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로 상처받은 분들을 위한 시편지
잠시만요,
저에게 다가오기 전에
제가 머무는 곳을 봐주세요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는 곳을요
간절히 기도했지만
입은 점점 말라가고
핏줄은 타들어가고
창백해진 얼굴에
가시를 꽂을 수 밖에
이토록 저린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요
무엇이 더 따가울까요
저를 보는 세상의 눈들이
아니면 제 마음이
다가와서
봐주세요
제 몸에 난 가시들은
쓸데없는 까칠함이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한
방황의 몸부림이었다는 것을요
열리는 물길이 아득한 세상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요
가시를
믿어주세요
선인장
올림.
선인장이라는 이름의 뜻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신선이 손바닥을 펼친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선인장(仙人掌)’이라 불린다는 설명이었지요.
이 단순한 어원이 이상하게도 제 마음을 오래 건드렸습니다.
가시로만 보였던 존재가 사실은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 이미지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인장의 가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울산에서 열린 김필순 작가의 전시 ‘귀를 기울이면’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선인장의 가시는 본디 잎이 변한 모습이며, 날카롭지만 동시에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통로’라고 말했습니다.
이 설명을 읽는 순간, 저는 선인장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시’라는 단어에 사로잡히다 두 딸의 가시에 생각이 머물게 되었고 제가 가졌던 가시로 힘들어했을 어머니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이 정말 힘들었는데 그때는 저로 인한 엄마의 아픔은 생각도 못 하고 오직 제 상처만 보았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차차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그 말을 하는 게 아닌데.... 나는 왜 또 참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한 거지....’ 항상 후회했지요. 그런데도 또 다음 날 등교할 즈음이면 급한 마음에 똑같은 말을 쑥 내뱉곤 했습니다. 제 가시가 돋친 말과 행동을 어머니께서는 묵묵히 다 받아주셨지만, 그 시절 어머니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까요....
그리고 그때의 일상이 지금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저희 어머니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인내심은 늘 어머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참다 참다 폭발하는 순간엔 저 역시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아이한테 퍼부었으니까요.....
동생의 방황을 엄마에게만 맡기지 않겠다는 대학교 2학년이 된 큰딸,
중학생 큰딸의 사춘기 방황에서 거의 매일 쏟아지는 가시 돋친 말과 행동에 속으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수능을 앞두고 한참 힘들었을 텐데 저에게 신경질을 막 내려다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엄마도 힘든데..... 미안해 엄마’라고요.
그리고 지금 저희 둘은 서로의 힘듦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살피는 모녀의 관계로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큰 아이의 뾰족한 가시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인장이 건조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 대신 가시를 세웠다면 사춘기 청소년들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절박한 상황에서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그러다 다시 비옥한 땅을 만나면 가시 대신 넓은 잎으로 자신을 감싸겠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또다시 척박한 상황이 온다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가시를 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저와 함께 지낸 분 중 유독 가시 돋친 분들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의 가시도 다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니 무조건 신경질적인 사람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분의 삶이 다르게 보일 테니까요.
다시 수많은 가시를 달고 있는 둘째 아이의 방황과 상처를 보게 됩니다. 아이의 가시에 찔려 아파했던 제 마음에서 이제는 스스로 만든 가시로 아파하고 있는 아이의 외로움을 먼저 보게 됩니다.
큰아이와의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둘째 아이의 가시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가시가 나중에 어떤 잎으로 자라게 될까?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니 둘째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서서히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자녀를 기르다 보면 사춘기로 인해 부모와 갈등하는 시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때 ‘선인장의 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얼마나 힘들면 가시를 세웠을까 생각하다 보면 이해가 되고 그 이해가 결국은 단단한 인내심을 끌어올려 인내의 절정을 넘어서면 사랑으로 더 아름다워지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큰아이를 기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시 달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 우리는 누구나 그 시기를 건너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춘기 시절에는 몰랐던 가시 사용법을 나이 들면서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모두 척박한 상황에서는 가시를 달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자
저부터 누군가를 위한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이들이 오래도록 함께 머무는 학교라는 공간을 비옥하게 가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