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길찾기

- 꿈마중 나로와서당 마지막회를 마치며

by 별숲지기



꿈마중을 함께 한 제자들에게


난 성적이 좋은 똑똑한 학생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국어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말해주었지

몇 번의 패배와 실수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단다


교사가 된 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모두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는

교사인 나를 중심으로 너희들이 모이기를 바랐단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어

그걸 깨달은 건 너희들이 나에게 보내준 편지였단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수능 전날 그 시를 주셔서 힘이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어려움을 살펴주셔서 이렇게 클 수 있었어요"


생각해 보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명예보다는

뮤지컬 스텝의 역할이 나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구나.

나를 향한 시선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향한 시선으로

너희 한 명 한 명을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게 행복이었던 거야


차별 없이 한명 한명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도와주는 것

무조건 가르치려 들지 말고

먼저 이해해 주고 난 후 조언해 주는 것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사랑으로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


이런 선생님으로

너희들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약속할게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만나면

함께 걸어온 길이 참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길


지금도 행복하고

그때도 행복했다고 말이야






진심, 경청, 공감, 이타심


크리스마스이브, 구수환 피디님께 받은 네 가지 선물입니다.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구수환 피디님께 듣게 되었습니다.

'나를 넘어, 타인의 삶을 밝히는 힘'

이 학교의 진로 교사로서 제가 준비한 마지막 프로그램의 주제입니다.


독서의 힘


진로 교사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책 속에서 길찾기'였습니다.

진로 독서라고 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순수한 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책을 자주 읽는 학생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국어교육과에 다니는 큰오빠 덕분에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전집이 책장에 꽂혀 있어 유명한 소설 제목만 주르륵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제목만 알고 있는 것도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를 공부하게 만든 11살 많은 큰오빠의 지혜였는지 모르겠지만 독서에 대한 관심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제목으로 만난 책을 읽게 되었으니까요.

국어 교사가 되자 비로소 깨달은 독서의 기쁨, 그리고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성찰의 행복, 함께 이야기하면서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가벼워지는 마음,


이런 이유로 저는 책 속에서 길찾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생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한 대상은 큰딸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읽고 좋았던 그림책부터 고전문학, 시까지 한글을 읽지 못했던 어린 딸에게 매일 읽어주었지요. 한글을 읽기 시작한 후로는 스스로 찾아 읽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큰딸은 수학 공부는 참 어려워했지만 수행평가로 제시된 주제 글쓰기는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며 책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내용을 엮고 생각을 정리해 발표까지 세심하게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량이 바탕이 되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지요.

수학 점수가 낮아 힘들어한 적이 많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힘을 잃지 않은 딸이 참 대견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힘 또한 책을 통해 길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더욱 책을 통한 진로 교육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만든 프로그램이 '꿈마중 나로와서당 책 속에서 길찾기'였고

이 중 '리더십에서 길찾기'가 크리스마스이브를 따뜻하게 밝혀준 구수환 피디님의 강연이었습니다.


꿈마중 나로와서당 책 속에서 길찾기


모두 5개의 주제로 흐르도록 기획했습니다.

열정, 공부, 질문, 고전, 리더십에서 길찾기 – 이 과정은 독서와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성장을 기대하며 생각해 낸 것입니다.

특히 '고전에서 길찾기' 같은 경우는 우리 아이들이 워낙 어려워하는 고전인 박지원의 '열하일기'였기에 준비를 세심하게 해야 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책 읽기를 시작하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해 그게 아직도 안타깝게 남아 있습니다.

2학기 시작하는 날부터 중간고사 2주 전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열하일기 진로독서 캠프를 만들어 조금씩 매일 읽기에 도전했지만 2학기를 맞이한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바빴습니다.

학원 숙제, 수행평가 준비 등으로 조금이라도 강한 의지가 없다면 정말 해내기 어려운 독서였는데 다행히 1학년 학생 몇 명이 착실하게 완독했습니다. 그리고 완독하지 못한 친구들 역시 고미숙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독서에 대한 힘이 생겼다고 해서 그런 아이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꿈마중 나로와서당 책속에서 길찾기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지요.

4월에는 아이들의 열정을 일으키고 5월 중간고사 이후에는 자신의 공부법을 성찰하며 7월에는 미래 사회에 던질 질문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10월에는 우리 삶에 고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배우고 12월 한 해의 마무리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한 리더의 삶을 통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마다 선정한 책을 제가 우선 읽고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작가님 섭외를 모두 마친 후 아이들 입학과 동시에 책속에서 길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좋은 작가님들을 모시기 힘들 것 같아 부지런하게 움직인 거지요.


10월까지 진행한 작가와의 만남은 신청 학생으로 이루어졌지만, 마지막 이 행사는 1학년 전체 400명이 체육관에서 함께하게 되어 저희는 크리스마스 전날, 이태석 신부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넘어, 타인을 섬기는 아름다운 삶- 이태석 신부님


2010년 4월, 이태석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분과 관련된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이태석 신부님도 대단하지만 그분의 사랑을 대중에게 알리신 구수환 피디님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기회가 되면 꼭 뵙고 싶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10월, 교사 연수 프로그램 중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를 읽고 구수환 피디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큰 설렘으로 신청했고 1박 2일 연수 내내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울림으로 제 안을 가득 채우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난 동료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아직도 연락하고 있으니 이 연수가 저에겐 정말 오래도록 특별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6년 후, 이제 그 따뜻한 울림을 저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제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구수환 피디님께서는 추적 60분을 진행하면서 어떤 위협이 있었는지, 종군기자 생활에 어떤 위험이 있었는지, 하지만 그 일을 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외국 종군 기자들에게 물어보면서 공통된 답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바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그게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행복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당신께서 이태석 재단을 만들어 그가 살아온 삶대로 살아가 보니 정말 나눔에서 큰 행복이 온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하루 300명 환자를 돌보셨다고 합니다. 다양한 병으로 아파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특히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직접 발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신발을 제작했다는 이야기. 먼 길 걸어서 새벽 3시에 찾아오는 환자에게 먼저 따뜻한 밥을 해주셨고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학교를 짓고 밴드를 조성해 음악을 알려주셨다는 이야기까지.


"환자를 만나면 대부분의 의사는 먼저 묻습니다. '어디가 아프시지요?'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은 조용히 손을 잡아줍니다.

이태석 신부님 제자들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들 역시 신부님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손을 우선 잡아줍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말합니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다시 돌아오신 것 같다고"


구수환 피디님께서 만드신 영화 '부활'의 제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우리 학교 동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들었습니다.

강연의 긴 시간이 지루한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이야기의 힘은 있을 거로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2025년 크리스마스이브, '리더십에서 길찾기'를 끝으로 한 해의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혼자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혼자 계획 세우고 혼자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설렘으로 가득해 힘든 것도 모르고 추진할 수 있었지만 막상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무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앉아 있으니 조금은 서운함과 함께 조금 전까지도 느끼지 못했던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몸을 잘 추스르고 퇴근하면서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경청했고 공감하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늘 혼자가 아니었어.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한, 나에게 영감을 준 책과 작가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모두가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은 아닐 수 있지만 지난 1년이 부끄럽지 않다면 그것으로 내가 만든 길은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전


3가지 꿈이 생겼습니다.


진로 교사로서 이태석 리더십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것

진로 교사의 진심을 담은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하는 것

사서 선생님(내 친구 꽃슬샘)이 기획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함께하는 것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기도를 올립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기를

후배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진로 교사로 함께할 수 있기를

한 사람으로서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경청하고 공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더불어 사랑스럽게 살아가기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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