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답다, 그래서 아름답다
여기서, 잠깐!
누군가 우리에게 강요한 일을 우리는 더 이상 따를 수 없을지니
그것은 강요된 마지막의 장막을 걷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늑한 품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탯줄이 잘려나간 자리에 20센티미터의 강철 줄이 매달린다.
그 줄은 아이가 자라면서 가슴으로 말려 들어가 점점 짧아진다.
그 줄을 매단 사람은 1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까지 온 가슴으로 흔들림없이 줄타기를 잘하는 가냘픈 아가에게는 고귀한 대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7센티미터가 말려 들어가면 고귀한 대문을 위해 가슴속엔 삐뚤삐뚤한 한글이 가득
13센티미터가 기어 들어가면 고귀한 대문을 위해 머릿속엔 째깍째깍 학원지도가 가득
16센티미터가 스며 들어가면 고귀한 대문을 위해 낱낱이 암기한 고독한 책장이 가득
19센티미터가 빨려 들어가면 고귀한 대문을 위해 난잡하게 쌓아올린 언어와 숫자들이
뒤범벅되어 가슴이 시꺼멓게 타버린다.
이제 1센티미터 남았다고 문앞에서 손뼉치며 마중 나와주는 가장 똑똑한 그대들이여!
우리는 그 1센티미터를 가슴에 말지 않겠다.
우리의 가능성을 딱 20센티로만 고정시킨 그대들이 만든 줄서기 경기장에서 더 이상 놀지 않겠다.
우리는 노을빛이 아름다운 강가에 나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물줄기와 바람처럼 끝이 없이 퍼져나가는 향기에 취할 것이다.
20센티미터는
20센티미터만 달리도록 만들어 놓았다.
1센티미터만 남았다는
그 유혹의 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푸르게 너울거리는 노래가 될 수 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아름다운 19세를 매년 보았습니다.
제가 인문사회부장으로 있던 8년 전에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선생님을 모시고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때 작가님께서는 당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저 아이를 지금의 내가 안아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그 말씀이 왜 이렇게 와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 별명이 ‘못난이’였습니다. 집에 가면 ‘못난아’라고 부르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왜 나는 못난이일까에 대해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냥 나는 못난이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이목구비를 갖춘 아이는 아니었지만 항상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모습만큼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2도 화상으로 목발을 한 상황에서도 2단 뛰기 줄넘기를 엄청나게 해서 친구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으니까요. 그래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제가 못났다고 생각해 움츠러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어느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10대와 20대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50이 넘은 제가 그 사진을 바라보니 왜 이렇게 측은하고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환하게 웃지 못하는 그 아이를 오연호 선생님처럼 저 역시 와락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 나이에는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건 참 어려운 일일까요?
저에게는 이 일이 참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도전해 볼걸, 조금 더 웃어볼걸, 이라는 아쉬움이 들어 사진 속 그 아이에게 애써 웃어주었습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음은 남아있어 환하게 저 자신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50이 넘은 저를 가끔은 참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으면서 나로와서당으로 향하는 설렘을 느끼는 동안에는요.
‘아름답다’의 어원이 ‘나답다’라는 걸을 알게 된 순간부터 행복을 만드는 길로 가고 있는 제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19세 우리 아이들 중에도 얼마나 자신이 아름다운지 모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조금 일찍부터 자신을 향해 활짝 웃어준다면 좋을 것 같아 저는 그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말해주고 싶습니다.
척추 측만증으로 오래 앉아 공부하는 걸 힘들어했던 아이, 심한 아토피로 급식을 먹지 못하고 점심 도시락을 혼자 먹어야 했던 아이, 틱장애가 있는 자신으로 인해 곁에 앉아있는 친구들에게 불편함을 끼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참다가 결국 땀으로 온몸을 적시던 아이, 부모님이 싸우셔서 장녀인 자신이 집에 가서 말려야 한다며 급하게 조퇴를 신청한 아이, 돌보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매일 지각하는 아이, 친구들과 잘 어울려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만 왕따 같다고 말하는 아이...
수업 시간에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아이들이 눈에 잘 들어오기는 하지만 담임교사로 있을 때는 이런 아이들에게 먼저 마음이 갔습니다. 뭔가를 집중해서 하고 싶어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많았던 저에게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그 이야기 속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저는 그 아이들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쯤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있거나 누군가의 동료가 되어 함께 일하고 있을 이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추억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한 남학생이 있습니다.
남고에서 고 2 담임을 할 때 만난 아이, 직업 군인이 되겠다는 용기 있는 아이였고 이름도 용기였습니다.
저는 그때 당시 부사관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몰랐는데 그 학생은 아주 잘 알고 있었지요. 군인으로 일하시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한다고 말했던 아이라 그만큼 아버지께 받는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이들에게 성적표를 나눠줄 때 가정으로 보내는 칸에 긴 편지를 써주곤 했는데 용기 아버님께서는 늘 제 편지에 답글을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필체가 좋으시고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주셔서 감동한 적이 많았습니다.
