 조원들과 떨어져 그런 1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했다. 다른 친구들이 많이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는 뒤로한 채,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그림이 있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오르세 미술관 옆에 있는 기차역을 이용했는데 처음 타보는 거다 보니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외국에서의 어려움에는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바로 주변 한국인! 처음 승차권을 구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더니, 반대로 베르사유행 기차를 선별하는 것에 애를 먹는 우리를 도와준 것은 또 그들이었다. 상부상조가 이럴 때 쓰는 말이려나...
맛있는 점심도 챙겨 먹은 우리가 어렵사리 향한 베르사유에서는 뜻밖의 난관에 또 한 번 봉착했다. 현장구매만을 믿고 이곳까지 온 우리였지만, 우리 앞에서 현장 구매 티켓이 마감되었다는 안내판이 보였던 것. 안타까운 감정이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곳에 함께 간 멤버가 이미 한참 전부터 친한 우리 세 명이었던 것. 아쉬운 감정도 잠시, 베르사유 궁전 뒤쪽에 있는 정원으로 넘어가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텐션을 이끌어내서 놀았다. 인생에서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릴스를 찍겠다며 무작정 수풀 사이를 뛰어다니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이곳에는 있지도 않은 바티칸 시국의 명화, 천지창조를 우리의 몸으로 재현하며 괜한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알~레 파리 생제르망 ~ "
나는 축구 마니아다. 10년 지기인 친구를 만난 곳도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였을 정도로. 그리고, 저녁 시간이 넘어갈 무렵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것의 한복판에 다가서는 경험을 했다. 이른바 '덕질'의 성공이랄까..? 바로 '파리생제르망' 축구 경기장에 가서 리그 경기를 직관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무던히 견뎌온 것일지도, 조금 과장하면 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건지도 모를 정도로 기대를 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벅차오르는 심정으로 경기장에 입성했다.
그리고, 파르크 데 프랭스 경기장의 웅장함, 그리고 그 안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선수들의 퍼포먼스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메일 아이디를 soccerlee라고 지을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큰 나였기에, 친구들과 두 달 전부터 예약해서 얻어낸 이 기회 속에서 인생 가장 큰 뭉클함을 감히 체험할 수 있었다. 비록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메시는 휴가를 가고 없었지만 '네이마르-음바페'등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의 실경기를 두 눈으로 직접 봤던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행의 두 번째 날인 오늘, 굉장히 좋은 기억들이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중에서도 파리생제르망의 경기를 직관했다는 사실이 가슴속에 찐하게 남는 하루였다.
4일 차 (파리, 프랑스 - 하이델베르크, 독일 / 10,421 걸음)
"별 헤는 밤"
비행기 이후로 오랜만에 장시간 이동을 하는 날이었다. 이틀간 머물렀던 파리를 떠나, 고즈넉한 건물들과 성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로 이사를 떠났다.
처음으로 조별로 요리를 해서 나눠먹는 밤이자, 함께 장을 본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었다. 파스타와 약술이 참 맛있었다.
너무나 화목했던 나머지, 우리 조는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서로의 취한 모습이 각자의 자화상인지도 모른 채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 무르익어 갈 무렵, 우리는 다 같이 숙소 앞으로 산책을 나갔고 모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았다. 누군가는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소중한 기억이나 사람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밝게 빛났던 그 별처럼 우리들의 우정도 더욱더 찬란해져 갔다는 점이다.
5일 차 (하이델베르크, 독일 / 17,666 걸음)
"고풍스러운"
독일만의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딱딱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감상을 준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늦지 않은 시간에 버스에 탑승해야 했다. 시내 쪽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은 우리는,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각자의 자유시간을 위해 흩어졌다.
원숭이 동상이 하나 있었다. 다른 많은 명소의 동상들이 그렇듯 특정 부분만 반들반들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돈과 다자녀를 빌어준다고 한다. 재물과 사랑... 인간이 참으로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 인간상에 대한 고민은 칸트가 거닐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걸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돈 자체는 아니라는 점은 명확한데, 그렇다고 현실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낭만만을 좇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직전에 다리가 아파왔기에, 아쉽게도 결론을 내리는 일은 잠시 뒤로 미뤄둬야 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오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차를 타고 오르거나, 걸어 올라가는 방법 두 가지. 망설임이 없이 전자의 방법을 통해 이 소도시의 랜드마크인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올라갔다. 간단히 실내를 구경하고 전망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우리의 걸음을 무겁게 했다거나, 마음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고즈넉한 성의 운치를 더해준 하늘의 선물은 우리의 하루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주었다.
6일 차 (뉘른베르크, 독일 / 8,525 걸음)
"색다른 뉴이어"
2022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 치고는 그 시작이 마냥 경쾌하지만은 않았다. 장시간 이동에 이은 생각 이상으로 느렸던 유럽식 체크인 방식 때문에 몇 시간을 도로에 서있었던 우리는 시내를 둘러보기도 전에 녹초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우리의 해피 뉴이어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잠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숙소에서 걸어서 3분 남짓도 걸리지 않는 시내로 향했다. 어느새 저녁이 된 뉘른베르크 거리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가 이번 여행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는 나의 걸음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걸음이 닿는 곳으로 걸었는데, 발끝이 향한 모든 공간이 굉장히 아름다웠고 특히 한 해의 마지막을 기념하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면 그 미소가 나의 얼굴에 복제되어 나타나곤 했다.
