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눈빛 월령가

- 수능 이후에도 빛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by 별숲지기

3학년 눈빛 월령가


시소샘


3월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설레는 눈빛

4월은 가능성을 찾아보는 해맑은 눈빛

5월은 봄꽃에 잠시 젖어 피어나는 눈빛

6월은 인내의 열정을 살려 타오르는 눈빛

7월은 긴장의 한고비 넘겨 숨돌리는 눈빛


8월은 대학 찾기에 요리조리 깜빡이는 눈빛

9월은 기적의 합격을 바라며 애태우는 눈빛

10월은 남은 기회로 역전을 노리는 이글대는 눈빛

11월은 합격자 발표 소리에 조용히 분열되는 눈빛

12월은 호기심이 사라진 교실에 매달려 뻐끔거리는 눈빛


그런데

하지만

그러나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은 한결같다면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빛나리라!

더욱 가득한 희망의 눈빛으로 나아가리라!

이것이 3학년 눈빛 월령가를 짓고 부르는 이유다.






2006년, 처음 고3 담임을 했을 때와 지금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벌써 19년 전이니까요. 그 아이들 중 몇 명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어 올해 직업인 멘토링에 와주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연출가와 어린이집 교사가 된 제자들이 바쁜 가운데 와줘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고3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첫 고3 담임으로 만났던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7교시까지 추운 교실에 남아 있어 보세요!”


그때는 솔직히 그 아이가 참 당돌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 그 아이의 대사가 왜 이렇게 감칠맛 나게 와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따지듯이 이야기해서 엄청 속상하기는 했지만 다른 친구들을 대변했던 그 아이의 용기 있는 모습이 귀엽게만 남아 있습니다.


19년 전 제가 근무했던 학교는 굉장히 오래된 학교라 난방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간식을 놔두고 가면 쥐가 뜯어놓고 가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줄줄 떨어졌으니까요.

그때 그 학생들은 학업 의욕이 굉장히 높아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능이 끝난 후 수업 태도는 전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전과는 같지 않았지요. 그런 상황에서 단축수업 없이 7교시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노트에 줄을 긋고 오목을 하거나 책상을 붙여서 탁구를 하거나 뒤에 모여서 공기놀이를 하거나, 이렇게 지냈지요. 종이 장미를 접거나 뜨개질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어쨌든 난방이 잘되지 않는 교실에서 오후 5시까지 지내는 게 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다 하얀 실내화를 신고 있는데 그 아이만 떡하니 신발을 신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00야, 신발을 신으면 어떻게 해, 얼른 실내화로 갈아 신으렴”

이라고 말했더니


너무 추워서 실내화를 신을 수 없다며 선생님이 교실에서 지내보라고 말을 했던 거지요.

옆에 있던 아이들은 슬슬 친구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날 너무 추워서 자기들끼리 불평을 나누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를 보자 불쑥 나서서 말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후회가 되었는지 다음날부터 실내화를 잘 신고 다녔습니다.

그 시절 고3 담임하면서 아이들과 약간의 균열이 일어났다면 이게 다였던 것 같습니다.

졸업까지 성실한 아이들이었기에 출석부가 검게 변해버린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첫 고3 담임이라 적응이 힘들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 덕분에 저는 그다음 해에도 용기를 내서 고3 담임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아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작은 촛불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남고로 가서 고3 담임을 할 때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수능 이후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요.

아마도 다양한 일들이 하루하루 펼쳐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서 여기저기 찾다가 학교 아래 피시방에서 데려오기도 하고 출석부는 구멍이 뚫릴 정도로 지각 조퇴 결석이 줄줄이 이어져 검게 얼룩져가고 교실에 들어가면 제발 불을 꺼달라고 하면서 가만히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서로에게 지쳐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거지요. 매우 성실했던 아이들 조차 수능 이후 학교 시험에서는 일자로 주욱 찍고 자면서 2학기 성적은 어차피 들어가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하는 모습에 저는 많이 속상했습니다.

정말 그때 저는 수능 이전에 아이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과 바쁜 일상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수능 이후가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매일 전화를 돌립니다. “언제 오니?”

그래서 그때는 제 시각에 등교해 주는 아이들만이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이었지요.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었습니다.

입시제도의 문제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시를 쓰고 아이들에게 고백했습니다.


“너희들의 눈빛은 이렇게 바뀔 수밖에 없는데 어른인 나는 한결같이 너희들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우리 처음의 그 열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힘내보자”


그리고 베이지색 부직포를 사서 큰 날개를 만들어 칠판에 붙여놓았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날개 중간에 서게 한 후 사진을 찍어주었지요.