용기는 노트 정리도 잘하고 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엎드려 있거나 쉬는 시간에 뛰어다닐 때 그날 주어진 수업과제를 묵묵히 참 열심히 했습니다. 운동도 매우 잘하고 친구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그림도 잘 그리는 친구였지요.
그런데 어느날 용기와 상담을 하다가 제가 부끄러운 일을 벌였지요.
“용기야, 가고 싶은 대학교를 정한 거니?”
“선생님, 저는 부사관이 될 거라 대학교는 가지 않으려고 해요”
“어?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니? 나는 네가 목표대학을 정해놓고 계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용기는 살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학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선생님”
아이만도 못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용기에게 부끄러운 사과를 했지요.
“그래 맞아. 너는 공부하는 학생이고 나는 가르치는 교사이고”
이날 이후로 저는 공부를 안 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용기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날의 부끄러운 감동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아직도 제 가슴에 강한 울림으로 남아있는 멋진 용기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만나 상담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이게 참으로 큰 행복입니다.
이 아이들의 아름다운 성장을 살펴주는 진로 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대학 입학만 도와주는 진로 교사가 아니라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주는 진로 교사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을 살펴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진로교사가 되어 ‘나로와서당’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저는 지금 대학 상담을 주로 하는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찾아오면 낮은 성적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지만 결국은 해당 내신 혹은 수능점수가 나오지 못하면 갈 수 없는 대학에 아이들은 지치고 맙니다. 그리고 이미 열심히 해 놓은 아이들이 앞에 있는 이상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자신은 어떻게 더 할 수가 없지 않냐고 말하며 쉽게 포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늘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아이의 현재 상황에서 어떤 대학을 어떤 전형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살펴주고 앞으로 준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는 상담....
공교육에서 이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필요한 진로 진학 상담입니다.
사회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서울대에서부터 시작하는 대학 서열에서 조금 더 위에 있는 대학으로 들어가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은 쉽게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쉽지 않은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너무나 이상적인 걸까요?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정해서 꿈꾸는 일에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주변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참 많이 느껴지고 있고요.
지인을 통해 얼마 전 알게 된 ‘교육의 봄’ 활동이 그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출신학교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의 채용 문화를 확산해 우리 교육에 봄을 이끌고자 하는 운동인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런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힘들게 걸어와 졸업하는 아이들 앞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이 길이 대학으로 가는 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너머 인생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입시라는 굴레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며 매일 매일 신나게 도전하는 아이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활기록부에 찍히는 숫자와 내용들에 두려움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펼쳐나가는 기회를 주는 교육
“이거 참여하면 생활기록부에 반영해 줍니다.”
이 소리에 아이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거 함께하면 당당하게 자기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어요”
이 말에 아이들이 모이는 교육
그래서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함께 모으는 교사들
2025년 12월 31일
우리 학교 1학년 열두 반, 393명 친구들이 모두 체육관에 모여 반별 합창제로 2025년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로 심사위원이 되어 참석했지요.
교실에서 반별로 연습하는 것을 볼 때는 깜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옷을 잘 맞춰 입고 무대에 올라가 멋진 안무와 함께 잔잔하게 울리는 화음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연습 과정에서 이런저런 갈등도 있었겠지만 반 친구들을 바라보며 노래할 때는 실수 없이 다함께 잘하고 싶은 열정이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춤을 잘 추는 아이, 노래를 잘하는 아이, 의상에 관심이 많은 아이, 연출을 잘 하는 아이, 대본을 잘 짜는 아이, 화음을 잘 맞추는 아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아이, 손을 먼저 잡고 얼굴을 바라봐주는 아이, 용기 내어 중심을 잡아주는 아이, 틀리는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아이, 제각각 모두 자기 자리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무대였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길만 바라보지는 않을 겁니다.
“선생님, 저 연기학과 선택에 대한 갈등이 참 많았어요. 그냥 공부를 해야 하나? 그런데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는데 결국 해냈어요.”
국어 시간에 소설의 한 장면을 읽어달라고 하면 너무나 기가 막히게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줘서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어주던 아이, 꿈이 배우라고 씩씩하게 이야기했던 아이, 하지만 고3이 되어 복도에서 만난 아이의 모습에서는 그런 발랄함이 보이지 않아 무슨 걱정이 있나 싶었는데.... 그동안 목표대학의 내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이 길이 아닌가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슴 애태우며 지내다 결국 철저한 실기 준비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고 했지요. 비록 목표로 한 대학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 앞에 가깝게 다가간 지금의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2025년 마지막으로 만난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학생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기대가 됩니다.
그래, 아름다운 19세,
너의 꿈을 응원할게
대학 너머 그 이후의 삶, 아름다운 자신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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