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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철학자 Jul 04. 2023

삶에 흠뻑 젖어든 순간

문철환콜 프로젝트 그 열두 번째 이야기 <기러기>

사실은 한 끗 차이인 죽음과 삶의 경계. 그런 사실을 쉬이 간파한 채로 그 간극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낭만적으로 녹여낸 작가가 있었다. 바로 메리 올리버라는 여성이 바로 그다. 

<기러기>라는 책은 시집이다. 시라는 것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응축적으로, 정제된 글자로 표현해 내는 글의 방식이다. 그리고 마치 그런 시의 특징처럼, 그녀의 시집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3가지와 그 이유를 여러분들께 정제된 글로 공유드리고자 한다.


1. 해


당신은 살아가면서

이보다 경이로운 걸 본 적이 있어?


해가 

모든 저녁에 

느긋하고 편안하게

 지평선을 향해 떠가서 


구름이나 산속으로 

주름진 바다로

사라지는 것-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금 

세상 저편에서

어둠으로부터 미끄러져 나오는 것,

한 송이 붉은 꽃처럼


메리 올리버 <해> 중 일부


첫 번째로 소개한 시로부터 필자가 느낀 바는 바로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격렬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때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걸들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희열 혹은 따스한 마음이 있다. 메리 올리버가 이야기하는 '태양'은 그것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정서적으로는 빈손인 채 거리 혹은 그 어딘가에 서있곤 한다. 은으로 된 귀걸이를 하고 프라0 가방을 들었어도 마음만큼은 항상 공허한 우리에게 태양은 약속한 시간에 항상 손을 내민다. 특히, 그것이 뜨고 질 때 다가오는 장엄한 따스함은 우리의 마음을 천상의 어딘가로 이끌어주는 것만 같다. 가끔은 망각하더라도, 때로 우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소중함을 되뇌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거다.



2. 여행


...

벌써 때가 많이 늦어져

거친 밤이었고,

길에는 떨어진 나뭇가지들과 

돌들이 널려 있었지.

하지만 당신이 그 목소리들을 뒤로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별들이 빛나기 시자갰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지,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임을

서서히 깨닫게 된 당신,

그 목소리를 길동무 삼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세상 속으로

깊이 더 깊이 걸어 들어갔지 


메리 올리버, <여행> 중 일부


사실 나는 다음 학기에 좋은 기회로 네덜란드 틸버그라는 도시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다. 이 국가와 도시의 학교를 선정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행'하기 좋은 위치라는 이점을 빼놓을 수 없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난무하는 곳에서의 무자정 떠나보는 여행은 그렇게 나를 설레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시 속에서도 드러나듯이 여행은 비단 새로운 것들을 나의 감각 기관에 체험시켜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미지의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신비로운 것들을 눈과 귀, 그리고 때로는 후각과 촉각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히 값진 체험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그것을 또 다른 나만의 내면의 목소리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생소한 정보나 아름다운 경관을 들여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몸속에 체화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메리 올리버가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해내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세상 깊숙한 곳에 있는 강렬한 빛과 마주할 힘이 생기는 거다. 




3. 마지막 날들


모든 것들이 

변해가지, 모든 것들이

긴 오후의

푸른 소매 속으로

빙그르르

...

나도 망각을 사랑해, 거기엔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잖아. 지금이야

동그랗게 말린 밝은 잎들이 속살거리지. 지금이야!

바람의 근육이 윙윙거리지


메리 올리버 <마지막 날들> 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이 스타벅스의 창가 앞에는 장마를 알리는 비가 후드득 내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풍경에 글을 쓰는 나마저도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내 눈앞에 펼쳐진 계절의 변화처럼,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해간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때로 우리는 소중히 여기는 것들만큼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알면서도 착각하고자 한다. 

메리 올리버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조심스레 경종을 울리면서 모든 것들은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끓어오르고 때로는 물러졌던 것들이 물질과 빛깔 그 원래의 속성으로 고유하게 돌아가는 순간을 우리는 겸허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시에 죽음이라는 현상을 향해 죽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변해가는 모든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의 매력을 속삭살거려보는 것도 좋을 거다. 생각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람의 근육이.. 조용히 내 귀 주변을 윙윙거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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