독일 복권을 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하필 그날이 추첨일이었다고..), 숙소 근처로 돌아오니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여있는 단원들이 보였다.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아 있었는데 벌써부터 모두들 Happy new year를 만끽하기 위한 필이 충만했다. 아까 걸었던 거리를 통해 뉘른베르크 성이 있는 고개로 향했는데, 밤이 깊었는데도 아까보다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졌다. 마치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간 아이들처럼, 우리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현지인들 꽁무니를 따라 언덕에 도착했다. "5,4,3,2,1 Happy new year~!"그리고 펼쳐진 끝없는 불꽃놀이... 해외에서 새해를 맞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환상적으로 서로를 축복해 준 것은 더욱 색달랐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 모든 불꽃놀이를 만들어낸 주체가 특정 단체나 지자체가 아니라 개인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밝게 빛나는 하늘 아래, 새해맞이의 힘을 듬뿍 받은 오늘은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제는 미래형이 아닌 현재가 된 2023년이 더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7일 차 (체코, 프라하 / 20,402 걸음)
"왓 어 원더풀 나잇"
양조장에서의 한 끼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가장 근사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체험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독일에서 체코라는 국가로 이동하고 또 한 번의 숙소 체크인을 기다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진한 우리.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여행에 와서 숙소에 남아있는 것은 아쉬웠고 남겠다는 같은 조원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는 한국에서부터 눈여겨보았던 '스트라호프' 양조장으로 행했다. 마음이 맞았던 다른 조원 친구들과 함께. 버스와 트램을 번갈아타고 한 5분쯤 걸었을 무렵,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언덕 위에 아름다운 조명들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의 헷갈림도 없이 정확히 수도원 양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체코에 오면 꼭 먹어보겠다고 한 꼴레뇨를 비롯하여 두 가지 요리와 세 가지 종류의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그 식사는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 버렸다. 각각 주황색, 갈색, 황금색으로 식탁에 얹어진 생맥들은 올림픽의 금은동을 부럽지 않게 만들어줄 정도로 그 맛이 끝내주었다. 적당한 부드러움과 못지않은 시원함...! 그리고 기대했던 꼴레뇨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겉바속촉의 대명사들을 다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어느 요리가 이 정도의 겉바속촉에 비길 수 있을까. 술보다는 분위기에 취해버린 7일 차 밤은 서로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 천막이 서서히 닫혀갔다. 'What a wonderful night..!'
8일 차 (체코, 프라하 15,053 걸음)
"모든 순간이 알찼던"
여행을 오기 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기존 일정에서 빠지고 프랑스-독일-체코-스위스로 여행 국가가 확정된 순간이 있었다. 이 여행에 참가한 누구라도 그랬듯, 스스로 고민이 많이 되었다. 흔치 않은 유럽 여행 기회 속에서 가고 싶었던 오스트리아를 가지 못한다니...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여행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데에는 체코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프라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광장에 따라 늘어서 있는 노점상들의 집합체, 바로 하벨 시장이었다. 나는 도시나 나라 별로 마그네틱과 같은 기념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굴뚝빵 하나를 입에 물고 구경하는 아기자기한 상품들을 구경하는 일은 굉장히 유쾌한 시간이었다. 누나와 어머니를 위한 반팔 티를 골랐고,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이국적인 느낌의 도자기 컵도 하나 구매했다.
그다음은 박물관들이었다. 하나는 우연히 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이끌려 들어가게 된 이색 박물관. 바로, 성 기구 박물관이었다. 많은 경우가 커플의 형태로 방문하는 것이 보였기에 남자 동생과 함께인 나로서 처음에는 눈치가 보였지만, 그런 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 어언 4년...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고, 한 줄 감상평을 말하자면 인간의 창의력은 끝이 없다는 점이었다. 나오면서 친구들을 생각하며 구입한 이색 주사위는 덤. 길거리 맥주를 한 잔 걸치며 들린 다음 박물관은 소설 '변신'으로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박물관이었다. 수도 한 복판의 문학가의 기념관이 이토록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언어의 차이 때문에 많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의 정신을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로 충분히 뿌듯했다.
프라하의 시그니처, 카를교를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네이버에서 말하기를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다리가 아닐까'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과언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사람들은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었고 다리 뒤로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스라이 비치는 조명들과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 너머로 얕게 보이는 예쁜 프라하성까지... 시그니처 사진도 찰칵. 카를교에서의 시간은 하루의 끝을 완벽하게 장식해 주었다.
아, 카를교에서는 캐리커처로 사람들을 그려주는 화가 분들이 많다. 색다른 경험을 가지고 싶다면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도?