“이게 너희들의 꿈을 일으켜 줄 거야. 그러니까 오늘부터 그 꿈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 날개를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많이 구겨지고 바랬지만 그때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지요.

이 학교에 와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날개인데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려고 합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꿈이 날아오르기를 기대하며 힘껏 응원하려고 합니다.


19년 지난 지금의 고3 교실은 어떨까요?

여전히 담임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전화상담원이 되어가고 출석부는 점점 검게 얼룩져가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다양한 수능 이후 프로그램 덕분에 교실은 예전과 달리 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중 한 여학생의 모습에 제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가까이 보게 되었지요.

한자 쓰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의자 옆에는 털실이 수북한 가방이 있었고요. 토끼인형을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책상 서랍 속에는 책이 들어있었습니다. 계획표를 짰더라고요. 독서와 뜨개질, 한자 공부 하는 시간을 다 정해놓은 계획표였습니다.

저는 이 학생을 1학년 때 가르쳤는데 그때는 국어 교사였기에 일주일에 4번이나 보면서 자주 대화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지요. 한의대 수능 최저를 맞췄다는 말까지는 아이에게 직접 들었지만 최종합격은 듣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궁금했지만 먼저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야기 꺼낼 수는 없었는데 너무나 평화롭게 한자를 쓰고 있기에 저는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저 한의대 붙었어요 선생님”

“그랬구나. 너무 축하해. 어떻게 붙었는지 후배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니?”


1학년 때 학생의 꿈이 의사인 걸 알았기에 이 학생을 가르치면서 줄곧 생각한 건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따뜻한 의사가 될 거라는 기대였습니다. 그렇게 응원해 주고 싶은 만큼 모든 면에서 너무나 훌륭한 학생입니다.

하지만 의대에 들어가기에는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한의대에 합격한 것에 대해 실망하는 빛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해서 저는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합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하니?

예를 들면 내신성적, 면접, 학교생활기록부 등 말이야”


“내신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면접을 잘 본 것 같아요. 솔직히 생활기록부가 의대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매우 불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한 것 같아 합격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의대가 아닌 한의대를 선택했냐고 질문했는데, 저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하면서 제가 한의학에 관심이 생긴 이유를 차분히 말씀드렸어요.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면역체계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을 3권 정도 읽었는데 그 책이야기를 중심으로 대답을 할 수 있었어요”


“아, 그러면 책이 도움이 되었다는 거구나. 그 책은 어떻게 읽게 됐니”


“주제 탐구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 책을 읽다 보니까 흥미가 생겨서 관련된 책을 3권 더 읽게 되었지요”


저는 이 순간 얼굴이 무척 밝아졌습니다. 제가 원하는 책 속에서 길을 찾은 아이니 까요.

물론 제가 직접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고민했던 주제를 찾고 면접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진로 교육에 대한 제 생각과 일치해 너무나 가슴 설렜습니다.


“그렇다면 합격의 열쇠는 어머니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었구나. 어머님도 대단하고 그 책을 성실하게 읽은 너도 대단해. 정말 너무너무 축하해”


“그런데 이 한자 공부는 왜 하기 시작한 거니?”


“저는 한자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서요. 한의학을 공부하는 만큼 앞으로 자주 접하게 될 테니 미리 틈틈이 해두려고요.”


제가 살펴보니 정말 아주 쉬운 한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학생이 앞으로 어떤 한의사가 될지 마음속으로 행복한 상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둘의 대화를 정리한 후 인형 뜨개질을 하는데 한 땀 한 땀 손놀림이 얼마나 꼼꼼하고 세심한지 아이가 만들어가는 인형이 참 예뻤습니다.


“네가 맥을 짚어주는 사람은 따뜻하게 잘 나을 것 같아. 고맙다. 네가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되어서”

이 아이의 환한 마음이 저에게도 옮겨졌습니다.


뒤에서 루미큐브를 하던 남학생이 인형 만드는 여학생을 슬쩍 보면서 함께 게임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야, 00이는 참 대단해”

그런데 그 말에 질투가 묻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뭔가 도움이 되는 것 좀 해볼까? 하는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예전에 느꼈던 수능 이후 3학년 눈빛과는 달라진 이 눈빛에 감동해서

제 기억을 새롭게 짓기 위해 글을 써 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따뜻하게 보호해 줄 입시제도가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