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가 출렁입니다

- '망했다'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건네는 시편지

by 별숲지기

우가포 바다를 보러오니

날은 저물어

바다는 보이지 않고


좀처럼 오지 않는

긴 잠은 접어두고

저무는 인생길에

마음 녹이는

그리운 이를 헤아리다가


차츰 붉은 고독은 가라앉고

다가오는 빛결에

설레임이 파랗게 일어난다

철썩, 처얼썩, 쫘르르....


곧, 새들의 쉬는 시간이

끝났나 보다


차례차례 울리는 소리에

조용히 문을 열고

날개 끝에 작은 기도를

살며시 얹는다


젖은 눈에 맺힌 꽃봉오리

접은 날개를 서서히 펼치어

활짝 눈뜨자

노랑 달맞이꽃이

환히 미소짓는다


눈부신 햇살도

번져 흐르는 바다도

지저귀는 새들도

밭일하는 아낙도

차례차례 일어나

아침을 깨우고


매일 타오르는

한 줄기 빛이

은은하게 토닥이며

먼 곳으로 흐르면


아침은

또 일어난다


빛은 늘 여기에 남아

움츠린 어깨를 일으켜

함께 떠오르니


깊은 골짜기에서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며

고개 숙인 그대가


고요히 숨을 어루만지고

마른 입술에 닿은

물빛으로 황홀히,

젖을 수 있다면


꽃잎 부풀어진 후엔

당신이 사뿐히 나올 것이다


아프게 밟아온 길이

곱게 빻은 향기가 되어

고즈넉이 품어줄 테니


푸른 날개가

당신의 등에 다가와

따사로이 출렁이고 있다




울산 여행길에 창밖 가득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날 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빛에 감돌아 더욱 빛나는 물빛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젯밤엔 하나도 보이지 않던 세상이 빛과 함께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치 무대 위 배우들이 조명을 받고 차례차례 등장하듯,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빛 속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퍼지고, 새가 울고, 바다 위엔 고깃배가 뜨고, 밭일하는 아낙의 발걸음까지 —

우리는 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호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이유,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시험과 성적에 눌려, 자연의 호흡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느낀 어른들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아이들이 종종 제게 말합니다.

“선생님, 전 망했어요. 성적도 떨어지고, 꿈도 없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망한 게 아니야. 아직 무대에 오를 시간이 아닌 거지.

빛은 순서대로 비추더라. 너의 차례도 반드시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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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연의 호흡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긍정을 품을 수 있기를.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

누구나 자신의 빛을 받을 순간이 있음을 기억하길.


그 믿음을 품고, 오늘도 아이들을 만납니다.



#빛과 바다 #자연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