9일 차 (리디체, 체코 - 뮌헨, 독일 / 11,387 걸음)
"고요 속의 절박한 외침"
행복했던 체코를 떠나 독일의 뮌헨으로 떠나기 이전, 우리는 오전에 리디체라는 체코의 소도시에 들려 세계 2차 대전에서 나치가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려 시도했던 리디체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했다. 박물관에서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접한 뒤 건물 밖으로 나오니 펼쳐진 건 드넓은 초원과 고요하게 떨리는 호수였다. 500여 명이 넘게 살았던 마을이라고는 상상이 안될 만큼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이곳의 아픔을 알고 난 뒤였기에, 아름다운 자연을 차마 그 미적인 것 자체에 취해서 감상할 수조차 없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고등학교 시절의 가르침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세계사적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의식하고 있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았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10일 차 (독일, 뮌헨 / 15,267 걸음)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아침에는 어제에 이어 인문학 기행의 일환으로 뮌헨 위쪽에 있는 다하우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우리의 버스가 배기음을 내며 정차한 곳은 바로, '다하우 수용소'였다.
단정한 복장과 말끔한 정신으로 향한 곳이었음에도, 그 분위기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쓰였던 장소였던 것이 가장 실감 난 장소는 다름 아닌 탈의실과 샤워실. 마치 정렬된 차고지처럼 생긴 곳에 수십 명, 수백 명이 갇혀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다 죽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다 쳐졌다. 어제의 박물관과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이전에 나는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1년 정도 독일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간단한 실용문 정도만 다룰 줄 아는 실력이라 한 번도 이곳에 와서 글자로 된 무언가를 읽으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그들의 만행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 그곳에서는 처음으로 나의 3년 전 기억을 꺼내와 두뇌를 가동했다. 과거를 직시하여 돌아볼 줄 아는 독일은 과연 우리의 이웃 국가와는 어떤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들의 정신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그래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그들에 대한 일종의 멋있음, 그리고 또 한 번의 이상적인 미래를 향한 인간의 다짐이었다.
오후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시선이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겨 다녔다. 현지 시장에 가서 과일과 향수 따위를 구경하기도 했고 줄 서는 식당에서 독일 현지 느낌의 독특한 국밥을 맛보기도 했다. 참신한 시도였지만 유럽 음식이 언제나 그렇듯 짭짤한 것이 많이 먹을 음식은 못 되었다. (역시 국밥은 K-돼지국밥..) 이후에는 시내를 구경하며 백화점, 레고 상점 등을 둘러보다가 레지던츠 뮤지엄으로 향했다. 밖에서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던 박물관이었는데, 막상 안에서 구경하니 화려하게 장식된 방만 거의 100개가 넘게 본 것 같았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바이에른 가문의 위대함... 아침마다 번쩍이는 집에서 눈을 뜨는 기분은 어떨까?
11일 차 (독일, 뮌헨 / 20.321걸음)
"황금빛을 발한 궁전과 맥주"
어제는 오후에 들린 레지던츠 정도가 화려함이 빛을 발했다면 오늘은 하루 종일 황금이었다.
오전 이른 시간, 긴 시간 트램을 타고 도착한 곳은 님펜부르크 궁전이었다. 워낙 독일에 왔던 사람들의 후기가 좋았던 곳이기도 해서 꼭 와보고 싶었던 것. (같은 날 같은 시간에는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넘어가 밥을 한 끼 하고 온 팀도 있었다.) 수많은 백조들이 웅장한 호수에서 나를 맞이해 준 순간,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실내에 들어가니 어제의 레지던츠 못지않은 화려함에 더 심한 황금빛이 우리의 눈을 휘어잡고 있었다. 심지어는 방과 복도마다 경호원들이 있어서 문고리 심지어는 벽에 손을 대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다소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공주로 보이는 수많은 아리따운 여성이 그려져 있는 그림들과 이를 돋보이게 해주는 아름다운 장식들. 궁전이라는 칭호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밖으로 나와 걸었던 뒤편의 정원은 그 한 바퀴가 거의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또 한 번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역시 님펜부르크.
오후에는 잠깐 시내를 걷다가 늦지 않은 시간에 '호프 브로이 하우스'로 향했다. 단장님께서도 뮌헨의 웬만한 랜드마크보다 구글맵 후기가 많고 또 좋은 곳이라고 강력 추천했던 곳. 그리고 가자마자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4시도 안 된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벌써 자리가 꽉 차 있었고, 앉아서 주문하는 데에만 거의 30분 가까이 걸렸다.
사실 걱정이 있었다. 어제 점심에 시내 지하 식당에서 먹었던 학센이 너무 질기고 별로였어서 오늘도 이 고생 끝에 그러한 음식을 맛보게 될까 봐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기다림 끝에 낙이 온다더니, 1시간 여만에 맛본 제대로 된 독일식 슈바인 학센과 맥주는 나로 하여금 독일에 다시 오고 싶은 명분까지 만들어주었다. 너무나 쫄깃하고 맛있던 고기, 그리고 황금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던 맥주는 그간의 피로를 싹 녹여주었다. 나중에 들리실 분들을 위해 말해놓자면, 오리지널이나 흑맥주도 맛있지만 그것들과 레모네이드를 곁들인 'Radler'라는 맥주도 그 맛이 끝내주기에 한 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12일 차 (취리히, 스위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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