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을 앞둔 아이들에게 보내는 시편지
너를 바라보다,
꿈을 바라본다.
간절히 꿈을 그리는 너의
그 꿈을 애틋이 품고 있다가
빛과 어둠의 이음줄에 매달려
수없이 깜빡깜빡
한 줄 금에 슬쩍 어긋나고
두 줄 금에 실컷 부서지면
꿈
이
활짝
열린다
우주가 달려오고
너가 웃는다
나는 나를 위한 기도를 얼마나 했을까?
나를 위한 기도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오 남매의 길을 위해 온 정성을 다했던 엄마,
어느덧 중년의 진로 교사,
생각해 보면 온전히 혼자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구단을 외워야 할 나이에 인형 놀이에만 빠져있어 산수 빵점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옥상에서 구구단을 다 외울 때까지는 내려가지 못한다는 큰오빠의 불호령에 가까스로 구구단을 외웠습니다.
과학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저를 만날 때마다 화학 선생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참 잘하더라”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저에게 해주셨던 긍정적인 말씀에 화학 시험이 있는 날엔 밤을 새워 공부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물리나 지구과학, 생물보다 화학 원소기호가 참 친근합니다.
성적 대비 꿈이 높은 저를 그 당시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보셨을까요? 그때 제 성적으로는 국어 교사가 되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국어 교사가 되어 22년 동안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스스로 참 대견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친척 언니가 다니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도서관에 간 경험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했습니다. 친척 언니의 도움으로 공부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간호사로 일하시는 사모님께 저를 데리고 가서 영양제를 맞혀주셨습니다. 그 기억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육장과 교장까지 하시다 지금은 퇴임하신 조기주 선생님, 아침에 등교하면 항상 교문 주변을 쓸고 계셨던 부지런한 모습, 교사가 되셨는데도 늘 공부하시는 그 열정을 닮고 싶었습니다.
국어교육과 합격이 어렵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막상 현실로 닥쳐왔을 때 지리를 가르치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리교육과 들어가서 국어교육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는 건 어떨까?”
저는 그 말씀 그대로 지리교육과에 들어가 국어교육을 부전공했습니다. 정식으로 국어교육과에 합격해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혼자 앉아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제 꿈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챙겨왔습니다.
대학은 한 번에 들어갔지만, 임용고시 합격은 참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고3 담임 선생님처럼 누가 곁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지요. 그 당시 시험 결과는 전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전화선을 통해 떨어졌다는 음성을 몇 번 들으니 주변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웠고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험에 응시했고 7번 시험 끝에 마침내 국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미 지리 교사가 된 동기들은 저에게 “너는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야”라고 말해주었지요.
제가 그 긴 시간 동안 임용고시를 어떻게 준비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따뜻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의지의 한국인은 바로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오 남매를 모두 공무원으로 만드셨으니까요. 막내인 제가 드디어 국어 교사가 된 날 어머니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공부하다 늦은 밤 집에 들어가면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 따뜻한 밥을 항상 챙겨주셨습니다. 봄과 여름엔 과일을 준비해주셨고 가을엔 찐 밤을 삶아 일일이 까서 컵에 가득 넣어주셨어요. 겨울엔 김치만두를 잔뜩 빚어 출출할 때마다 따뜻하게 쪄주셨습니다. 당신은 솜씨가 없다고 하시지만 저는 아직도 어머니의 김치만두와 별거 없어도 돌돌 말린 김밥 맛이 최고입니다.
어머니는 추수한 뒤 햅쌀을 상에 올리기 전에 언제나 붉은팥 시루떡을 집에서 하셨습니다.
이웃들과 나눠 먹기 전에 그 따끈한 시루떡과 물을 장독대에 올려놓고 조상님께 기도하셨지요.
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큰 힘은, 바로 어머니의 조용한 기도와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하늘이 돕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경험도 몇 번 있었지요.
수능이 아닌 학력고사는 총점으로 대학이 결정되는데요, 저는 수학을 참 못했어요. 65점이 만점이었던것 같은데 늘 20점 수준에서 맴돌았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교과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목에서 나오는 점수로 거의 대학 합격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건, 5개의 단답형 문제에서 찍어서 적은 세 개의 답이 모두 정답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냥 순서대로 ‘루트 2, 0, 1’ 이렇게 쓴 것 같은데 그게 맞은 거였어요. 그러니 수학 점수가 크게 올라갔고 결국 지리교육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때 이후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도와주는 힘을 느낄 수 있다고요.
7번째 보았던 임용고시도 이런 행운은 있었습니다. 잘 생각나지 않는 한자였는데 시험 종료 전 갑자기 생각이 나서 쓴 게 정답이었으니까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제 꿈이었기에 저는 제가 교사가 된 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아름답게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지요. 어머니의 기도, 주변의 응원, 저의 인내심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저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진로 교사의 길을 걸어보는 건 어떠세요? 후배 교사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인문계 고등학생들만 가르쳤고 그중 고3 담임 경력이 제일 많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40대 후반, 어느 날 교감 선생님께서 이제 나이도 되었으니 부장 한 번 맡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는데 초중고 다니면서 반장 한 번 해보지 않은 저로서는 한 부서의 장이 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긴 고민 끝에 인문사회부장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만든 ‘인문학 서당’이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책으로 아이들의 꿈을 성장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것을 잘 살리면 진로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때 마침 후배 교사의 제안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진로 대학원 시험을 보았는데 이 시험은 한 번에 붙었어요. 이어지는 진로 교사 시험, 경기도 교육청은 AI 역량평가를 보는데 나름 까다로운 그 시험에서도 한 번에 붙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에게 올 수 있었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그간 부서지고 깨졌던 긴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꿈을 잊지 않았던 저와 그런 저를 위해 기도해 준 어머니, 그리고 주변 분들의 응원이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길을 되돌아보니 그건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진로 교사의 길로 오게 된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은 수능시험을 봅니다. 저는 이 순간 이육사의 절정이 떠오릅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고3, 우리 아이들은 긴 시간 시험경쟁으로 휩쓸려 온 게 아닐까요. 드디어 수능 시험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삭막한 교실에 앉아 문제의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애태우며 문제를 풀게 될 것입니다.
수능 전 마지막으로 3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그동안 묵묵히 공부했던 한 아이가 교실 뒷문 쪽에 서서 책을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내일로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하고 집중이 잘 안돼요”
“그래, 그럴 거야, 너 국어 교사가 꿈이라고 했지? 이육사의 절정 기억나니?”
“그럼요, 수능특강에서도 많이 봤는걸요. 어제도 관련 문제 풀었고요”
“거기 마지막에 역설적인 표현이 있잖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맞아, 그걸 기억하길 바랄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동안 몇 번의 시험 속에서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여기까지 함께 왔다는 게 저는 참 고맙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이 시험을 보는 그곳에는 과거에 노력한 시간과 공간이 함께 들어있을 거야. 문제에서 막히는 순간 곰곰이 떠올려 보렴. 차분하게 말이야. 그러면 그 시간과 공간들이 슬며시 다가와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을 줄 테니까.
그러니 잊지 말렴. 너희들을 응원해 주는 그 따스한 숨결들을 말이야."
이런 간절한 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씁니다.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함께 오래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