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막,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 오늘도 안녕하시지요?
그럼 출발할게요.
이런 순간엔 늘 주르륵, 담을 수 없는 것들이 흘러내립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그 길이 보이면
샌드위치 안에 숨겨진 야채 조각처럼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야채를 무척 싫어하는 누군가에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양심의 탈을 쓴 가식의 욕망들이 좌르르 쏟아집니다.
아버지, 미안해요.
뒷좌석에 계신 아버지에게 넌지시 고백하지만
그건 살아있는 자식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한 이기적인 몸부림뿐입니다.
그 길을 따라 노모가 오셨습니다.
‘엄마가 오면 아버지 밥은 누가 챙기지?’
아, 이젠 없구나. 그런 걱정이
쉽게 버리지 못하는 먼지 쌓인 낡은 책들처럼 오도가도 못하고 딱 그곳에서만
때때로 고함소리가 아프게 나오지만 신경쓰지 않는 묵은 먼지처럼 여겨지던 날들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불편한 기다림으로 바쁜 일상에 몰두하기만 했던 날들
아버지, 미안해요.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글을 알려주고 시를 알려주고 좋은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는데
그래서 딸아이는 시를 쓰며 세상을 이해하고 좋은 마음을 나누며 세상에 당당히 나아가고 있는데
아버지에겐 그저 눈에 보이는 도리만 떨구고 나와버렸습니다.
아버지, 집에 도착했어요. 저 들어갈게요.
길 위의 고백이 끝나는 순간 뜨겁게 요동치던 차 안이 서늘해집니다.
딸은 내리고 아버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계시지요.
오늘도 아버지와 딸은 함께 달렸습니다.
달리고 난 후엔 그 길은 사라지고 다른 길 위에서 또 다른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마음이 녹고 녹이고 또 녹아내려 온통 흐르고 나면 딸 역시도 아버지 곁에 앉아있겠지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은 성숙한 만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생은 지워지고 아버지는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안전운전하겠습니다.
(2025년 6월 8일 늦은 밤 퇴근길에)
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보내는 시
8년간 거의 누워서만 지내시다가 요양원 들어가신 지 5개월,
아버지가 더는 아프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불쑥불쑥 다가오는 풍경이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을 때 주르륵 눈물이 흐르네요.
당분간은 한참 그럴 것 같지만....
아버지 품에 있던 사자인형과 쓰시던 수첩과 볼펜이
제 차 뒷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늘 아버지와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든든합니다.
생전에 제대로 못한 말, 이제야 해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